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바르샤바는 차분하고 백조가 노니는 잔잔한 호수 같았다. 신선한 봄의 향기와 중후한 유럽 분위기가 함께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알록달록 튤립이 지천으로 피어있고 붉은 벽돌로 된 뾰족한 집 창문에선 제라늄이 반갑게 인사한다. 새로운 곳에 가서 늘 느꼈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바르샤바에서는 우리 가족 한 명 한 명이 그동안 노력해 왔던 것들을 발휘하고 펼쳐내야 하는 시기였다.
바르샤바 예쁜 집
폴란드 우리 집은 바르샤바 ‘빌라노프(Wilanów)’에 있었다. ‘빌라노프’는 정원 딸린 예쁜 집들이 많고 외국인이 많이 사는 바르샤바의 변두리 공기 좋은 곳이다. 빌라노프 궁전(WilanówPalace)이 있고 그 옆의 예쁜 상가에는 한국인 몇 분의 가게가 있다. 한가한 날에는 그 가게에 찾아가 차도 마시고 쇼핑도 했다. 큰 길가에 위치한 맥도널드는 모든 주변 사람들의 편안한 약속 장소이고 버스 종점이 있다. 외곽에 있는 아이들의 학교 American School 쪽과 시내 쪽으로도 가는 버스도 많은 편리한 곳이다. 그 옆에는 늘 예쁜 꽃이 넘쳐나는 묘지가 있다. 주택가 바로 옆에 묘지가 있는 것은 외국에서는 흔한 모습이다.
정원의 호두나무에서 연두색 싹이 나오고 양지바른 곳에서는 조그만 달걀 모양의 튤립 꽃이 고개를 내민다. 한 울타리 안에 정원을 사이로 두 채의 커다란 집이 있는데 앞쪽은 주인집이고 뒤쪽이 우리 집이다. 주인 할아버지는 전채 마당을 매일 청소하고 잔디가 많이 자라기 전에 예쁘게 깎아놓는다. 주변 집들 중에서 우리 집에 나무가 가장 많았고 정원 중앙에 있는 커다란 호두나무는 넓은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지하까지 4층으로 된 우리 집은 맨 위층이 압권이다. 팬트하우스처럼 집 전채를 하나의 방으로 만들어 놓았고 누우면 파란 하늘이 보이도록 천정을 유리로 만들어 놓았다. 한가한 날 아침이면 책 한 권과 커피를 들고 올라가 하늘로 난 창을 열고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곤 했다.
아이들은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 주변 사람들은 버스를 태워 학교에 보내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라 하지만 다 큰 두 아들은 그냥 버스로 통학시켰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스쿨버스를 태워봤지만 비싸고 동네를 빙글빙글 돈다고 아이들이 싫어했다.
남편 출근하고 아이들 학교 가는 모습을 방 창문으로 내려다보면서 잔잔한 행복을 느꼈다. 집 청소는 자주 쓰는 장소, 안방, 애들 방, 부엌만 주로 했다. 부엌은 1층 방은 2층에 있어서 식사 시간에는 커다란 종을 하나 마련해 ‘땡땡땡’ 쳐대야 했다. 거실은 겨울에 자작자작 자작나무를 태울 수 있는 페치카가 있고 파티가 있거나 손님이 오는 경우에만 주로 사용했다.
바르샤바 일상
남편이 국방무관이라 안사람으로서 할 일이 많았다. 각 나라 주최 연회와 무관들이 초대하는 디너파티에 남편과 함께 참여했다. 낮에는 무관 부인들과 매주 한번 English Class와 한 달에 한 번씩 Coffee Morning(무관 부인 회의), Cooking Demonstration(요리 시연)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 주최할 때는 매우 바빴다. 부인들 모임은 간단한 다과를 준비했고, 디너파티는 한국음식과 서양 음식을 적절히 준비했다. 처음에 20-30명 위한 파티 준비를 할 때는 꽤 복잡하고 신경 쓰였으나 차츰 할수록 요령이 생기고 쉬웠다. 고기 요리로는 갈비찜, 불고기, 생선 요리로는 연어스테이크, 장어구이, 김밥, 잡채와 샐러드, 김치 등을 준비했다. 후식으로는 이태리 무관 부인에게 배운 티라미수를 준비해 주면 외국인들은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연신 올려댔다.
Cooking Demonstration(요리 시연)은 한국음식으로 잡채요리를 시연해주고 함께 먹었다. 두 번째 시연 때에는 뭘 할까 고민하다 파를 조금만 넣고 해물파전과 두부부침을 했다. 요리가 간단하다고 감탄하며 다들 맛있게 먹었다.
한국음식은 의외로 요리방법을 알려주고 같이 해 먹을 음식이 없다는 걸 새삼 느꼈다. 외국인들은 매운 음식도 잘 먹지 못하고 찰떡 종류를 싫어해서 제외시키고 나면 떠오르는 음식이 주로 중국, 일본요리였다. 일본은 초밥 요리로 김밥, 미국은 터키 구이, 닭튀김, 영국은 케이크, 이태리는 티라미수, 스페인은 파에야, 포르투갈은 아이스크림, 터키는 바클라바, 세르비아는 곡물빵, 체코는 굴라쉬(고기와 야채로 만든 스튜) 등을 시연했다. 각 나라의 특유의 음식을 해주니 어느 맛 좋은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미국, 영국, 체코 등 친한 부인들은 김치에 관심이 많았다. 김치 담는 날 몇몇 부인들을 불러 같이 담고 보쌈을 만들어 함께 먹었다. 오전 10시에 김치 속을 넣으려고 하니, 배추 절여 씻어 물 빼고, 김치 양념 준비하느라 밤새 해야 했다. 시간과 양념의 양이 정확히 맞아야 맛있는 김치가 된다. 김치 담는 일이 상당히 과학적이라고 새삼 깨달았다.
바르샤바를 관통하고 있는 비스와 강 (Wisła江) 강가를 달리다 보면 올드타운(Old Town)이 보인다. 올드타운을 보면 ‘내가 이토록 아름다운 유럽의 한 도시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바르샤바는 서부 유럽 어느 복잡한 도시보다 조용해서 좋았고 물가가 쌌다. 사람들의 표정은 좀 굳어있지만 쇼핑을 할 때 호객행위하는 걸 보지 못했고 바가지 씌우는 일도 없었다.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오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것을 붙잡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머물기 마련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인생을 살면서 좋은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진리를 절실하게 느꼈다. 남편이 터키와 나이지리아에서 교육을 받았던 것도 무관이 되기 위한 준비였다고 보면 된다. 아이들도 그동안 공부를 열심히 해서 폴란드 American School에 잘 적응했고, 미국으로 대학을 갔다. 남편이 처음 만날 때부터 유럽여행을 운운하며 무관의 꿈을 꾸었기에 난 거기에 맞춰 영어와 요리를 꾸준히 공부했고 폴란드에서 나름 가지고 있던 실력을 다 풀어내었다. 우리 가족의 폴란드에서의 생활은 성공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