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갑자기 네 생각이 났다.
너를 처음 만났던 때가 생각났다. 분명히 나보다 몇 살은 많아 보이는 옷차림과 얼굴이었는데, 너는 특유의 흐흐-거리는 웃음소리를 내며 나와 동갑이라고 말했었다.
얼굴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난 네 얼굴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너를 만나 계절이 세 번 바뀌는 동안 난 네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너는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으니까. 왜 밤낮으로 선글라스를 끼는 거야?-라고 묻자, 흐흐 거리며 "눈이 안 좋아서"라고만 말했다. 너는 지금도 선글라스를 항상 끼고 다닐까.
너는 남들은 피우지 않는 도라지 담배를 피웠다. 냄새가 유독 독했던 걸로 기억한다. 네 곁에 가면 항상 그 냄새가 약하게 났다. 할아버지들이나 피울 것 같은 이 담배를 왜 피우냐고 물었을 때, 너는 또 흐흐-웃기만 했었다. 지금 찾아보니 도라지 담배는 2009년에 단종되었다던데, 넌 지금은 어떤 담배를 피울까. 아니, 담배를 끊은 상태라면 좋겠다. 담배를 자주 피웠던 것 같으니까.
우리는 단 둘이 만난 적은 없고, 항상 모임에서 만났었다. 거의 매주 만나던 모임이었다. 모임이라고 해봤자, 또래들이 모여 노는 것뿐이었지만 내게는 즐거운 기억 중 하나다. 그런 모임에 나올 때마다 너는 내게 먹을 걸 주었다. 주로 참치캔 2,3개. 혹은 사랑의 쌀이라는 이름으로 봉지에 두 끼 정도 해 먹을 만큼의 쌀을 담아와서 주곤 했다. 한 번은 내가 물었다. 넌 내가 불쌍하냐고. 흐흐 웃으며 그게 아니라고 했다. 괜히 너는 배고파 보여서, 네가 잘 먹고 다녔으면 좋겠어서. 그래서 집에서 나올 때마다 그냥 눈에 띄는 걸 가지고 나올 뿐이라고 했다. 도무지 성의라고는 없는 선물이었지만, 사실은 성의 있는 선물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때 네가 주었던 이런저런 끼닛 거리들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러다 네가 모임에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넌 어디로 갔을까. 넌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가끔 나는 네가 그렇게 궁금하더라. 네가 챙겨 준 건 내 끼니였지만, 정작 내가 채운 건 비어 있던 마음이었어서일까. 고맙다는 말이 하고 싶기도 하다.
부디, 잘 지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