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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Aug 18. 2022

괜찮다는 한마디는 어떤 우주가 된다, 이정우

30분 인터뷰 - 이정우

언제나 저는 위인전 보다 동네 친구들과의 술래잡기, 신기해 보이는 가게에서 만난 사장님들과의 짧은 이야기들로 인생을 배워왔습니다. 불확실성과 불안함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삶의 형태가 세상 밖으로 더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우리 30분만 이야기합시다.



2022.04.13, 19:00 정릉 슬로우달팽이카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오랜 시간 정성 들여 들여다보는 사람.어떤 구석 하나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보다듬는 사람. 그런 그가 스스로에게도 주변에게도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괜찮아"이다.

앞만 내다보며 달리던 이들이 그를 만날 때면, 잠시 한 호흡 크게 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더 이상 정릉에 그는 없지만 나는 정릉에 오면 그를 떠올린다. 천천히 흘러가는 성북천과 복작하고 편안한 동네. 정릉의 슬로우카페달팽이에서 오랜만에 그를 만났다.






Q. 요즘 어떻게 지내나.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 궁금하다.


취업 준비를 핑계로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원래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다. 취업 준비를 하니 그게 더 심해지는 것 같아서 롤러코스터라고 표현했다.

감정이 힘들 땐 동굴에 들어가 혼자 있거나, 신날 때는 또 친구들과 잘 놀고 있다. 자소서나 교육을 받으며 취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엔 ‘내가 이렇게 생각이 많구나.’ 싶다. 그래서 생각을 많이 없애려 하고 있다. 친구들 만나서 얘기하거나 상담을 하면 정리가 되더라. 혼자 산책도 하고. 최근엔 과거의 경험과 생각을 블랙 홀로 버리는 빼기 명상도 자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꽤 가벼워졌다. 많은 생각들 중에서 꼭 필요한 생각들만 뽑아내고 있다.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잃지 않으려고 되뇌이고 있고, 지금 해야 할 일을 자주 떠올린다. 




Q.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이 일을 하기 전과 후 삶의 변화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변화인가 궁금하다.


돈을 벌고 있진 않으니 요즘 생각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내 방향을 정해주는 생각과 내가 하는 행동들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고, 크게는 세 가지이다.

몸 건강을 챙긴다. 어릴 적부터 부상을 많이 당해서 재활 운동을 많이 하고 있다. 마음이 건강해지기 위해 운동을 하기도 한다. 축구를 하면 기분이 너무 좋다. 아. 말하기 힘든데 너무 행복했다. 등산도 하고. 

그리고 마음 건강. 고민 해소를 하기 위해서 최근에는 개인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인생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나누거나 명상을 하면서 쉬어가고 있다. 친구들에게도 종종 의지하고.

마지막으로, 내가 생각하기에 의미 있는 일들을 많이 하고 있다. 

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들이다. 성향상 직장 생활이 안 맞을 것 같지만 오로지 경험을 위해서 세운 현재 1순위 목표는 취업하기이다. 또 다른 일로는, 내 일을 한다. 취업해서 하는 회사의 일 말고 나의 일. 사람을 치유하고 싶다는 내 비전을 자주 떠올린다. 최근에 준비하고 있는 건, K-부모 밑에서 자란 K-청년을 대상으로 한 상담이다. 내가 겪어온 부모님과의 갈등의 경험들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시작한 프로젝트이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 상담자인 내 상태가 가장 좋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의 상태를 잘 살피려 하고 있다. 




Q. 이 일을 하기 전과 후의 변화가 있나.


너무 확실한 변화가 있었다. 사람이 여유가 없을 땐 자기만 볼 때가 있고, 여유가 생기면 남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경계를 말하고 싶다. 나에게 여유가 생기고 나서 보이는 것들. 나는 그것을 겪어봤다. 나답게 살지 못하는, 아파서 헤매는 느낌을 안다. 그걸 회복을 하면 그제서야 시선이 나로부터 타인에게로 간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남이 아픈 게 보인다. 내 회복의 경험이 상대방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한다. 



간단한 인터뷰 질문에 답변을 휴대폰 메모장에 빼곡히 작성해왔다. 곰곰이 생각하고, 정리가 되지 않으면 가끔 들춰보았다.




Q. 어떤 것이 이정우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나.


사랑. 지나온 길을 되돌아봤을 때,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동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최근 5년 동안 두 명의 친구를 잃었다. 죽은 자들에 대한 사랑이 깊게 맺혀서 고민과 생각을 많이 했다.

현재는 산 자들. 친구나 애인, 집에 있는 고양이를 사랑하면서 지낸다. 자기애가 높은 편이라 스스로도 살뜰히 챙긴다. 고양이 배변을 정말 치우기 싫은 날도 있는데 사랑하니까 치워야 하더라. 그 중심은 사랑이 아닐까.



Q. 본인의 인생을 드라마 본다면, 현재 이 시기는 어떤 부분인가? 좋고 나쁨을 제외하고 표현해 봐도 좋다.



아직은 초반인 것 같다. 아직은 기승전결의 기가 아닐까. 주로 초반에는 떡밥들을 던지지 않나. 

친구들과 60살에 뭐하고 놀까?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누군가는 롯데월드 가자고 했고, 장례식을 먼저 하자고 얘기했다. 돈 많이 벌어서 편하게 집 짓고 사는 일. 이런 떡밥이 너무 많다. 아. 놓칠 수 없는 떡밥 중 하나는 풋살이다. 그런 것들을 꾸준히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알리오 올리오를 정말 자주 해먹어서 나중에 장사를 해도 되겠다고 주변에서 말한다. 어쨌든 현재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감을 조성하고, 위기도 예상되는 초반 30분.



Q. 마지막으로 세상에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



질문을 듣자마자 바로 떠오른 게 있다.

나는 여태껏 세상의 이야기를 늘 듣고 싶었고, 잘 들어왔다. 남에게 관심이 많고 호기심이 많아서 너무 많이 들어왔던 것 같다. 이제는 세상의 이야기는 줄이고,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

과거의 나는 스스로가 너무 먼지처럼 작은 것 같아서, 내가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무슨 얘기를 해도 어떤 의미나 힘이 없을 것 같은. 항상 내가 얘기를 하면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일기를 많이 썼다. 요즘에 생각하는 건 청자가 아니라 나를 위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청자의 존재와 상관없이 말을 하고 싶다.




Q. 정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요즘에 마음의 동굴 속에 자주 숨어 있었는데, 인터뷰하는 동안 동굴에서 많이 나온 느낌이다.

내 얘기를 할 기회를 만들어주어 고맙다. 나의 청자가 되어주어서.






아마도 우리는 살아가며 계속해서 괜찮다는 말을 해야할 지도 모른다.

괜찮지 않은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니까. 스스로 다독일 힘이 남아있지 않을 때는 오늘 그의 의지를 떠올리고 싶다. 나의 경험을 통해 누군가를 향하는 마음. 그때 비로소 우리 삶은 이 작은 땅에서 우주로 확장되고야 만다.


늦지 않은 시기에 그의 우주를 다시 들여다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람이 찬 봄 밤, 정릉에서.



이정우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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