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멈춤과 다시 쓰기

다시, 방향을 정하다 - 송길영 작가 포럼

by Misu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7월 중순까지 꾸준히 이어지던 손이 어느 순간 멈춰 버렸다.
세 달 가까이, 펜을 들지 못했다.


B043C185-CD1E-4F0D-8912-8534D88EE55F_1_105_c.jpeg 3개월의 공백 속 일들은 차차 풀어낼 기회가 있겠지


아예 놀고 지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고 바빴다.
그런데도 글은 쓰지 못했다.


왜였을까.


돌아보니, 그 전까지의 글은

‘과거’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작년 퇴사부터 시작해

지난 1년간 베캅을 만들어오기까지—


이미 결정된 선택들,

지나간 해프닝들,

해석이 끝난 이야기들을 꺼내어 기록하는 일.

그것은 비교적 수월했다. 명료하기도 했다.


하지만 7월을 지나며 나는

‘현재’를 써야 하는 국면으로 들어왔다.

제품이 세상에 나올 준비를 마쳤고,

그 다음은 ‘판매’였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일들,

명확하지 않은 방향의 선택들,

실패할 수도 있는 장면들

날것 그대로 마주해야 하는 지금,

글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팔 것인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질문들이 밀려왔다.


브랜드의 철학과 방향은 분명했지만

시장 앞에 서니 모든 것이 다시 낯설어졌다.

그래서 멈춰 있었다.

아니, 멈춘 게 아니라,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방향을 바꿔놓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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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패션협회에서 열린

‘시대예보: 로컬, 글로벌이 되다’ 포럼.

그날 송길영 작가의 강연을 들었다.


나는 IT 산업에 있을 때부터

그의 강연을 틈틈이 찾아 들었다.
늘 ‘생각의 여지’를 남겨주는 사람.
그의 문장은 내가 보던 풍경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한다.


그날의 강연 역시,

지금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환기시켜주는 시간이었다.


실제로 그를 마주한 건 처음이었는데
인상 깊었던 건 그의 ‘기세’였다.

어수선한 공간, 산만한 시선들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메세지를 전달하는 힘.


창업자에게 결국 필요한 것도

기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사람들 앞에 서야 할 순간들이 더 많아질 텐데

그럴 때마다 그날의 그 기세를 떠올리고 싶다.




이제는 물건이 아니라,
철학과 문화를 파는 시대입니다

그의 이 한 문장이 오래 남았다.

'물건'은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삶의 방식'은 아무나 전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멀리 있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삶,
내가 매일 선택하고 경험하는 것들에서 나온다는 뜻이었다.


베캅이 만들어가고자 하는 방향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는 생각에

또 한 번의 확신이 생겼다.


강연 말미에 질문 시간이 주어졌고,

나는 요즘의 고민을 조심스레 꺼냈다.


“미국 시장을 목표로 하는 작은 로컬 브랜드가 무엇부터 준비해야 할까요?”


그의 답은 단순했지만 강력했다.


“직접 땅을 밟으세요.
그곳의 공기와 사람을 직접 보셔야 합니다.”


D6F8AC57-FF1E-4A1E-9FE3-1F05FB96FBCF_1_105_c.jpeg 용기 내어 명함도 나누고, 사진도 남겼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가 가야 할 시장은 미국이고
한국에서 미국을 바라보는 시선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제는 그 땅을 밟아야 한다.
그곳의 삶을 살아보아야 한다.




그래서 다시, 펜을 들다


지금도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법인 설립도, 시장 진입도 여전히 진행 중이고,
맞게 가고 있는가 하는 생각도 솔직히 든다.


그럼에도 지금 이 흐름을 기록해야겠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이 시기가
브랜드의 방향이 다시 다져지고
내 삶의 방향 또한 다시 그려지는 시간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방학이었다.
오늘 나는 다시 펜을 든다.
이 글이 다시 쓰기 시작하는 첫 문장이 될 것 같다.


다음 글에서는
미국으로 향하게 된 여정을 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