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기억하나요

나는 모르쇠를 모릅니다.

by 양미숙

기억 속 외로움에 대해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 시장에 살았다.


모든 가게의 문이 닫힐 밤 10시가 다 돼가는 시간, 아빠는 잠들 준비를 하는 나를 불러 곧잘 나가자고 하셨다.


아빠와 나는 모든 상점의 불이 꺼지고 천막이 쳐져 어둑한 시장길을 손을 잡고 걸었다. 아빠와 손을 잡은 작은 나는 걸음을 맞추려고 발을 빠르게 굴러가며 멈춰버린 시장 거리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 안과는 다른 네온사인이 쏟아지는 사거리가 나오고 아빠와 나는 사거리 지하에 있는 경양식 집에 들어갔다.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들리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낮은 목소리에 남자 종업원의 인사가 들리고 아빠와 나는 빈자리에 앉는다. 나무로 된 파티션이 쳐져있는 딱딱한 소파에서는 고소한 수프 냄새가 났다.


아빠는 돈가스 정식과 맥주 한잔을 시키고 순서대로 수프와 맥주가 먼저 나오면 수프를 호호 불며 숟가락을 둥글게 저어 식혀주셨다. 그리고는 수프를 먹는 나를 보며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키셨다.


진한 소스가 잔뜩 뿌려진 돈가스가 나오면 고기를 손질하던 그 굵은 팔근육에 잔뜩 힘을 주어 돈가스를 먹기 좋게 잘라주셨다. 그리고 안주삼아 딸과 함께 드셨다.


그 후로 20년도 더 지났고 이제 아빠만큼 크고 나서야 기억의 키워드는 '외로움'이라는 걸 알았다.


"너도 나중에 크면 다 알게 돼. 어서 먹어"


아직 전 크는 중이고 여전히 다 알지는 못한 것도 같아요.


외로울 땐 누군가의 마음이


누구나 외로움을 적어 놓은 쪽지 하나쯤은 마음에 두고 산다고 생각다. 가끔 꾸겨놓은 마음의 외로움을 꺼내보다 보면 그 시간만큼 낡고 무뎌지겠고 그런 일들이 익숙해면 어른이 된다고 믿고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나의 외로운 쪽지만 가진 게 아닌 것 같다. 내가 외로울 때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이 되기 때문.


그게 어느 날의 친구, 눈물짓던 엄마의 하루, 추억 속의 아빠일 때도 기억 속의 어느 날 일 때도 있다.


유난히 힘들었던 어느 날의 퇴근길, 나는 우울한 창밖이 스치는 버스 안에서 아빠의 마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외로움을 생각했다. 리고 같이 걸었던 깜깜한 시장 안을 들여다봤다. 혼자 들이키셨던 맥주 한잔도...


생각해보니 외롭지만 외롭지는 않은 날이었을지 모른다. 무슨 일로 우울했겠지만 우울하지 않은 날이었을지 모른다.


외로운 마음을 덮어버릴 소스같은 누군가가 내 주변에 있고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하나가 주는 행복이 분명있었겠지.

나도 아빠처럼 누군가를 생각하며 오늘도 버텨야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딸의 먹는 모습만 봐도 즐거웠던 그날의 아빠처럼 나도 자꾸 우울해하지 말아


오늘도 퇴근 후 맥주 한 잔, 그 마음이 되기 위하여.


그 여자의 기억법


혼자 살게되면서 부모님과의 통화가 생존신고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저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내고 강도나 기타 범죄자의 위협도 없이 무사합니다. 라는 뜻이 되버린 것만 같았다.


가끔 그마저도 귀찮아 부재중 전화에 다시 회신을 안하는 날도 많았으니 꽤나 부담스럽고 어려웠던게 사실.


어느 날 퇴근길, 힘이 쭉 빠진채로 핸드폰을 뒤적이면서 문득 통화 목록을 보고 부모님과의 통화에서 오는 그 부담감과 어려움을 떨쳐 버리게 됐다.


페이지의 대부분이 부모님 전화번호로 채워져있었기 때문이다. 전화를 걸면 반가워해주는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는데 왜 그걸 모르고 살았을까 라는 생각이 밀려올 때 쯤엔 이미 밤 10시를 넘긴 시각.


"엄마 자??"

"응 드라마 보다 자다 했지"

"아빠는?"

"니 아빠는 초저녁부터 자는 겨 그냥"

"아.. 얼른 주무셔"

"얼른 들어가라 너도~"


전화를 끊는 순간 묘한 감정이 일렁이고 답한 마음이 한결 후련해졌다.


큰 침대를 혼자 사용하면서 곤히 주무실 아빠와 쇼파에서 티비를 켜놓은 채 졸고 있을 엄마를 떠올렸다.


그런데

그냥 웃음이 났다.

뭉클한 만큼 웃음이 났다.


그날은 아빠의 마음도 엄마의 마음도 그냥 내 마음도 그런 날로 기억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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