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은 없다

by MITCH


스포일러 포함

원작 소설을 읽은 뒤 영화를 봤기 때문에 이야기의 큰 흐름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프로젝트 헤일메리>로 구현된 세계를 보는 경험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소설로 읽으며 떠올렸던 상상들이 화면 위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는 순간들이 있었고, 그 과정 자체가 꽤 흥미로웠다. 특히 외계 우주선의 구조나 종족의 환경처럼 글로는 감각하기 어려웠던 부분들이 실제 이미지로 구현되는 순간에는 확인하는 재미가 있었다.


겉으로 보면 이 영화는 지구 멸망 위기를 다루는 과학 SF다. 태양빛을 먹어치우는 미생물 '아스트로파지' 때문에 태양의 밝기가 점점 줄어들고 지구의 온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 결과 식량 위기가 찾아오고 인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주선을 보낸다. 그 임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 바로 '그레이스'다. 하지만 영화를 조금 보다 보면 이 작품이 단순히 과학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한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설정은 분명 과학 이야기지만 영화가 실제로 보여주는 중심은 결국 관계와 감정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과학 영화처럼 시작하지만 결국은 생명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그레이스'만큼이나 중심에 있는 '로키'는 외형만 보면 인간과 완전히 다른 외계 생명체지만, 영화 속 '로키'는 낯선 존재라기보다 친구에 가깝다. 원작에도 '로키'는 매력적인 캐릭터였지만 영화에서는 훨씬 더 사랑스럽고 친근한 존재로 그려진다. 특히 둘이 고깔모자를 쓰고 자축하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었다. '로키'가 몸을 부풀리며 소리를 내고 함께 기뻐하는 모습은 이 영화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장면들이 쌓이면서 두 존재가 서로를 이해하고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이 따뜻하고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두 캐릭터의 관계가 형성되는 방식 역시 영화에서는 비교적 감정 중심으로 그려진다. 원작에서는 과학적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우정이 쌓이는 느낌이 강했다면, 영화에서는 서로의 세계를 보여주고 감정을 나누는 장면들이 더 강조된다. 지구의 자연을 영상으로 보여주거나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순간들이 이어지면서 관계가 조금 더 따뜻하게 표현된다. 덕분에 이 영화는 우주 재난 이야기라기보다 두 존재가 친구가 되어가는 버디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원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과학적인 설정이 많이 줄어든 것도 금방 느낄 수 있다. 소설에서는 '아스트로파지'를 발견하고 분석하고 배양하는 과정이 꽤 자세하게 묘사되지만 영화에서는 이런 부분이 과감하게 압축되어 있다. '로키'의 공학적 능력이나 지적인 활약이 상대적으로 줄었고 '그레이스'의 심리 묘사 역시 많이 생략되었다. 대신 영화는 이야기의 리듬과 캐릭터의 관계에 더 집중한다. 덕분에 과학적인 퍼즐의 재미는 조금 줄어들었지만 이야기는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관객 입장에서도 부담 없이 따라갈 수 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미술과 디자인이다. '로키' 종족은 빛을 보지 못하고 대신 소리와 진동을 감지하는 존재인데, 이 설정이 우주선 내부 구조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내부는 소리를 전달하는 선들로 가득한 구조로 되어 있고 금속 재질이 반짝이며 이어지는 모습이 매우 독특하다. 재료공학이 발달한 종족이라는 설정이 시각적으로 잘 드러난다. 원작 소설에서 궁금했던 부분을 영화에서 직접 확인하고 나니 이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진 의미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생명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간다. 흥미로운 점은 이 메시지가 인간이 아니라 외계인과의 관계를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지구의 인간들은 인류를 위해 '그레이스'를 강제로 우주에 보내지만, '로키'는 친구를 위해 위험을 감수한다. 지구의 인간은 고작 "3시간"을 생각해 보라고 하지만, '로키'는 "오래오래"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외형은 완전히 다른 외계인이지만 정서적으로는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원작의 과학적인 디테일이 많이 줄어든 대신 영화는 훨씬 따뜻하고 감성적인 톤으로 재구성되었다. 원작 팬 입장에서는 아쉬운 부분도 분명 있지만, 상상했던 세계를 아이맥스 화면 가득 확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래서 원작과 여러 차이를 느끼면서도 영화로서의 재미와 매력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웃으면서도 보고, 감정이 동화 될 수도 있는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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