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이라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배워가는가
처음엔 쉬울 줄 알았다
워크숍 이후,
우리는 첫 컬렉션이 될
제품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든 것이 순탄히 흘러가는 듯했다.
Stella는 스케치를 시작했고,
나는 실버 이어링과 자수 헤어핀— 두 축을 중심으로
제작의 가능성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디자인은 명확했고,
우리가 원하는 이미지 역시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은 불확실했다.
그중 실버 제품은 가장 단순해 보였다.
단가도 명확했고, 업체도 금방 찾았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이 만들기까지는
생각보다 훨씬 긴 여정이 필요했다.
자수 제품은 더 막막했다.
어디에서 만들 수 있는지를 떠나,
우리가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
자수인지 프린트인지조차 감이 오지 않았다.
원단, 실, 부자재—모든 것이 모호했다.
결국 지인을 통해 도움을 청했다.
웨딩 실크 원단을 다루는, 경험 많은 사장님이셨다.
그 사장님은 오래된 단골 거래처를 통해
웨딩 원단 및 부자재 시장의 위치를 알려주셨고,
우리는 그곳을 발로 돌기 시작했다.
검색과 디지털에 익숙한 우리 세대에게
'발품'이라는 방식은 생경했다.
하지만 제조의 세계는
검색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구조였다.
이곳에서 정보는
'관계' 안에서만 흘렀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소개하고,
그가 또 다른 사람을 연결해 주는 식이었다.
전화번호 하나조차
직접 만나 인사를 나누어야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실크 사장님(A)께 소개받은 다른 사장님(B),
그리고 그 근처 또 다른 작업실 사장님(C)을 통해
비로소 샘플을 맡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최선인지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다시 시장을 돌았다.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가격과 수량이었다.
시장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달랐다.
우리는 모든 상품에
가격이 명시되어 있다고 배워왔다.
물가에 따라 조정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가격은 ‘고정’된다는 게
우리에게 익숙한 경제 논리이다.
그간 나의 경험도 그랬다.
슬랙, 노션, 메일을 통해
계약과 견적, 영수증 처리가 이루어졌고,
수정이 필요할 경우 그에 맞는 문서가 오갔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문서가 아닌 '눈치'가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었다.
분명 '견적'이 존재하긴 했는데,
처음 받은 가격,
주문 후 픽업할 때의 가격,
그리고 재주문 시 가격이 모두 달랐다.
가격도, 수량도, 스펙도
명확히 정해져 있다기보단,
그저 '짐작되는 분위기' 안에 머물러 있었다.
수정은 구두로,
약속은 기억에 남겨졌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왜 가격이 다르지?"
"분명 이렇게 요청했었는데…"
어떤 날은, 주문한 수량보다 많은 제품이 와 있기도 했다.
이 비정형의 세계가 낯설고 불편했다.
마치 A100서버* 한 대를 주문했는데,
아무 말도 없이
"남았으니 V100**도 가져가세요"
하는 일이 발생한 셈이다.
*A100, V100서버 : 고가의 AI용 GPU 서버 모델명
한참 뒤의 깨달음이지만
이 시장은
재능과 물건이 오고 가기 이전에
'사람'이 움직이는 곳이었다.
대화하고, 웃고,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아가는 것.
그게 이 시장에서의
가장 강력한 계약 방식이었다.
우리는 프리미엄을 원했다.
문제는, 우리가 찾아간 대부분의 공장은
그 기대에 응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그들이 요구하는 최소 수량을 채울 수 없는
작은 브랜드였기 때문이다.
브랜딩을 결심하며
단순히 예쁜 것 이상의,
'가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동대문 도매상들은 B2B 중심으로 운영되었고,
소량에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은 꺼리는 분위기였다.
핸드메이드 작업자들도 있었지만,
우리가 원하는 미감을 표현하기엔 부족했다.
마감은 아쉬웠고, 디테일은 섬세하지 못했다.
Stella는 견딜 수 없어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 사이에 시선의 차이가 발생했다.
나는 일단 제품을 만들어보고 싶었고,
그녀는 브랜드의 본질이 훼손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나는 그녀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지금 가능한 선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그래야 피드백도 받을 수 있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결국 우리는 타협점으로,
Stella의 손으로 마무리 짓는 길을 택했다.
그건 지속 가능한 방식은 아니었지만,
당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애초에 액세서리가 더 간단할 줄 알았다.
(내가 얼마나 단순하게 생각했는가 하면: [LINK])
의류보다 공정이 덜 복잡하고,
형태도 단순하겠지 싶었다.
의류엔 '샘플실'이라는 단계가 있다.
생산에 들어가기 전,
최종 디자인과 품질을 검증하기 위해
"가장 완성도 높은 한 벌"을 만들어보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가능한 이유는
의류엔 기본적인 형태와 기준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상의엔 팔과 머리 구멍이 있고,
하의엔 다리 구멍이 있다.
셔츠의 소매와 미디 원피스의 길이도
대략적으로 정해진 기준이 있다.
하지만 액세서리는 달랐다.
헤어핀은 집어야 하고,
헤어밴드는 머리를 감싸야하며,
귀걸이와 목걸이는 소재와 구조에 따라
공정이 전혀 달라졌다.
공정마다, 아이템마다
업체도 다르고 방식도 달랐다.
그리고 그 정보는 검색으로 찾아지지 않았다.
각 공정마다의 전문가를 찾아야 했고,
거래처는 하나하나 발로 뛰며 연결해야 했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단골집’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하나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실을 찾고, 원단을 고르고,
자수를 넣고, 클립을 찾고,
그걸 붙여줄 수선집을 물색한다.
이 모든 과정은
사람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공장도, 수선집도, 부자재 가게도
처음엔 ‘그저 한 번 부탁해 보는 곳’이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거래가 오가며
그들은 우리를 기억했고,
우리도 그들의 방식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이 시장은
‘일은 일이고, 관계는 관계’
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곳이다.
일은 대화로 시작되고,
정으로 마무리된다.
그걸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는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우리의 첫 다짐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현실은
계속해서 타협과 조율을 요구한다.
Stella는 여전히
브랜드의 정체성과 미감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나는 그 안에서 가능한 현실의 접점을 찾는다.
우리는 지금도
타협하지 않는 이상과,
양보할 수밖에 없는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