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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영 Aug 25. 2020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자신이라는 우주와 조우하는 저 신비한 통로에서 




거대한 미술관 천장에 매달려 온전히 예술의 세계를 비추던 하나의 태양이있었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라는 위대한 잠언이 미술관에서 재현되던 그 순간, 관람객은 빛을 마주하고 드러누워 오감으로 호흡하고, 때론 빛과 희뿌연 안개 사이를 거닐거나 뛰어다니며 온몸으로 공간을 만끽했다. 빛은 붉은색으로, 황금빛으로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었다. 예술가의 손이 만들어낸 인공태양이라는 걸 인식할 겨를 없이 맞닥뜨린 무한한 황홀경… 그리고 창밖으로 조물주의 빛은 인공 태양의 발성과는 상관없이 초연하게 템스 강과 함께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이 모든 풍경은 2003년 런던 테이트 모던 터빈홀에서 벌어진 아티스트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의 <기후 프로젝트(The Weather Project)>가 만들어낸 예기치 못한 장관이었다. 이 놀라운 공간의 서사시를 연출하기 위해 작가는 터빈홀 천장을 거울로 덮고 안쪽에 수백 개의 단파장 전구로 이루어진 반원형의 조명을 설치하고 전시 공간 내부에 태양을 창조했다. 그리고 물과 설탕을 혼합한 가습 장치를 만들어 미세한 안개가 빛 사이를 부유하도록 했다. 이 황홀경을 경험하기 위해 전시 6개월 동안 200만 명이라는 전무후무한 숫자의 관람객이 다녀간 올라퍼 엘리아슨의 <기후 프로젝트>는 미술계에서 이른바 터빈홀의 전설이 될 만한 것이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자연현상이나 자연적 모티프를 그만의 예술적 상상력과 과학적 탐구로 구축해 미술의 영역에 끌어들여 주목받아온 아티스트 올라퍼 엘리아슨. 태양과 가시광선, 안개, 그림자, 무지개 같은 자연현상을 재현함으로써 보는 이에게 ‘시(詩)의 세계’ 와도 같은 놀라운 경험의 순간을 제공해왔다. 그는 녹색과 붉은색 형광등으로 물든 전시장 안을 안개로 가득 채우는가 하면, 프리즘의 굴절과 물의 반사작용을 통해 무지개의 신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전시장에 이끼가 낀 물을 가득 채워놓고 설치된 좁은 나무다리를 따라 걷도록 관객의 움직임을 ‘중재’하기도 했다.




이런 연출을 통해 그는 설치된 작품과 전시 공간의 유기적인 연결, 관람객의 물리적인 움직임이나 인식의 발현이 한데 어우러지는 아슬한 긴장감을 창조한다. ‘보는 자신을 보는 것(seeing oneself seeing), 감각하는 자신을 감각하는 것(sensing oneself sensing)’의 차원을 선사하는 엘리아슨의 작품들. “보고 있는 자신을 보는 것은 예술 경험에 있어 중심에 위치하는 관람객 자신을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즉 관람객에게 책임을 넘겨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관람객의 사고방식, 감정, 영감 등에 달린 것이다.” 작가의 이야기처럼 그의 작품은 정적인 사물이 아닌 보여지는 맥락과 관객의 다양한 반응에 의존하는 불안정한 상황 속에 존재한다. 베를린, 스톡홀름,도쿄 등에서 진행한 <녹색 강(Green River)> 프로젝트는 도심의 강에 우라닌이라는 형광 염료를 뿌려 강 색깔을 형광 녹색으로 물들여놓았다. 이 광경을 맞닥뜨린 시민들은 놀라움과 충격에 눈을 의심했다. 느닷없이 변해버린 강 색깔은 꽤 아름답게 보이기도 했고, 일면 자연재해의 흔적인 듯 공포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올라퍼 엘리아슨이라는 예술가의 의도적인 연출임을 인식한 시민들은 이내 고요히 강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자신들의 삶과 함께 흐르던 강의 존재를 상기했을 것이다. 현대 미술은 어느 순간부터 작품을 잘 본다는 것보다 잘 경험한다는 것의 의미에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 미술계는 작품과 작품 외부 존재가 소통하고 연결되는 지점, 작품과 그것을 보는 시선(관객) 사이의 상황과 관계에 주목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올라퍼 엘리아슨은 “내가 하는 작업은 객관적이거나 자립적일 수 없으며 내가 환경과 맺은 혹은 작업이 포함된 맥락과의 관계에 따라 변화한다”라고 언급한다.





몇 해 전, 파리 샹젤리제의 ‘메종 루이 비통’ 에서 경험한 특별한 작품 하나가 있다. 여기서 ‘경험’이라 표현함은 그 작품이 컴컴한 엘리베이터에서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건물 7층에 있는 전시 공간 ‘에스파스 루이 비통’에 오르기 위해 탑승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는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전 상태에 갇혀버렸다. 곧이어 직원의 목소리만 건조하게 울렸다. “이 엘리베이터는 올라퍼 엘리아슨의 <감각의 상실(your loss of senses)>이라는 작품입니다.” 지독한 몇 초간의 어둠, 그 속에서의 불편함 혹은 당혹감. 그러나 시야와 방향을 상실한 그 순간 역설적으로 우리의 감각들은 더욱 명징하게 반응하기 시작한다. 반사적으로 촉을 세운 감각의 안테나, 이것이 바로 감각하는 자신을 감각하는 것!       




                                                                                                                                                                          2012년 봄, 올라퍼 엘리아슨의 서울 전시가 PKM 트리니티에서 열렸다. 경험해야만 진실로 닿을 수 있는 그의 그간의 작품들을 경험하지 못한 아쉬움을 상쇄할 수 있는 반가운 기회다. 2009년 열린 전시 <하늘이 풍경의 일부인가(Is the sky part of a landscape)>에 이어 이번엔 <당신의 불분명한 그림자(Your uncertain shadow)>라는 타이틀로 또 한 번의 신세계를 펼쳐 보였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당기는 건 노란 빛의 커다란 만화경, 가까이 다가가 보니 검은 돌덩어리들이 관객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듯하다. <용암만화경(Lava kaleidoscope)>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6각형으로 배치한 고 반사율 거울 안에 세 개의 화산암 덩어리를 배치했다. 그리고 노란 색유리가 관객과 마주 보는 시선에서 태양처럼 빛을 발한다. 2008년 화산 폭발이 있었던 아이슬란드에서 엘리아슨이 채취한 만화경 속 화산암들은 비추기를 계속하는 거울이라는 반사의 세계에 갇혀 무한 증식한다. 고정된 화산암들은 우리의 착시 안에서 산산이 튀어 오르고, 노란 빛은 그 증식하는 파편들을 근엄하게 감싼다. 화산 폭발, 그것은 재해라는 결과를 낳기에 앞서 그 자체로 장엄한 자연의 움직임이며 우주다. 2m가 넘는 만화경 속에 얼굴을 쑥 들이밀고, 그 아름답고 신기한 광경을 바라본다. 본다는 것이 이토록 즐겁다.







전시장 지하, 커튼을 열고 컴컴한 방 안으로 들어간다. 3년 전, 희뿌연 안개와 다채롭게 변화하던 빛과 색의 혼연으로 아득했던 바로 그 자리. 흰 스크린 위에 빨강, 파랑, 노랑, 그리고 그것들과 섞인 초록색, 분홍색의 육각형이 나타났다 이내 사라지는 <잔상 별(Afterimage star)>을 만난다. 한 가지 색을 보고 있다가 흰색을 보면 보색이 보이는 착시 현상을 뜻하는 ‘잔상’. 다채로운 색깔이 스크린을 쏘다가 일순간 흰색만이 남을 때, 우리 시각은 각자의 착시 효과에 따라 다른 보색을 만든다. 각기 다른 여섯 가지 색깔의 조명과 두 개의 무색 조명이 순서를 번갈아가며 스크린을 쏘고, 평면의 육각형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겹쳐지고 더해지며 어느 순간 입체의 별로 머물고 사라진다. 작가는 빛을 만들어 우리를 향해 던졌고, 우리들은 색으로 받아 감각한다. 때문에 올라퍼 엘리아슨은 이 작품을 ‘극장’이라 부른다. 강렬한 원색과 분홍, 연두, 옅은 하늘빛 육각형들이 쉴 새 없이 나의 망막으로 쏟아진다. 4분 55초간의 영사가 끝나면 방 안의 모든 빛은 사라진다. 이어 망망한 어둠 사이로 “우리가 보는 것은 과연 진짜일까?”라는 질문이 비집고 들어온다.                                    




                                                                                                




올라퍼 엘리아슨 작품에 깃든 진지한 사유와 기발한 아이디어의 물리적인 결과물은 베를린의 거대한 그의 작업실 ‘스튜디오 올라퍼 엘리아슨’에서 실현된다. 이곳은 건축가, 색채학자, 화학자, 테크니션 등 60여 명의 전문가들이 팀을 이뤄 프로젝트를 꾸려간다. 프로젝트 내용에 따라 때로는 이론가,미술사학자, 지리학자, 기상학자들이 스튜디오로 모여든다. 벽에 붙은 알아볼 수 없는 도면들과 원형의 크고 작은 거울들, 곳곳엔 굴절기와 프리즘이 놓여 있고, 어디선가 분해된 기하학 조각들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 스튜디오의 중심을 차지하는 온통 흰색의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는 광학 효과 혹은 빛과 그림자의 다채로운 현상을 실험하고 시도한다. 예술가의 작업실이라기보다 마치 거대한 과학 실험실을 연상시키는 이곳에서, 엘리아슨은 “예술 언어를 예리하게 다듬는 도구로서의 과학”을 실현하고 있다. 그의 작품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가 응당 품고야 마는 의문. ‘빛과 공간, 나와 그림자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의 논리적 실마리가 이 스튜디오에서 탐구되고 해결되고 있는 셈이다. 이곳에서는 또한 <Life in Space>라는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열어 미술학도, 큐레이터,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문화적인 담론을 교환하고, 작품의 내용과 제작 과정에 관한 아이디어를 나눈다. 이는 곧 ‘우리가 왜 그리고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작가의 오랜 질문을 공유하는 장이 된다. 건축, 디자인, 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유연한 협업, 자유롭고 재기 발랄한 발상의 교환이 종국엔 예술의 영역에서 발화하는 이 시대의 유일무이한 실험실. 그렇기 때문에 올라퍼 엘리아슨의 스튜디오는 어쩌면 오늘의 미술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지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예술이라는 사다리는 한없이 올라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예술이 우리 삶에서 멀어진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아티스트 올라퍼 엘리아슨을 향해 오늘, 우리가 조용히 환호할 수 있음은 그의 작품이 보기 드물게 우리 내면의 풍경을 반추하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예술가는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도록 한다”던 발레리(Valerie)의 표현은 결국 “예술가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것을 인식하도록 한다”와 다르지 않다. 예외 없이 가장 철저하고 이성적인 과학이라는 세계 그리고 저 초월적이면서도 삶의 생기와 맞닿은 ‘자연’이라는 운율. 이 둘이 조응하는 자리에서 숨어 있던 저마다의 기억이 되살아나 짧은 탄성을 내뱉으려는 찰나에 예술은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우리에게 안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로!   글/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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