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가처럼 정겨운 나만의 여행지
외가처럼 정겨운 나만의 여행지
2019년 7월 14일 아제르바이잔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어릴 적 나의 놀이터, 장성 필암서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된 것이다. 내 고향에도 세계문화유산이 있다니 뿌듯하고 좋다.
고향에 가면 그곳에 꼭 들른다. 어릴 적 엄마 손잡고 갔던 장성 필암서원은 외가처럼 포근한 느낌이다. 늘 쓸쓸해 보였던 엄마는 서원에 가면 목소리가 활기차고 표정이 당당하고 밝아 보여서 좋았다. 그때를 마음속에 떠올리면 행복으로 맘이 꽉 차오른다.
‘엄마의 가슴에서 화롯불이 활활 타오르더니 얼굴까지 벌겋게 달아올랐다.’
놀래서 벌떡 깨어났다. 다행히 꿈이었다. 집안에 한바탕 폭풍이 일고 간 후였다.
전남 장성에 있는 우리 마을은 울산 김 씨 집성촌이고 외가는 울산 김 씨 양반 종갓집이다. 엄마는 무남독녀로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그 당시 가풍으로 양자를 들여야 하는 것이 그 집안의 중요한 일이었다.
집안의 불화는 양자 들이는 일 때문에 시작되었다. 집안 어른들은 서로 자기 아들을 양자로 들여보내려고 자주 찾아와 서로 싸우고 시비를 걸었다. 몇 년 동안 그 고통은 고스란히 외할머니와 엄마의 몫이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양자가 된 외삼촌에게 집과 거의 모든 재산을 내어주고 작은 집으로 이사 나왔다. 엄마는 그 허전한 맘을 어떻게 다스리며 사셨을까? 양반 자손이기에 감당해야 된다고 엄마는 늘 말씀하셨지만, 쓸쓸한 맘을 달래러 필암서원에 자주 가신 것 같다.
청산(靑山)도 절로 절로 녹수(錄水)도 절로 절로
산(山) 절로 절로 물(水) 절로 절로
산수간(山水間)에 나도 절로
그중에 절로 난 몸이니 늙기도 절로 절로(하서 김인후)
엄마는 필암서원 가는 길에 하서 선생의 시조를 읊어주시곤 했다. 자연이 '절로 절로' 사라져 가는 것처럼 우리도 '절로 절로' 나이 들어간다는 뜻이라고 하셨다. 서원 마루에 앉아 하서 선생 이야기를 해주고, ‘절로 절로’하며 시조를 읊조리신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시간이 절로 흘러가면서 엄마는 악몽 같았던 모든 일들을 잊었으리라 믿는다.
울산 김 씨는 '경남 울산이 본인데 왜 장성에 살게 되었을까?'
조선 건국의 공신인 김온의 부인 여흥 민 씨는 김온이 사망하자 3형제를 이끌고 전남 장성 땅으로 내려왔다. 하서 김인후(1510-1560) 선생은 그의 후손으로 조선의 문신이며 중종 15년, 인종이 세자 시절에 스승이었다. 성리학의 대유학자 동방 18 성현으로 호남에서는 유일하게 성균관 문묘에 배양되었다.
하서 선생은 퇴계 이황과 함께 성균관에서 학문을 닦았다. 이황은 ‘성균관에서 벗 한 사람을 사귀었으니 하서 한 사람뿐’이라고 했으며 ‘하서의 도학을 짝할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문과에 급제한 뒤 홍무관 부수찬을 거쳐 전라도 옥과의 현감이 됐다. 인종이 승하한 뒤 당쟁이 치열해질 것을 염려해 현감 관직을 버리고 장성으로 내려가 성리학 연구에 매진했다.
호남 유림들은 하서 선생의 높은 절의와 학문을 숭앙하기 위해 장성 기산리에 사우를 창건하고 위패를 모셨다. 조선 현종 3년 '필암'이라는 액 호를 하사 받고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필암은 하서의 고향 (황룡면 맥동리)에 붓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았다.
필암서원에 들어서면 홍살문과 하마비가 있고 문루인 '확연루(廓然樓)'를 통해 들어간다. 확연루 현판은 우암 송시열의 글씨이며, 원생들의 휴식처였다. 청절당은 유생들이 공부하던 강당으로 필암서원의 현판이 걸려있다
경장각(敬藏閣)에는 정조(1572-1800년)의 친필 편액이 걸려있다. 인종이 손수 그려 하사한(1543년) ‘묵죽도’와 ‘주자대전’이 보관되어 있다. 후일 정조는 내탕금을 내려 경장각을 지어 ‘묵죽도’를 보관하게 하였고 초서로 된 친필 편액을 하사하였다. 유생들이 기거하던 진덕재, 숭의재와 하서 집 등 판각이 보관되어 있는 장판각과 사당인 우동사가 있다. 원래 민가와 서원에는 단청을 하지 않았는데 필암서원의 확연루, 우동사와 경장각에 단청이 되어있다. 그중 경장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 팔작지붕으로 모서리의 용머리가 돋보이며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다.
필암서원은 아담하고 짜임새 있는 건물들과 각각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편액을 둘러보는 재미가 좋다. 유물 전시관에는 서적이나 목판을 전시하고 있으며 서원의 내력과 생활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릴 적 엄마의 손을 잡고 필암서원에 가서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 확연루에 올라가서 놀기도 하고 서원을 구석구석 보며 산책하곤 했다. 깔끔하게 단장되어 호남의 명소 된 필암서원은 알아갈수록 더욱 매력 있는 곳이다. 평지에 위치한 서원은 항상 조용하고 한적해서 걷다 보면 저절로 힐링이 된다. 엄마가 자랑스러워하시던 하서 김인후 선생을 느낄 수 있고 특히 정조의 달필(경장각 현판)을 만나 수 있어서 좋다. 장성 필암서원은 나에게 서원의 의미를 넘어 엄마의 밝은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나의 숨겨둔 여행지이다.
주변 여행지로는 치유의 숲, '편백나무 숲'길(장성 서삼면 일대)과 홍길동의 생가와 유물들을 볼 수 있는 '홍길동 테마파크'가 있다. 허준 소설 속. 천년고찰 '백양사'는 노령산맥 줄기의 백암산에 위치해 경관이 빼어나고 가을 단풍이 특이 아름답다. 숙소는 편백나무 숲 주변 펜션과 홍길동 테마파크의 전통가옥에 머무를 수 있다.
먹거리로는 소고기 생고기 ('생 숯불갈비', 장성읍 청운길 10, 061-392-2718)와 남도 밥상을 드실 수 있는 '해운대 식당'(장성읍 청운길 5, 061-395-1233)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