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ON HOTEL
다시 또 떠날 채비를 한다. 여행지가 정해지면 나는 응당 머무를 곳, 어느 호텔에 묵을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공항, 구도심, 레스토랑, 광장, 정류장과 버스 안… 연속해서 마주하는 낯선 장소들의 종착지로서 호텔은 그 어느 공간보다 여행자와 밀접하고 친밀하다. 지나온 여정을 상기하며 짧게 나마 한숨을 쉬며 긴장을 내려 놓는 시간. 낯선 도시의 무방비 상태에서 잠시나마 ‘유일한 사적 공간’이 되는 호텔은 그래서 사소한 결정임과 동시에 사소하지 않은 요소가 된다. 더욱이 나에게 호텔은 언제부턴가 여행의 커다란 즐거움으로 경험되는 까닭에 거꾸로 마음에 품은 호텔에 가보고자 여행을 감행하기도 한다. 어느 도시에선가는 닷새를 머무는 동안 하나의 여정처럼 네 군데의 호텔을 방문한 적도 있다.
내가 어떤 호텔을 선택할 때의 기준은 지극히 사적이며 사소하다. 1930년대 잊지 못할 강렬한 연기를 보여주었다던 독일 여배우가 살았던 집, 빈티지 가구 컬렉션의 숨은 고수가 운영한다는 작은 호텔, 몇 년 전 인터뷰이와 조식을 함께하며 인상적인 대화를 나누었던 호텔 레스토랑에서의 추억, 자살로 생을 마감한 소설가가 한때 글을 쓰며 지냈다는 도쿄의 호텔, 한때 덴마크 대사관으로 사용되었던 위용스런 건물을 개조한 베를린의 호텔에 이르기까지. 이런 그윽한 끌림의 단서들은 기억 속에 숨어 있다가 불현듯 여행의 발로를 이끌고는 한다. 그렇게 당도한 호텔에서 만끽하는 다양한 공간적 경험은 여행 중의 ‘낯선 장소’라는 매력적인 명제 아래 행해지는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침대와 조명, 작은 테이블과 의자라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채워져 있는 모든 호텔의 객실은 각기 다른 디자인의 가구, 저마다의 배치와 스타일로 서로 ‘다름’을 표현할 때 그 절묘함을 드러낸다. 문을 연 당시의 모든 기물들을 갈고 닦으며 여전히 19세기의 숨을 머금고 있는 객실이 있는가 하면, 현대 디자인의 미덕을 충실히 따르는 미니멀한 객실 그리고 어떤 컨셉을 따르지는 않지만 편안하고 정감 어린 감정을 안겨주는 호텔의 방도 이따금 만난다. 묵었던 모든 호텔들을 실측하고 축소된 그림으로 그려 낸 일본 건축가 우라 가즈야는 저서 <여행의 공간>에서 이런 말을 남긴다. “손님이 자기 집에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면 성공이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혜를 짜내 안도감 비슷한 것을 만들어내지만 사실 호텔이 좋은 것은 주거에 없는 가벼운 놀라움이나 즐거움이 있어서이다. ‘한번 더 방문하고 싶구나’라고 여겨지는 편이 좋지 않을까?” 너저분함을 동반한 내 집의 편안함, 안락함을 고려한 것 같으면서도 긴장된 감정을 느끼게 하는 호텔 방 사이의 의뭉스런 차이를 곱씹는 사이 그의 문장이 명쾌하게 다가온다.
여러 도시에서의 쇠하여가는 추억 한 가운데 그나마 빳빳하게 선 기억은 어떤 호텔 방들에서의 순간이다. 벽지와 커튼, 빼어난 곡선을 그리던 모든 가구들과 삐그덕거리던 바닥까지 온통 19세기의 것들로 채워져 되려 그 생경함에 잠 못 이루게 했던 베를린의 호텔 펜션 펑크. 쾰른 시의 옛 문서보관서였던 네오 고딕의 낭만적인 건물을 개조해 객실 마다 미스 반 데어 로에, 찰스 레이 임즈, 아르네 야콥센 같은 20세기 모던 디자인의 정수들로 채워 놓았던 크베스트, 오래된 나무 천장, 빛 바랜 분홍색 타일의 목욕탕 같은 우리의 오래된 모든 오리진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도쿄대 근처의 백 년 넘은 호메이칸. 내 삶의 모든 세월보다 오래 살아남았던 것들과의 하룻밤 잠결의 조우는 기억과 호흡에 깊이 각인된다.
한 겨울의 난 다시 도쿄로 떠날 참이다. 이번엔 메이지 시대 정치가였던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메지로 언덕에 공들여 만든 드넓은 정원을 끌어 안은 호텔로 간다. ‘동백나무 별장’이라는 뜻의 호텔 친잔소(椿山莊)에서라면 겨울 햇빛이 곱게 정원을 스치는 오후를 바라볼 수 있을까? 푸른색 카펫에 붉은색 장미 무늬를 직조한 두툼한 커튼, 골드 빛의 가느다란 바디의 플로어 스탠드가 놓인 클래식하고 탐미적인 방의 넓은 창으로 말이다. 여행지에서, 대개의 기대는 늘 그 이상의 무언가로 화답하곤 했다. 글/박선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