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처럼 터지는 사토 지로의 연기
영화 <폭탄>을 이야기할 때 보통은 폭탄 사건이나 수사 구조부터 설명하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중심에는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있다. '스즈키'라는 인물이다. 취조실에 앉아 있는 이 노숙자 남자가 영화 전체의 리듬과 방향을 결정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폭탄 영화라기보다 '스즈키'라는 인물에 대한 영화에 가깝다.
'스즈키'는 술에 취해 폭력 사건으로 체포된 노숙자다. 취조실에서 그는 아무렇지 않게 "곧 폭발이 일어난다"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주정이나 허풍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폭발이 일어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 후 그는 다음 폭발을 예고하고 경찰은 도시 전체를 뛰어다니며 폭탄을 찾는다. 겉으로 보면 경찰이 범인을 쫓는 구조지만 실제로는 조금 다르다. 경찰이 사건을 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즈키'가 경찰을 움직이게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경찰이 범인을 쫓는 영화가 아니라 범인이 경찰을 움직이는 영화다.
'스즈키'라는 캐릭터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가 전형적인 범죄자와 다르기 때문이다. 돈에도 관심이 없고, 도망칠 생각도 없어 보이며,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되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재미다. 그는 자신이 만든 상황을 통제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즐긴다. 그래서 난 그가 범죄자가 아니라 게임 디자이너처럼 보이기도 한다. 폭탄은 목적이 아니라 게임을 작동 시키는 장치이고, 사건은 그 게임을 진행시키는 판에 가깝다.
이 게임의 핵심은 폭탄이 아니라 언어다. '스즈키'는 취조실에서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않는다. 질문을 하면 답을 하는 대신 질문으로 되돌려주고, 긍정도 부정도 아닌 표현을 사용하며, 의미가 두 가지로 읽히는 말을 한다. 일본어를 안다면 취조실의 대화는 조금 더 즐거울 수 있다. 일본어는 문장 끝을 흐리거나 모호한 표현이 많은 언어인데, '스즈키'는 그 특성을 거의 장난처럼 이용하기 때문이다. 다소 치사할 정도다.
폭탄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말들, 농담처럼 들리지만 어딘가 의미가 있는 말들. 경찰은 그 말을 해석하기 위해 계속 움직이고, 결국 도시 전체가 '스즈키'의 말장난에 반응하게 된다. 이 영화의 진짜 폭탄은 폭발이 아니라 '스즈키'의 말인 셈이다. 일본어에서 폭탄은 폭발 장치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충격적인 말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인 <폭탄>은 단순한 폭발 사건이 아니라 취조실에서 터지는 말일 수도 있다. 실제로 영화의 긴장은 폭발 장면보다 취조실 대화에서 더 강하게 만들어진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다. <양들의 침묵>과 <쏘우>다. 두 영화 역시 한 공간의 대화와 다른 공간의 사건이 동시에 진행되며 긴장을 만든다. 하지만 방식은 조금 다르다.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 렉터'는 취조실 안에서 '클라리스'의 심리를 흔든다. 그 대화는 서로가 서로를 읽어내는 심리전이고, 결국 두 인물은 거의 같은 무게로 맞선다. <쏘우> 역시 범인이 설계한 게임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그 게임의 핵심은 장치와 규칙이다. 반면 <폭탄>에서 게임의 핵심은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퍼즐 스릴러라기보다 언어 퍼즐에 가까운 영화가 된다.
다만 취조실 대결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약간의 아쉬움도 있다. 영화는 취조실 대결 구조를 갖고 있지만 <양들의 침묵>처럼 완전히 팽팽한 심리전은 아니기 때문이다. 형사 '루이케'는 '스즈키'와 맞서는 인물로 등장하지만 실제 화면에서 '스즈키'쪽의 존재감이 훨씬 강하다.
대신 영화는 공간 활용을 꽤 잘 해낸다. 자칫 말뿐인 작품이 될 뻔했지만 취조실과 도시로 공간 구조를 나누고 시간 압박과 함께 교차 편집을 사용한다. 영화의 긴장은 취조실 대사에서 만들어지고, 속도감은 도시 파트에서 보충되는 방식이다. 덕분에 대사 중심 영화인데도 정체되는 느낌이 덜하다.
'스즈키'는 사건의 중심에 있지만 전통적인 의미의 범죄자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그는 폭탄을 이용해 무언가를 얻으려 하기보다 상황 자체를 바라보는 태도를 보인다. 반면 '루이케'는 사건을 해결하려는 인물이다. 이 두 인물의 관계는 범인과 형사의 대립이라기보다 사건을 설계하는 인물과 사건을 해석하는 인물의 관계처럼 보인다.
어떤 면에서는 '루이케'와 '스즈키'는 같은 부류의 인간이다. 실제로 '루이케'라는 이름의 한자를 보면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의미로도 읽힌다. 그리고 이름을 뒤집으면 "이케루"가 되는데, 버틴다, 가능하다, 해낼 수 있다는 뜻을 가진다. 하지만 영화 속 대결은 이름의 의미와 달리 팽팽한 승부라기보다 완패에 가까운 싸움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 균형은 조금씩 기울어진다. '스즈키'가 사건의 흐름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루이케'의 역할은 사건을 따라가는 위치에 가까워진다. '사토 지로'의 연기가 워낙 강렬하기 때문에 '야마다 유키'가 연기한 '루이케'가 밀리는 느낌이라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다.
'스즈키'가 노숙자라는 설정도 이런 구조를 설명하는 장치로 읽을 수 있다. 일본에서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름인 '스즈키'라는 이름처럼 그는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사람과 공간을 관찰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다. 이런 설정은 그가 사건을 설계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동시에, 그가 사회의 규칙에서 벗어난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이 영화는 '스즈키'라는 인물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영화 전체를 이해하는 핵심이 된다. 그리고 그 게임이 끝나는 순간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모든 사건이 끝난 뒤 '스즈키'가 보여주는 표정이다.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묘한 얼굴. 주름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얼굴 표정은 자신의 통제력에 기뻐하면서도 마치 긴 놀이가 끝난 뒤 "아, 오랜만에 재밌었는데 끝났네." 하고 아쉬워하는 사람 같다.
폭탄은 도시를 흔들지만 '스즈키'의 말은 사람을 움직인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을 때 남는 것은 거대한 폭발이 아니라 취조실에 앉아 있는 한 남자의 기묘한 표정이다. 그 표정이 이 영화를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