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 마이 러브

사랑과 파괴가 동시에 존재하는 관계

by MITCH



스포일러 포함

​​

겉으로 보면 이 영화는 한 여자의 정신 붕괴를 다루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보다는 훨씬 단순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다. 누가 잘못해서 벌어진 비극이 아니다. 범죄도 없고 명확한 가해자도 없다. 그저 서로를 감당할 수 없는 두 사람이 관계 속에 묶여 있었을 뿐이다.


'그레이스'의 상태를 산후우울증이나 정신질환으로만 설명하기엔 이 영화에서 광기는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그레이스'는 안정된 상태의 인물처럼 보이지 않는다. 감정의 진폭이 크고 충동적이며 언제든 경계선 바깥으로 밀려날 것 같은 사람이다. 영화에서 언급되는 과거의 상실 역시 그런 취약성을 암시한다. 출산 이후의 변화는 원인이라기보다 기폭제에 가깝다. 이미 존재하던 균열이 환경과 관계 속에서 드러난 것이다.


환경 역시 중요한 요소다.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사람보다 파리가 많은 외딴 농가에서 하루 종일 지내야 한다. 사회적 자극도, 관계도, 일도 거의 없는 공간이다. 이런 환경은 안정적인 사람에게도 버거울 수 있는데, 애초에 불안정한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는 훨씬 더 큰 압박이 된다. 결국 영화는 개인의 병이라기보다 환경과 관계가 어떻게 사람을 몰아붙이는지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잭슨'이 악인인 것도 아니다. 그는 폭력적이지 않고 아내를 버리지도 않는다. 병원에도 데려간다. 아마 그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다만 '그레이스'에게는 그 최선이 많이 모자랐을 뿐이다. 그는 위기 상황에는 반응하지만, 일상에서 상대를 관찰하거나 이해하는 능력은 거의 없다.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문제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 반응하는 사람에 가깝다.


그 특징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개 사건이다. 사고로 크게 다친 개가 밤새워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하지만 '잭슨'은 일단 자고 아침에 병원에 데려가겠다고 말한다. 결국 총을 들고 그 고통을 끝내주는 사람은 '그레이스'다. 책임은 '잭슨'에게 있었지만, 책임지는 것은 '그레이스'의 몫이다. 그 장면은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을 축소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이 없었다면 더 빨리 끝났을 관계다. 하지만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떠나지 못했고, 서로를 계속 소모시켜갔다. 제목 <다이 마이 러브>는 그래서 역설처럼 들린다. 이 관계에서 죽어야 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다만 영화의 완성도는 또 다른 문제다. 감정의 레이어를 쌓기 위해 시간을 길게 사용하는 듯하지만 레이어라기보다 반복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다. 비슷한 감정 상태가 장면만 바뀌어 계속 이어지면서 러닝타임이 체감상 훨씬 길어진다. 현실과 망상을 섞는 연출이나 과한 음악도 특별한 기능을 하진 못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이해는 되지만 지루한 영화가 된다. 관계의 붕괴를 천천히 해부하려는 시도는 흥미롭지만, 그 과정을 너무 오래 반복한다.


결국 남는 건 하나의 단순한 결론이다. 이 영화에는 나쁜 사람도, 죄를 지은 사람도 없다. 다만 서로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붙잡혀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불태워 그 사랑을 죽이고, 그 족쇄에서 풀려나려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