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는
2021년 백현진의 말
(2021년 6월 3일 오전11시 pkm 갤러리에서의 기자간담회 내용을 담았다. 질문은 각기 다른 기자가 던졌다)
Q. 타이틀이 <말보다는>이다. 말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을 설명하는 일체의 텍스트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많은 전시들을 다니면서 보고 듣는게 재미있는 경우는 더러 있지만 현대미술에서 텍스트가 인상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작품과 관련된 텍스트들이 솔직히 내겐 재미가 없었다.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Q. 이전보다 연기활동이 많아졌다. 본격적인 연기자로써 보여지는 느낌이랄까. 이런 와중에 개인전을 하는 마음은 어떤가?
이번 전시는 3년 정도 준비했다. 이따금 개인전을 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써 이번에는 개인적으로 마음이 좀 괜찮은 것 같다. 선보이는 60여개 작품 중에서 44점이 페인팅인데, 페인팅은 상상해보실 수 있는 것처럼 계속 캔버스 앞에 앉아있거나 서있는 일이다. 나와 그림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실시간으로, 어쩌면 인스타그램보다 더 리얼타임으로 내 그림을 보게 된다. 그런 와중에 사운드트랙 오리지널 스코어를 작곡하는 것처럼 이 전시를 위한 스코어를 드러내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관 1층에 대한 스코어가 있고, 메자닌 공간의 스코어가 한 개 있고, 별관은 1층과 지하도 마찬가지로 각 공간에 대한 스코어가 있다. 앨범으로 생각하면 4곡짜리 35분 정도 러닝타임 앨범이 하나 나오게 되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어폰을 늘 지니고 다니니까 그림을 보며 QR 코드로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게 장치들을 해봤다.
Q. 연기활동은 현장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아티스트로서의 일은 오롯이 혼자만의 집중을 요구한다. 연기를 하는 동안은 단기간 하나의 소사이어티가 형성되고, 다시 페인터로서 독자적인 세계로 돌아오는 것일텐데 그 밸런스를 어떻게 유지하나?
A. 처음 카메라 앞에 선건 99년 반칙왕이라는 영화에서 였다. 거기 음악을 담당했는데 김지운 감독이 내 캐릭터가 이상하니까 잠깐 카메라 앞에 나와달라고. 주인공 중 한명이 룸쌀롱에서 노는데 거기 오브리밴드 멤버 중 한명으로 출연했다. 그게 내 기억으로는 처음 카메라 앞에 선 건데, 카메라 앞에 서면 어색해진다거나 카메라를 극복해야한다고 하는데 그냥 카메라를 보면서 저게 하나의 기계구나 싶었다. 사람이 뭘 하는 걸 기록하는거구나. 냉장고 앞에 서 있는거랑 선풍기 앞에 서있는거랑 카메라 앞에 서 있는게 크게 다르지 않더라. 이후 2000년대 초반부터 영화에 가끔씩 출연했는데, 사실 시장에서 나를 찾아서 배우로서 살게 된건 5년이 안된다. 난 일생을 혼자 일을 해온 사람이다. 특히나 그림은 늘 혼자하는거고 음악은 90년대 중반부터 함께해온 몇몇 친구들과만 함께 해왔다. 근데 배우로 일을 하다보면 현장에 보통 100명 이상씩 있다. 보통 혼자 있거나 몇 사람과만 일을 하다가 배우로서 현장에 가면 일시적 소속감을 느끼는 데 썩 괜찮은 것 같다. 앱으로 치면 이 앱을 한번씩 켜는게 정신적으로도 균형 맞추는데 괜찮게 느껴진다.
Q. 말이 아닌 것들이 더 중요한 것 같아서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사실 전시된 작품들 제목 보면 굉장히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말로 안되는 것이 있다. 언어로 되는 거라면 소위 문학이라는 매체 안에서 일을 보면 되는건데 그림도 음악도 그게 안되는거다. 2년 전 PKM에서 전시했던 작품 중 하나가 <여기 있는 제목은 모두 없어도 좋다>였는데, 그게 사실 제목에 대한 제 마음이다. 그렇다면 '언타이틀드'로 할 수 있는데, 사실 현대미술에서 '무제' 자체가 너무 강력하게 이야기하는 신호가 있다. 이번에는 모든 작품에 제목이 있지만, 투덜대는 친구를 투덜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가벼운 링크 정도로 보면 된다.
Q. 전시장에서 제일 큰 그림 같은데, 이 <밝은 어둠>이라는 그림은 무엇에 대한건가?
뭘 그리겠다고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니다. 그림이 이렇게 끝날지는 전혀 모른다. 연애할때도 연애가 어떻게 끝날지 모르고 하지 않나. 사는 것도 마찬가지고. 그림 그리는 과정이 그런 거 같다. 난 종교가 없기 때문에, 인간도 그냥 막 태어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림도 막 그리기 시작한다. 무슨 색으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도 없다. 어느날 시작되었다가 어떻게 될지 계속 지켜보는거고 하다가 보니 이렇게 된거다. 근데 이 일을 오래 하다보니까 저거 백현진 그림이구나하는 무엇은 좀 있는거 같다. 근데 내 그림을 굉장히 예전부터 본 사람들은 굉장히 그림이 달라졌다고 느낀다. 왜냐면 예전에는 사람 형상 같은게 많았거든. 그런게 보시다시피 사라졌고, 어떻게 어떻게 그리다가 이렇게 끝이 난건데 밝은 어둠, 밝은 어둠... 그 말이 계속 헛돌더라. 밝은 어둠이이라는게 이미지적으로 상상을 하면 되게 헛도는데 이게 밝은 어두움같은 느낌이 들더라.
Q.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 퍼포먼스, 음악, 설치를 다 아울렀다.
하다보니 이렇게 됐다. 하다보니 이것 저것 추가가 되었다. 별관의 모든 작품들은 제목이 <생분해 가능한 것>이다. 전 인류가 역병의 기간을 통과하고 있지 않나. 개인적으로도 바이러스 시절을 통과해 살면서 전에 안해본 생각들을 하게 됐다. 음악이란 매체가 진짜 쿨하구나 싶은게 소리는 실시간으로 사라진다는 거다. 그게 음악하는 사람으로써 현재까지 음악에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다. 배우도 마찬가진데 몸뚱아리로 뭔가 해내고 그게 디지털로 기록 되는거다. 근데 미술이 항상 걸렸다. 작년 1년 역병 시절 통과하면서 뭘 이렇게 물건들을 만들어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그리는건 좋아하니까 그림은 많아지는데 지겨워죽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으로써 자연의 일부로서 내가 재밌다고 계속 만들어내는게 맞는건가. 사실 15년 전부터 유화가 제일 맞는거라 판단해서 유화를 주재료로 쓰기 시작하는데 유화란건 사실 영원에 대한거다. 유럽에서 부자들이 영원을 염원하고 욕망하면서 만들어낸 재료 중 하나가 유화라고 알고 있다. 내 스튜디오에 전 세계에서 온 유화 물감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이걸 다 리셋하자니 사모은 돈도 돈이고 내가 지겹다고 해서 깨부수는게 맞나 싶기도 했다. 속성을 바꿔나가는게 그나마 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젊을땐 밀어버리고 쓸어버리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살아보기도 했는데 지금은 있는거 안에서 속성을 변화시키면서 fade in -fade out 하면서 다름을 모색해봐야지 그런 생각이다. 유화라는걸 다 버리는게 능사는 아닐텐데 싶으면서 계속 부담이 되어서 생분해 가능한 재료를 좀 찾아봤다.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재료들을 모아다가 작업한 결과물이 별관 1층의 <생분해 가능한 것들>이다. 저 그림들은 뒷동산에 던져 놓으면 다 사라진다. 살짝 바른 본드 역시 독일에서 만들어 놓은 생분해 가능한 재료를 사용했다. 여긴 유화들이 있지만 일부라도 그렇게 해보니 마음이 뭔가 편해졌다. 앞으로 저 방향으로 가게 되지 않을까 싶다. 정말 쿨한 컬렉터가 저 그림 사서 보다가 어느 날 '이 작가 웃기는 놈이네'라고 내다 버려, 그게 다 사라져버리면 진짜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Q. 5년 전에 당신과 인터뷰를 한적이 있다. 당시 '당신을 통과하고 있는 생각이 뭐냐?'고 물었는데, ‘자연의 이부로 살아가면서 뭔가 덜 하는게 맞는 것 같다. 무리 없이 사는 것’ 이라고 했다. 그 말은 일시적인 생각이 아니라 큰 틀에서의 태도 같은 거라고 느껴졌다. 'doing for nothing'이 현재 당신의 라이프랑 어떻게 연결되고 있나?
어떤 큰 방향 같은 거라고 생각을 한다. 여전히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근데 요즘은 드라마 촬영이 너무 많아져서 무리 없이 살겠다는 말이 거짓말이 되어 버렸다. 사실 연기로 바쁜건 올 한해 집중적으로 경험해야겠다고 내 의지로 판단한거다. 짧은 기간 안에 연기를 몸에 더 붙여보려고. 그게 앞으로 편할거 같아서 일을 하는데, 사실 무리가 좀 있다. 올해까지는 배우로서 소화해낼 걸 마치고 내년부터 다시 무리없이 살려고 한다.
Q. 예술을 하는 각자의 이유가 있을거다. 당신은 어떤가?
이 표현을 사용한지가 십 몇 년 되는데, 난 그저 내 일을 보는 거다. 빵 만드는 분들은 빵 열심히 만드는 것처럼 난 그냥 작업을 하면서 내 일을 보는거다. 사람들한테 그냥 일(work)본다고 얘기한다. 근데 성실하게 일을 보려고는 한다. 일에 있어 부끄럽고 창피한거 싫어한다. 누구는 완벽주의자냐고 하는데 난 완벽에 대한 개념을 믿지 않는다. 이번 작품 중에서 <온전함과 온전함>이라는 게 있는데, 번역가가 그걸 <complete & perfect>라고 했더라. 실은 완전함과 완벽함이란게 너무 말이 안되서 그 제목을 받아 들여서 쓰기로 한거다. 난 불완전함, 불안정적인거 불확실한 거에 대해 관심이 지대하게 많다. 20세기 초반에 과학, 수학쪽에서 불안전함, 북확실함을 증명하는 하이젠베르그나 괴델을 무척 좋아한다. 어떤 예술가 못지 않게. 완벽함도 믿지 않지만 성실하게 일을 보려고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