망명일기亡命日記 6

by 우인

망명일기 6


내 어릴적 꿈은

비행사였다.


봉래산 너머로 사라지는 잠자리 비행기를 쫓아서

신작로 끝까지 달려가면 허망하게도 비행기는 없었다.

꽤 오래동안 지속된 비행기조종사의 꿈,

지금도 조종사영화를 보면 가슴이 뛴다.

생 떽쥐베리를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그의 작품 "어린 왕자"보다는 그의 직업이 조종사라는 사실이

내겐 더 매력적이었다.


"캔디"라는 80년대 유행했던 만화에서

내가 제일 부러워 한 인물은

안쏘니도 테리우스도 아닌 스테아였다.

왜, 파트리샤라고 큰 뿔테 안경을 사랑하던 친구,

아마 그 친구가 캔디를 사랑했던가?


1차 세계대전때 조종사로 지원해서 대서양 바다로 추락하던 장면,

그 때의 대사가 아직도 기억난다.

스테아가 파트리샤에게 쓴 편지의 마지막 귀절

"끝없이 지는 저녁 놀을

너에게 보여 주고 싶었어“


대학시절 그 친구도 파트리샤를 닮았다.

큰 뿔테 안경을 쓴 친구,

늘 외로워 보이던 친구,

그에게 내가 지어준 아호(雅號)은 초하(艸霞)였다.


내가 그때 함께 써 준 詩 한 구절,

"노을 지는 언덕에

풀잎이 떨고 있네."

이게 첫 구절인데 그 다음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왜 그녀가 떨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귀엽고 항상 보조개가 매력적이었던 그녀...

난 유난히도 저녁 노을을 좋아한다.

그 다음 여친에게 지어준 아호(雅號)는 다하(茶霞),

차 茶에 노을 霞,

이건 茶山 정약용선생과 紫霞 신위선생의 호에서 한 字씩 따왔다.


사실 고려, 조선 시대 통틀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호는

다산과 자하였다.


근데 이 얘기를 그 친구한테는 안하고

다하(茶霞)라고 내가 지었다고 하니 무척 좋아했다.

그러면서 詩 한편도 적어 줬다.


"차 속에 저녁 노을이 잠겨 있고

내 마음 속에 그대가 잠겨 있네."


즉석에서 지어 준 건데

지금의 감각으로는 촌스럽지만

그 당시는 꽤 세련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후, 회사에 들어와서 한 작가가 자기 호號가

다하(茶霞)라고 하기에 깜짝 놀랐다.

혹시 내가 지어준 그녀의 동생일까 생각돼 자세히 물어 보니

예전 대학때 자기 친구가 지어 준 거라고 했다.


나랑 연배차이가 많이 나서 내가 지어 준 거는 아닐 테고

그 작가의 남자친구가 나랑 정서가 비슷한 놈이었던거지.

약간만 관심 있으면 그 정도는 답이 나온다.


아무튼 비행기조종사라는 직업을 갖고 싶었던 이유는

항상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했던 거와 관계 있을거다.


그런 면에 비추어 보면

지금 내 직업에 엄청 만족한다.

총각시절엔 한 달에 3주일을 출장 다녔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의 얘기를 듣고

저녁엔 생경한 거리를 걷고 느끼고

내가 좋아하는 절의 현판을 읽고

뭐, 아주 만족스럽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했고

늘 가슴엔 그리움을 품고 살았던 그 때,

내가 떠났던 곳은

순나라였고

처음 보는 거리였고

사람속이었고

책속이었다.


영월에서의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어머니가 兄하고 이발하고 오라고 돈을 주셨을 때

형이 나를 꼬여서 동네는 비싸니까

멀리 영월국민학교내 구내 이발관으로 데려갔다.

동네 보다는 좀 허술한 이발관이었다.

동네에서는 여자가 한 명 있어서 친절하게 대해줬는데

여기는 이발사아저씨 한 명이 모든 걸 다하는

어쨌든 동네보다는 못했다.


내 차례가 돼서

의자에 앉으니

이발사 아저씨가 집게로 하얀 천을 내 어깨에 집었는데

난 이발이 끝날 때까지 그 상태로 있었다.

말을 하면 안 되는 줄 알았기에.

이발이 끝나고 이발사아저씨가 내 어깨에 집힌 집게를 보고

왜 말 안했냐고 물어도 얼굴만 발그래해서

답도 못했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兄이 팽이 하나 사줘서

그 팽이에 빨간색, 파랑색을 칠해 즐겁게 놀던 기억이 난다.

나머지 돈은 형이 뭐 했는지 모른다.


난 단지 팽이 하나에 열광했었고...

갑작스레 팽이라...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무지경의 발로인가?


가끔씩 꿈결처럼 떠 오르는 기억들,

불쑥 불쑥 다가 온다.


아무 것도 모르고 살 뻔한 아이가 있었다.

단지 서울에 온 罪로 온갖 번민, 즐거움, 아픔, 고통, 기쁨을 알아 가고 있다.

감정의 판도라상자를 열은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영월에서 계속 살았으면

행복했을까?

누가 답을 해줄 수 있는가?

아무도 없다.


아직도 가슴에 새기고 사는 한 구절,

"요불괴황천(要不愧皇天)"

우러러 하늘에 한 점 부끄럼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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