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별을 따 달라고 하지 않아도 부담이 됩디다.
부담으로 시작되는 이별
부담의 사전적 의미부터 찾아보기로 한다.
1. <부담> 어떠한 의무나 책임을 짐
2. <부담되다> 감당하기 어렵거나 힘든 것으로 느껴진다.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잠깐 만난 그는 나에 대해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30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주는 것들도 있을 것이고 본인이 해야 할 일에 대한 것도 있을 것이고
나열할 수는 없지만 분명 여러 이유가 존재할 것이다.
나를 위해서라도 이 사람을 위해서 관계를 붙잡고 있지 말아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너무나도 이해하는 내용.
그는 어느 순간 생각이 많아졌고 표정에서는 알 수 없는 고민들이 세어 나왔다.
이런 거에는 기민하게 반응하는 여자이기에 얘가 부담이 생겼구나 라고 직감했다.
그래서 그의 부담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 부담 느낄 만 해. 네가 부담을 느끼라고 일부러 내가 지워준 건 아니긴 한데 내 상황을 보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건 당연한 것 같아. 부담 갖지 말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나는 애초에 결혼이고 연애고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초예민한 불면증 환자에게는
연애가 오히려 삶의 질을 떨어트릴 때가 많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이런 걸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마음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너도 하고 싶은 걸 하고 나도 하고 싶은 걸 하자. 우리 어디서든 열심히 살자!
이렇게 한 여름 펄펄 끓던 감정은 변한 계절과 함께 환절기 감기에 걸려 경미한 기침 콧물을 보이더니 어느새 그냥 없던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나마 고열을 동반한 지독한 감기로 지나간 게 아님을 감사하고 있다는 건 내가 나이가 들어 이제 세상을 좀 알게 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애틋하고 설레었기에 뜨거웠던 여름의 감정은 마음속에 간직하기로 한다.
가끔 꺼내볼 수 있는 일기장 한 페이지에 너의 이름을 적어둘 것이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
그와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 무렵 나는 주변인들에게 이 일을 상의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거야?"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만나면 만나고.. 아니면 아니야"
"좋아한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글쎄... 좋아하는 거 같기도 한데 아닌 거 같기도 해"
"그래서 진짜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도망가고 싶어"
꼭 나는 도망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곤 한다.
숨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이런 말들이 자주 나오면 어김없이 사랑은 끝이나 있다.
도망치는 게 답이 아니라는 것도 아는데
그냥 겁이 난다. 내가 받을 상처에 덜컥 겁이 나고 숨고 싶어 진다.
하지만 반복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저녁으로 컵라면과 김밥을 먹고 나서였다.
왜 내가 하고 싶은 게 없겠어? 있겠지!
내 마음을 알아가는 것부터 해보자. 나에게도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
내가 그동안 누군가와의 만남을 정식으로 시작하는 것을 겁냈던 것도
그렇다고 가을밤 귀뚜라미처럼 어두운 풀숲에서 외로움을 소리 내기 싫어했다는 것도
다 내 마음에서 나온 것들인데 왜 정작 매번 숨으려고만 하는 건가.
모든 아름다운 결말을 위해 내가 하고 싶었던 것부터 찾고 그를 정리하기로 한다.
내 마음도 중요하니까!
나의 진짜 마음은 무엇일까?
종착역에서
종착역은 분명했다. 서로의 열차표를 보여주지 않았지만 우리의 종착역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나도 내 인생이 정말 중요한 사람이었고 그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종착역에서 우리는 서로의 길을 갈 것이고 또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낼 것이다.
마음을 공깃밥처럼 정해진 틀에 넣을 수도 없고 부족하면 더 시키고 많으면 남길 수도 없는데.. 너무 많이 주지 말고 너무 적게 주지도 말고 딱 서로가 상처 안 받을 정도의 마음만 주고받을 수 있는 걸까
쓸데없는 생각으로 종착역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
예전 일도 오늘 일도 내일 일도 생각해본다.
생각해보니 아침보다 키가 좀 큰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나는 성장했다고 우겨보면서 자기 위로의 시간도 갖는다.
그리고 어디까지 갔을까? 그의 뒷모습을 찾는다.
마지막 부탁은 뒤돌아 보지 말아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