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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Jul 25. 2024

생일과 중복

오늘은 생일이었다. 생일을 단 한 번도 기뻐해 본 적이 없는 나였지만, 생일이라서 겪을 수 있는 순간순간의 것들은 항상 감사하다. 


오늘은 중복이었다. 가끔 생일과 중복이 겹칠 때가 있다. 폭염 아니면 폭우와 겹치는 것처럼 이 즈음에 태어나는 이들이 만나는 날들 중 하나였다. 아무래도 중복이고 내 생일이기 때문에 아버지는 집에 맛있는 것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재밌다. 어쨌든 얼큰하게 취해 들어오신 아버지는 텅 비어 있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주방을 보고 몹시도 실망을 했던지 "왜 생일에 아무것도 없느냐"라고 물으셨다. 생일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중복"인데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거냐라는 질문이었을 거다. 거기에 엄마가 답했다. "평일이잖아. 회사에서 언제 올 줄 알고. 주말에 맛있는 거 해 먹기로 했어."


"주말은 주말이고. 그냥 넘어가긴 아쉬우니까 통닭 먹을래?" 기어이 뭔가 먹고 지나가고 싶은 아버지는 즐겨 드시는 시장 통닭을 두 마리 사 오셨다. 그리고 함께 사온 묘한 모양의 빵에 성냥을 하나 꼽으셨다. "넌 케이크를 싫어하니까." 라며. 희한도 하지. 내가 케이크를 좋아하는지 마는지, 생일을 좋아하는지 마는지 아니 그보다 당신 생일을 잊는 것은 안되지만 다른 사람의 생일은 잊어도 좋은 양반이 나의 생일에 대해 입을 연 것은 분명 희한한 일이었다. 뒤틀린 나의 머릿속은 그 이유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그냥 늙은 나의 아버지가 1년에 한 번인 자식의 생일을 한 번쯤은 축하해 주고 싶으셨나 보다 생각하기로 했다. 



"사진 안 찍냐?"라고 물었기 때문이다. 내가 항상 당신들의 생신에 가족들이 모여 생일 케이크에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며 초를 끄고 박수를 그 순간을 영상으로 남기기 때문인데, 너의 생일에는 왜 그러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다. 당연하지 않나. 내 생일에는 아무도 찍어주지 않으니까. 내가 셀프로 촬영하지 않는 이상에는 말이다. 어쨌든 아버지는 내심 자신의 이벤트가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시장통닭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다리를 좋아하는 아버지에게는 다리를, 가슴살을 좋아하는 막내에게는 가슴살을 나눠 주셨다. 


내년 생일에는 조금 더 나은 혹은 다른 자리가 만들어지려나. 아니면, 없으려나. 그건 나도 모르겠다. 생각할 것도 없다. 흔치 않은 순간을 오늘 맞이했으니까. 이게 내 생일 선물이겠구나 싶다. 바란 적도 없고 바라지도 않은 특별한 감흥도 없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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