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아직 내일이 있다

폭력을 춤과 노래로 번역해 버린 연출

by MITCH



스포일러 포함




'파올라 코르텔레시'의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는 흑백으로 촬영되었다. 1946년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이 이야기를 하나의 기억처럼 보이게 만든다. 남편에게 매일같이 폭력을 당하며 살아가는 여성 '델리아'의 이야기지만, 영화는 단순한 피해 서사로 흘러가지 않는다. '델리아'는 그저 참고 버티는 인물이 아니라, 아주 작은 선택들을 통해 다음 세대를 바꾸려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델리아'는 상냥하고 부지런하며 재주도 많다. 그 많은 집안일도 해내고, 여러 바깥일을 하며 돈도 모은다. 하지만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뺨을 맞고, 밥값도 못한다 멍청하다 쓸모없다는 말을 들으며 살아간다. 서랍장 위의 먼지가 더 신경 쓰일 만큼 사랑은커녕 쾌락조차 없는 남편과의 성관계를 견디며 "아직도 사랑해"따위의 말을 참아내야 한다. 그녀가 겪는 각종 폭력은 특별한 사건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마치 매일 반복되는 일상처럼 처리된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연출 중 하나는 폭력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남편이 '델리아'를 때리는 장면을 현실적인 폭력 묘사로 보여주는 대신 음악과 춤을 이용해 연출한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지만, 동시에 그 장면이 직접적인 재현으로 소비되지 않도록 만든다. 이 장면은 폭력의 일상성을 보여주면서도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굉장히 영리한 연출이다.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권력이다. '델리아'는 일을 할 수 있지만 결정할 수는 없다. 돈을 벌 수 있지만 사용할 수 없다. 말을 할 수 있지만 의견을 말할 수는 없다. 영화 속 남편은 '델리아'를 무능한 사람처럼 취급하지만 영화 속에서 가장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권력이 없는 '델리아'다. 권력이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여자이기 때문이다. 우산대가 무엇인지, 우산살이 무엇인지 모르는 신입이 그곳에서 3년 넘게 일한 '델리아'보다 급여를 많이 받는 것은 신입이 남자이기 때문이다. 미군 남자도 '델리아'에게 도움을 받고 친절하고 이탈리아 남자와는 다른가 싶지만 결국 그도 강압적인 모습이다. 결국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남자들은 거의 다 같은 방식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영화는 '델리아'의 삶을 남자를 통해 바꾸지 않는다.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돌린다. 딸이다.



'델리아'에게는 보물이나 다름없는 딸 '마르첼라'가 있다. 영화 초반의 '델리아'는 딸을 지키는 방식이 매우 단순하다. 딸 대신 폭력을 맞아주고, 좋은 남자와 결혼시키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그게 그 시대에 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행복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그 생각이 바뀐다. 딸의 약혼자가 던지는 말과 행동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발견한 '델리아'는 그 결혼을 깨버린다. 그리고 딸에게 웨딩드레스를 사주기 위해 몰래 모으던 돈의 의미도 바뀐다. 웨딩드레스가 아닌 학비가 된다. 좋은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델리아'가 딸을 지키는 방식이 그렇게 바뀐다.



영화의 마지막은 1946년 이탈리아 여성들이 처음으로 참여한 국민투표 장면으로 이어진다.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세울 것인가를 묻는 역사적인 투표였다. '델리아'가 떨어뜨린 투표용지를 '마르첼라'가 주워 전달한다. 아주 짧은 이 장면의 의미는 분명하다. 딸을 위해 엄마가 시작한 권리다.



투표를 마치고 나온 '델리아'가 음악에 맞춰 장난스럽게 입모양으로 노래를 흉내 내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 장면에서 노래 가사는 "입을 벌리지 않아도 노래할 수 있다"다. '델리아'는 영화 내내 크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남편에게 대들지도 못하고,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물은 아니다. 폭력을 견디고, 몰래 돈을 모으고, 딸의 결혼을 깨고, 투표소로 향한다. 큰 소리를 내지 않아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노래를 흉내 내는 엄마를 보며 '마르첼라'는 영화에서 처음으로 엄마를 향해 환하게 웃는다. 그 웃음 하나 때문에 '델리아'가 그렇게까지 버티며 살아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는 어떤 한 여성의 승리를 보여주지 않는다. 아마 '델리아'의 삶이 갑자기 바뀌는 일도 없을 것이다. 여전히 같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델리아'는 투표용지를 들어 올렸다.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여자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훨씬 더 가혹했던 시대를 견뎌내고, 수많은 '마르첼라'들의 미래를 위해 투표용지를 들어 올렸던 그 시대의 '델리아'들을 떠올리며 생각해 본다.



이 영화의 제목이 의미하는 것도 거창한 희망이라기보다 어쩌면 아주 단순한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건 아마도 누군가가 구해주기 때문에 내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내일이 있다는 사실,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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