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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가 함께 한 유럽여행

by 여행작가 히랑


3대가 함께한 유럽 여행


우리의 유럽 여행은 부모님을 위한 효 여행이었다. 1992년, 60세가 훨씬 넘으신 시부모님, 시이모님, 3,4살인 두 아들과 우리 부부 7명이 함께 배와 기차를 이용한 배낭여행이었다. 그 당시 패키지여행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있다 해도 국내 출발이 아니라 터키 출발이니까 패키지는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 24년 전 그때 그 가족 구성원으로 어떻게 유럽 배낭여행을 다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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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 다녀와서 그 당시 쓴 여행 일기장을 발견했다. 무엇을 타고 어디를 갔고, 무얼 먹었고, 여행지 느낌과 식구 챙기느라 힘든 기분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써 놓았다. 여행의 진정한 매력은 여유인데, 유럽의 큰 도시를 하루씩 찍고, 찍으며 정신없이 다녔다. 친한 유학생 부부가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와서 많은 정보를 주어서 그들과 비슷하게 다닌 것 같다. 여행기를 쓰다 보니 자꾸 우울한 방향으로 흐른다. 행복한 여행이 아니라 아쉬운 기억만 있기 때문이다.


티키(Izmir)―(배 2시간, 13시간 두 번)―그리스(아테네)-(배, 20시간)―이태리(브린디시)―(밤기차)-로마-(기차)-베네치아(호텔투숙)―(기차)―스위스(루쩨른,호텔투숙)―(밤기차)―프랑스(파리,호텔투숙2박)―(밤기차)―독일(베를린)―(기차)―하이델베르크―(밤기차)비인-(밤기차)―헝가리-(기차)―이태리-(배)―그리스-(배)―터키(Izmir)


터키 이즈미르(Izmir)에서는 에페스(Efes)와 마리아 하우스(Maria House)등을 우리 차를 타고 편하게 다녔다. Izmir에 차를 놓고 그리스로 향해 배를 탔다. 유레일패스를 이용해 그리스와 이태리를 배와 버스로 가고 이태리부터는 계속 기차로 다니는 코스였다.

그리스 아테네에 갔다. 아크로폴리스는 멀리서부터 그 웅장함이 느껴졌고, 판테온 신전, 여신들의 모습은 역사책에서 보아서인지 그동안 많이 봐왔던 것처럼 익숙했다. 오르내리는 계단이 너무 미끄러워 거의 기다시피 해서 계단을 올랐다.

로마에서는 콜로세움, 포르노마노, 베네치아 광장과 바티칸 City를 갔다.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은 들어가지 못했다. 로마가 너무 더워 남편과 내가 반바지를 입어서이다. 반바지 입으면 못 들어간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날씨가 더워서 깜빡한 것이다. 아쉽고, 아쉬웠다. 로마에서 낮 동안 머물고 저녁시간에 베네치아로 갔다.


베네치아에서 펜션에 하루 묵었다. 밥 해 먹고 빨래하고 나니 새벽 3,4시가 되었다. 잠시 눈 붙이고 오전에 아름다운 물의 도시 베네치아도 서둘러 보고 바로 스위스로 향했다. 아테네, 로마와 베네치아를 몇 시간씩만 머무르며 계속 이동했다. 젊은이도 힘든 스케줄을 어른들과 아이가 있는 우리 식구가 해내고 있었다. 갑자기 공기가 시원해지더니 스위스 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친 와중에 스위스의 산야는 정신이 버쩍 들도록 아름다웠다. 동화 알프스 하이디에서 나온 그런 산이었다.

스위스 베른에 내려 루체른으로 갔다. 루째른의 여행코스 Pilatus는 유람선과 등산열차를 타고 올라가서 케이블카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1인당 60불로 우리 수준에서 굉장히 비쌌지만 스위스의 굉장히 멋진 모습을 다 볼 수 있었다. 스위스에서는 호텔 조식도 맛이 좋았고 슈퍼에서 사 먹은 요플레와 과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음식 중 가장 맛있는 것 같았다.

서로 다른 나라에 있는 도시들을 하루나 반나절씩 둘러보고 옮겨 다니니 정신없고 몸을 서서히 지쳐갔다.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드디어 대학교 때 전공 공부하며 꿈꾸고 10년 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파리에 가는 것이다. 떨리는 맘으로 파리 동역에 도착했다. 파리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도시가 박물관 그 자체였다. 파리에 머무는 2박 3일 동안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센 강 유람선 밖에 타지 못했다. 이모님은 파리에서 한국으로 돌아가시게 되어 표 끊어 보내드리느라 시간을 다 보내 버렸다. 파리에서 귀한 시간을 그렇게 보내다니 아쉽고, 아쉬웠다.

독일 베를린으로 향했다. 파리에서 베를린까지 기차로 12시간이 걸리는데 시아버님이 꼭 가고 싶어 하셨다. 베를린에서는 브란덴부르크 베를린 장벽만 보았다. 그 장벽만 보러 12시간을 달려간 것이다. 좀 허망했지만 아버님이 만족하시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갔다. 하이델베르크 성은 비델스브 가문이 살았다고 한다. 화려한 무늬로 장식된 천정이 인상적이었다. 성을 내려와 꼭 사고 싶었던 독일 쌍둥이 칼을 하나 샀다.

오스트리아 비인으로 가는 밤기차를 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비인과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함께 가다가 중간에 객차가 서로 떨어져 목적지로 가는 기차였다. 우리는 비인 가는데 부다페스트 가는 칸에 탄 것이다. 비인을 가기 위해 새벽 2시 반에 자는 애들을 둘러업고 중간에 내려야 했다. 30분 기다리다 다른 기차로 비인으로 갔다.

비인 역에서도 졸고 식당에서도 졸았다. 그때는 이미 지쳐서 여행이고 뭐고 어디든 자리 깔고 자고 싶었다. 남편은 그곳에서 컴퓨터를 사고 싶어 했다. 부모님은 애들 데리고 식당에 계시고 식당 주인에게 물어 외곽에 있는 쇼핑몰에 갔다. 비인에 힘들게 가서 구경도 안 하고 왜 컴퓨터를 산다는 건지 정말 화가 났지만 부모님 앞에서 싸우기 싫어 꾹꾹 눌러 참았다. 컴퓨터가 비싸서 결국은 사지도 못하고 식당으로 돌아왔다. 정말 어이없는 하루였다.

비인에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밤에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향했다. 그럴 거였으면 새벽에 부다페스트로 기차 탔을 때 바로 가버릴 걸. 낮 기차를 타고 가서 부다페스트에서 숙소를 찾아 하룻밤을 보냈다. 아이들도 어른도 지칠 대로 지쳐서 여행은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태였다. 헝가리에서 불가리아를 거쳐 기차를 타고 터키 이스탄불로 돌아가려고 했다. 국경을 통과하기 때문에 비자를 받으려고 했으나 도대체 말도 안 통하고 불가능했다. 포기하고 이태리를 통해 그리스, 터키로 출발할 때와 똑같이 배 두 번 타고 터키 Izmir로 들어왔다. 어른들 모시고 두 아이 데리고 한 우리의 거친 유럽여행은 14일 만에 끝이 났다.


남편은 효심이 지극했다. 터키로 출국 전에 부모님을 위해 해외여행 적금을 들었었다. 문제는 유럽여행 자금이었다. 6개월 동안 쓸 생활비에서 6,000불 정도를 가지고 여행을 떠났다. 좋은 호텔에서 묵을 수도, 맛있는 식당을 갈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60세가 넘으신 시부모님, 시이모님, 3,4살인 연년생 아들과 함께 하는 배낭여행은 참 무리한 도전이었다. 유학시절 넉넉지 못한 형편에 우리가 부모님께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이었다.

어찌 보면 더 나은 여행을 할 수도 있었다. 부모님도 여행하기 위해 웬만큼 돈을 가져오셨을 것이고 이모님도 아주 잘 나가시는 분의 사모님이었다. 문제는 남편의 마음 자세였다. 본인의 능력 되는 대로 부모님께 극진히 해드리려는 마음이다. 부모님은 아들을 믿고 아들이 하는 게 최선인 줄 아셨다. 우리는 그런 세대이다. 부모님의 도움은 전혀 받지 않고 모든 걸 해나가려고 하고, 자식에게는 다 해주고 있는 ‘낀 세대’이다

시부모님은 그때 이 후로 해외여행을 하실 기회를 갖지 못했다. 부모님은 여행 다녀오신 후 오래도록 유럽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행복해하셨다. 아버님은 틈나는 대로 여행기를 쓰시고 여행사진을 전부 인화해서 정리하는 재미로 지내셨다. 덕분에 유럽여행을 잘 다녀왔다고 늘 말씀하셨다. 이제는 더 근사하게 모시고 다닐 수 있는데 부모님은 우릴 기다려주시지 않았다. 아버님을 하늘나라에서 고생하며 다녔던 유럽의 도시들을 편안하게, 천천히 다니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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