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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Feb 04. 2022

엄마 꿈에 나타났던 외할아버지


꽤 오래전, 엄마가 큰 수술을 받았었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수술은 잘 끝났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에 일어났다. 엄마가 도무지 마취에서 깨어나질 않았다. 큰일이 났구나 하며 가족들이 모두 발을 동동 굴렸다. 난 어렸을 때라 조금 울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다행히도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엄마는 마취에서 깨어났다.


엄마는 마취가 잘 안 드는 타입이구나-라고 너스레를 떨 정도로 상태가 좋아진 후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쯤 지났을까, 가족들이 모여 있을 때 엄마가 혼자 슬쩍 웃으며 "내가 재밌는 얘기 해줄까?" 하셨다.


엄마가 마취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마취를 하고 정신이 뚝 끊겼어. 그런데 갑자기 내가 집 마당에 서 있는 거야. 나는 살면서 한 번도 꿈이 꿈인지를 몰랐어. 그런데 그때는 알겠더라. 너네 외할아버지가 마당에 계셨거든."


외할아버지는 내가 초등학생일 때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엄마는 외할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조금 남달랐다고 했다.


"마당에 평상 있잖아. 거기에 외할아버지가 앉아 계신 거야. 내가 너무 놀라고 반가워서 아부지 이거 꿈이오? 했더니 그냥 웃어. 한 번도 꿈에 안 나오더니 이제야 나타나는 거요 했을 때도 그냥 웃어. 그런데 갑자기 무서운 거야. 아부지가 날 데리러 왔나 싶어서. 그래서 아부지 나 죽는 거요?라고 물었는데 아부지가 그땐 웃지 않으시데. 그런데 너무 오랜만에 아부지를 봐서 그런지, 까짓 거 아부지가 가자고 하면 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는 그 옆에 앉아 아부지 돌아가신 후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미주알고주알 해댔지. 그런데 얘기하다 보니까 너무 서러운 거야. 그래서 울었어. 그러니까 아부지가, 너네 외할아버지가 내 어깨를 이렇게 토닥토닥하면서 위로해주더라고. 생전에는 한 번도 그렇게 서로 미주알고주알 얘기 나누지도 않고 위로하고 받고 한 기억도 없는데, 꿈이라 다르긴 다르구나 싶더라."


엄마는 이게 꿈이구나 하면서 외할아버지의 토닥임에 기대어 계속 떠들고 울고 웃고 하셨다. 그렇게 한참을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외할아버지는 엄마의 어깨에서 손을 떼시더니 조용히 신발끈을 묶으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문 쪽을 향해 걸으셨다.


"가시려고?"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외할아버지가 순간 야속해졌다. 하다못해 같이 가자는 말도 왜 하지 않는 것인지.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할 때, 이미 외할아버지는 대문 밖을 나가 골목을 걷기 시작하셨고, 엄마는 너무나도 헤어지기 싫어 외할아버지를 부르며 쫓아가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시장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골목을 빠져나오면 바로 시장통이었다. 어느새 시장통을 가로질러가는 외할아버지를 놓치기라도 할까 봐 헐레벌떡 쫓아갔는데, 시장 끝에 도착했을 때쯤 외할아버지가 멈춰 서더니 뒤돌아 보셨다.


"그러더니 처음으로 말을 하시더라. 따라오지 말라고. 그래서 내가 싫다고 따라갈 거라고 나도 아부지 따라갈 거야! 하면서 쫓아가려는데 이놈의 발이 앞으로 안 가는 거야. 난 뛰는데 앞으로 가지지가 않는 거야. 그런데 너네 외할아버지가 갑자기 화를 내셨어. 네가 지금 제정신이냐! 네 집이나 잘 돌봐! 이러시면서 소리를 지르시더니 진짜 한 번도 못 본 무서운 얼굴로 "빨리 못 돌아가냐!"하고 고함치시는 거야. 그리고 눈을 떴더니 병실이었어."


엄마의 이야기가 병실에서 멈추자, 계속 듣고만 있던 아빠가 한마디 하셨다.


"아버님이 지켜주셨네."


정말 그랬던 거 같다. 외할아버지가 엄마 수술하는 동안 지켜 주려고 오셨고, 외할아버지 쫓아가는 동안이 엄마가 마취에서 안 깨어났을 때고, 그런데 외할아버지가 쫓아보내서 마취에서 깬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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