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일기: IT 프레임워크로 브랜드, 유연해지는 나
나는 늘 전체의 틀을 잡고,
개요를 뽑아내고,
해야 할 일들의 우선순위를 정해
이행하기를 좋아했다.
어쩌면 그래서
프로덕트와 프로젝트 전체를 관리하는
PM 업무가 적성에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꾸러미 — 제품이든, 사업이든 —
총괄하며 다뤄본 경험은
한 가지 다짐을 하게 했다.
' 언젠가 내 브랜드를 만든다면
그 정의부터 분명히 내려야지 '
그리고
브랜드에 대한 결심이 서자마자
워크숍을 진행했다.
화이트보드를 펼치고,
내가 익숙하던 방식으로
브랜드를 그려보기 시작했다.
User Story Mapping...
IT 업계에 몸담으며 익숙해진 사고방식이었다.
브랜드의 목표를 정하고,
브랜드의 미션, 타깃,
상품 기획과 구조, 마케팅까지
큰 맥락을 통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수많은 질문을 쏟아내며 비전을 구체화했다.
브랜드의 실제 유저 여정을 풀어보며
KPI*를 뽑고, OKR**을 정의 내리고자 하는 욕구가 올라왔다.
*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기업이나 조직의 목표 달성 정도를 측정, 평가하는 데 사용되는 핵심적인 지표.
** OKR(Objectives & Key Results): 달성하고자 하는 방향을 제시, 목표 달성 여부를 측정하는 지표
그런데 문제는
그게 모두의 언어는 아니라는 데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 내가 내렸던 기간 산정과 목표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브랜드를 창조해 가는 과정은
애매하고 정의 내리기 어려운 일의 연속이었다.
예술 베이스의 동업자와 함께하며
나는 처음으로
'명확함'의 언어가 통하지 않는 환경을 마주했다.
나는 문제를 빠르게 쪼개고,
우선순위를 세워
곧바로 실행에 옮기는데 익숙했다.
그녀는 달랐다.
무엇이든 충분히 머물러 의미를 찾았고,
디자인 하나를 결정하더라도
의미와 맥락이 중요했다.
패키지 박스의 속지 색깔,
모델의 눈빛,
디자인의 꽃잎이 몇 잎이어야 하는지
나는 "이 정도면 되지" 싶은 마음이 들 때쯤
그녀는 그제야 질문을 시작했다.
결국 질문을 멈추지 못한 쪽은 나였다.
왜 이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이런 선택이 브랜드의 뿌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빠르게 MVP*를 만들어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고,
시장에서 검증받는 과정은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한 빨리 무엇이든 내놓고 싶었다.
* MVP(Minimum Viable Product): 스타트업이 제품의 가장 중요한 기능에 집중하여 개발하는 초기 모델.
하지만 그런 속도에는
브랜드의 깊이를 뒷받침할 '기준'이 없었다.
그 기준을 묵묵히 세워준 사람은, 바로 Stella였다.
당시는 이해가 안 가고 느리다 느끼기도 했으나
그녀는 늘 나의 성급함을 붙잡아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이것이 동업의 가장 큰 장점이지 않을까?
유연해지고 있다고 믿고 싶다.
아직도 마감이 가까워지면
속이 끓고 조바심이 나지만.
나는 여전히 빠르게 정의 내리고
판단하고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게 내 강점이고,
앞으로도 브랜드를 확장하고 체계화해 가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하지만,
경영이라는 건 혼자 해나가는 일이 아니다.
결국 브랜드를 만든다는 건,
사람과 함께 그림을 그려나가는 일이라는 걸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지금 나는
더 멀리 가기 위한 방향을 조율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