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보육에서 교육으로?

공부에 대한 나의 믿음


나는 종종 교육에 무관심한 엄마라는 평가를 받는다.

바다에게 사교육을 많이 시키지 않고,

유행하는 학원이나 공부법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공부는 시키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하는 건데...“

이런 말까지 던지면, 반응은 금세 싸늘해진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그런 반응이 억울했다.

‘그건 무관심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관심이에요.’

나를 해명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안다.

사람마다 관심의 기준이 다르고,

그 다름이 때로는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나는 공부, 학습, 입시에 대한 나의 생각을 자주 점검한다.

스스로 납득하고 확신을 가지지 않고 행동하면

나를 속이고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같이 ‘공부란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지금 나 역시 공부하는 사람이고,

오랫동안 ‘공부’라는 단어를 어렵고 부담스럽게 여겨왔던 사람이다.

그 막연한 두려움을 풀고 싶었다.



지난 1년 동안 공부로 신음하는 중고등학생들을 만났다.

그 아이들을 통해 나는 내 안의 ‘공부에 대한 믿음’을 하나씩 해부해 볼 수 있었다.

그 믿음은 사회의 통념, 부모의 기준, 교사의 평가,

그리고 결국엔 한계 속에서 무임승차 하려는 나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많은 경우, 아이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은 공부 자체가 아니라 부모의 믿음이다.


“여자애라 수학이 약해.”

“얘는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

“공부 머리가 없어.”

"얘는 이쪽엔 재능은 없어."



이런 말들이 아이의 가능성을 조용히,그리고 무자비하게 닫는다.

아이는 그 말들을 무력하게,

혹은 영악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나는 학습지나 학원보다 먼저,

믿음의 구조를 점검하려 한다.

아이를 어떻게 믿고 있는지,

그 믿음이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나 역시 ‘미운 세 살’, ‘사내아이’ 같은 기준 속에

바다를 가둘 뻔한 적이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연습 중이다.

바다를 믿음으로 지켜봐주는 일.

있는 그대로의 바다를 봐주는 일.

바다의 한계를 짓지 않으려 애쓰는 일.



말로는 쉽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그리고 평생 해야 할 나의 작업..





#육아일기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