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에서 본 경제적 욕망의 다섯 가지 지평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본 경제적 욕망의 다섯 가지 지평
“도시를 약탈하고 사람을 가정과 고향에서 몰아내는 것은 돈이다. 돈은 천부의 순진성을 뒤틀어 타락시키며, 부정직한 습성을 키워준다” -소포클레스-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희로애락은 거의 돈과 연결이 된다. 직접적인 영향이 없더라고 끝과 시작은 돈 때문이며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이다.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체 높은 귀족이나 양반의 사랑채에서는 돈 이야기를 꺼렸다지만, 그것은 어쩌면 위선이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생활과 문화에 있어 초시대적 보편성을 갖는 것이 바로 돈이기 때문이다. <돈>은 소설 등 문화콘텐츠에서 현실을 말하는 가장 구체적이고도 거듭해서 되풀이되는 기호이고, 욕망의 대상이다.
-강의록 중에서-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본 경제적 욕망의 다섯 가지 지평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작품 속에서 교술적, 욕망의 충족, 욕망의 좌절, 경쟁적, 욕망의 생산과 쾌락의 소비 지평 등 다섯 가지 지평으로 나타난다.
최근 돈에 대한 욕망을 가장 강력하고 다양한 지평이 드러낸 문화콘텐츠가 Netflix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아닌가 싶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회생의 희망이 없는 수억 원의 채무를 가진 사람들만 선정하여 동의를 받은 후 총 6게임을 진행해 탈락자는 무조건 사살되고 최종 우승자 1명에게 거액의 상금을 주는 게임이다. 456명이 게임에 참여해 성기훈이 최후의 승자가 되고 상금 456억이 들어있는 카드 1장을 받고 집에 돌아온다. 돈을 벌어 집에 돌아왔지만 노모는 죽어있었고, 처절한 죽음들은 앞세우고 받은 돈에 회의를 느끼고 단돈 1만원밖에 쓰지 못한다. 폐인처럼 지내던 중 오징어게임 명함을 받고 찾아간 곳에서 게임 경쟁자였던 일남 할아버지를 만난다. 돈을 벌만큼 번 부유층의 단순한 재미를 위해 오징어 게임을 만들게 되었고 일남 할아버지는 자신이 게임 주최자라고 고백한다. 게임에 참여한 자들 간에 상금을 쟁취하기 위한 인간의 악한 본성을 드러내며 경쟁하는 모습에 재미를 느낀다는 것이다.
‘교술적 지평’은 경제적 욕망을 필수적이지도 않고 본성적이지도 않으면서 무절제하게 자기 증식하여 타락한 것으로 치부한다. 임춘의 ‘공방전’에서 잘 드러난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교술적 지평은 기훈이 게임의 승자가 되어 456억을 받은 이후에 나타난다. 돈을 얻기 위해 욕망에 가득찬 수많은 사람의 죽음 뒤에 승자인 자신에게 주어진 돈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 인간 목숨을 건 치열한 게임이 부유층의 단순한 재미를 위해, 인간 존중이 무시된 채 '체스 말'에 불과했다는 것에 분노를 하고 상금을 받은 이후에 전혀 사용하지 못한다.
‘욕망의 충족 지평’은 경제적 욕망의 대상에 다가가기 위한 주체의 실천적 행위를 강조한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첫 번째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 충격을 받고 그 이후의 게임에 기권을 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지만 결국 그나마 기회가 있는, 수백억 돈이 걸려있는 게임 세계로 다시 돌아온다.
‘욕망의 좌절’은 돈의 결핍으로 인한 적의와 저항감 및 좌절감이다. 오징어 게임에 참여하기 전에 나타난다.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빚을 지거나 좌절감을 느낀 사람들은 가정해체, 무기력, 범죄와 자살까지 시도한다. 기훈의 무능력으로 가정은 해체되었고 노모에게 용돈타서 경마장에서 시간을 보내며 놈팡이처럼 살아간다. 오징어게임 후에 게임의 최후의 승자로 456억을 벌어 돌아오지만 노모는 이미 사망한 뒤였고 현진건의 ‘운수좋은날’의 김첨지처럼 좌절감과 돈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 서울대 출신으로 증권회사 직원이던 상우는 수십억의 빚더미에 올라 자살까지 시도하고, 탈북자인 새벽은 소매치기를 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경쟁적 지평’은 욕망의 대상들끼리의 경쟁, 주체와 중개자와의 경쟁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하는 지평이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수없이 나타난다. 돈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수백억의 상금을 차기하기 위해 인간 가장 밑바닥에 있는 도덕성까지 버리면서 목숨 걸고 경쟁하며 달려든다.
기훈은 연약한 노인인 일남에게 연민을 느끼고 배려했으나 구슬 게임을 하면서 살고자 하는 욕망 앞에서 일남을 배신하고 승리한다. 상우는 이주 노동자 알리와 구슬게임을 하며 속임수를 써서 승리로 이끈다.
살아남아 돈을 쟁취하기 위한 경쟁은 유리 다리를 건너면서 극에 달한다. 강화유리를 딛고 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게임에서 강화유리인지 일반유리인지 알아내기 위해 상대를 밀어 떨어뜨리면서 확인하는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욕망의 생산과 쾌락의 소비 지평은 경제적 욕망을 생산하고 그 욕망을 추구하여 쾌락을 소비하게 하는 장치이다. 타락한 교환가치에 의해 진정한 인간 가치가 훼손된 사회이다.
오징어 게임에서 욕망의 생산과 쾌락의 소비 지평은 오징어 게임 자체를 주최한 일남을 비롯한 부유층에서 나타난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누가, 왜, 무슨 목적으로 이런 게임을 진행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에서 빙빙 돌아다닌다. 드라마의 마지막 회에서 기훈이 배려해주기도 하고 경쟁 상대였던 일남 할아버지가 부유층의 단순한 재미를 위해 오징어게임을 주최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드라마는 완성의 정점을 찍는다.
‘재미’는 ‘행복’으로 연결되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욕망일지 모른다. 이번 코로나 19로 경제적으로 고통 받는 이들도 많지만 해외여행금지로 돈 쓸 욕망을 채우지 못해 명품 소비로 몰리는 상황을 보면서 드라마에서 거액을 들여 단순한 재미를 느끼려는 부유층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돈이 없는 사람과 돈이 많은 사람의 공통점은 사는 게 재미가 없다.’라는 일남 할아버지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은 간다. 인간이 일을 하든지, 놀이를 하든지 재미가 있어야 의욕과 열정이 생겨나고 행복감을 느낀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세계가 열광하는 이유는 목숨 걸고 경쟁하지 않아도, 거액을 투자해 게임을 주최하지 않아도 드라마를 보는 것만으로 ‘재미’라는 욕망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상대를 무너뜨리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무한경쟁사회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드라마의 장면들은 한창 꿈을 키워가는 젊은 층에게 무기력함을 느끼게 하지 않을지 걱정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