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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Aug 18. 2022

하얀 천이 살랑일 때 만들어지는 선율, 김주희

30분 인터뷰 - 김주희 

언제나 저는 위인전 보다 동네 친구들과의 술래잡기, 신기해 보이는 가게에서 만난 사장님들과의 짧은 이야기들로 인생을 배워왔습니다. 불확실성과 불안함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삶의 형태가 세상 밖으로 더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우리 30분만 이야기합시다.



2022.06.04 서울 00:30 - 파리 17:30 



여행 메이트라고 할까. 여행을 갈 때 함께 가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스타일이 잘 맞는 이유도 있겠지만 나에게 여행 메이트는 비슷하게 느끼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김주희를 여행지 제주에서 처음 만나 여행지 스코틀랜드에서 다시 만났다. 


하얀 천. 

나는 그녀를 이렇게 떠올린다. 따듯하게 품기도 하고 덮어쓰고 혼자가 되기도 하는 사람. 

어느 드라마 주인공의 대사인 하얀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말은 그녀에겐 지나치지 않은 것만 같다. 자신의 조각을 찾기 위해 어디든 누비는 사람. 지금은 어디쯤인지 궁금한 사람.

지금 그 천은 제주도에서 아일랜드까지 날아갔다가 프랑스 빌레 쥐 프라는 곳에 있다. 





Q. 요즘 어떻게 지내나.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 궁금하다.


현재는 프랑스 여행 중이다. 빌레 쥐 프라는 파리 옆 도시 친구네 집에. 

제주에서 알게 된 미소 언니와 화상으로 인터뷰도 하고 있다. 요즘 하는 생각은 주로 메모장에 적어서.. (메모장을 들춘다)

'너는 많은 것들을 경험해 보면서 늘 어땠어? 이젠 깊게 봐야 할 때인 것 같아.'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여태껏 얕게만 많이 봐 온 것 같아서 이젠 깊게 들어가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하는 것 같다.

'모든 음식들은 따듯할 때 밖으로 나오고 차가울 때 안으로 들어간다.' 고기 육즙처럼. 이건 유튜브를 보면서 쓴 것 같고. 출판사가 명작가를 알아보는 줄거리의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메모도 있다. (웃음) 


아 참.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블로그에 아일랜드 생활을 담은 <아희리시>와 <희소식>을 발행하고 있다. 

주로 기록을 많이 하는 듯하다. 







Q. 지금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이 일을 하기 전과 후 삶의 변화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변화인가 궁금하다.


코로나 때문에 원하던 워홀은 못 가고, 아일랜드로 8개월간 어학연수를 왔다. 이제 끝나간다. 

유럽권 국가에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곳, 특히 코크가 제주도랑 비슷할 것 같아서, 좋다는 말도 많아서 아일랜드 코크로 정했다. 첫 외국 생활로 적절할 것 같았다.


큰 변화라고 하면 영어일 테다. 전에는 생각해 본 적 없던 정보들을 눈앞에 놓아두니 조금 어지럽기도 하지만, 웹에서 한국어로 필터링 된 정보들이 아닌 날 것의, 오리지널 정보들을 모을 수 있어 기쁘다. 심리학에 관련된 원작/오리지널 영상을 접하는 것과 번역된 논문을 접하는 건 나에게 크게 달랐다. 제한된 정보를 얻고 살았던 것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여기 온 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 번 이해하면 절대로 잊지 못하는 것들이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이전과는 절대 같아질 수 없다는 것도.








Q. 변하지 않은 것도 있나.


나 자신. 외적으로도 그렇고 내적으로는 말이 조금 많아졌을 뿐이지 생각하는 건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아주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을 때부터 하던 생각들과 지금 하는 생각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 

변화 '후'가 '전' 보다 무조건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안다는 건 고정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좁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어떤 것이 김주희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나.


최근에 느낀 건 선함. 친절.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 기록하는데, 좋은 것들은 모두 타인의 친절들이었다. 

친절은 모든 걸 나아가게 하고, 작은 친절은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마음이 시키는 일. 다른 말로는 여행지에서 길을 잃는 것. 떠오르는 표현을 아끼지 않는 것.



Q. 앞으로 나아갔다고 생각하는 사건이 있나.


인생의 어느 한 부근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이상한 용기가 생긴다. 

원대한 목표 없이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해봐도 될 것 같은 그런 용기. 

그렇게 난 제주에서 아일랜드로 오게 되었고.

이제 철학을 배우고 싶어졌고, 독일에 가고 싶어졌다. 






Q. 잃지 않고 싶은 것이 있다면. 


사람과 사랑.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바라다가도, 영원하지 않아서, 더욱 아끼고 잃지 않고 싶다.

그저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며 현재를 잘 즐기는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꼭 좋은 것만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지만 영원하다고 해서 꼭 좋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순간의 행복함은 잘 새기고, 가는 것은 잘 배웅하고 싶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사주신 돈까스엔 먹기 싫은 피클이 있어서 먹어야 했지만 행복한 일.

커서 내가 부모님께 사드리는 돈까스엔 싫어하는 피클이 없어도 되는 행복함, 그리고 사드릴 수 있는 행복함이랄까? 




Q. 마지막으로 세상에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도 좋고, 다가갈 수 있는 사람들도 좋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 내가 애정을 충분히 쏟을 수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다. 

맑은 이야기. 너무 밝지 않아도 되고 어두워도 되는, 모든 이야기. 

시집 <맑음에 대하여>는 내가 맑음에 집착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꼬아서 듣지도 않고 고지 고대로 들을 수 있는 맑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빛에 기쁜 사람이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빛날 수 있음을 안다.

내가 빛나도 있다는 기분을 느낄 때 나는 가장 아름답다. 빛이 나면 그림자가 진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날들에 내가 만든 빛은 자꾸 희미한 척을 했다. 

그러나 여럿 명백한 타인과 자연이 우리로 들어와 나를 사랑했다. 

나를 지탱한 멋진 사랑을 주기 위해 나는 다시 빛을 품는다. 

빛에서 쓰고 그림자에서 쓰고 싶다. 


-맑음에 대하여, 강준서








 Q. 정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선택하지 않음이 내 선택이 될 수 있다.

정하지 않은 채로 가는 상태를 줄곧 유지해왔다. 

고민을 회피하는 편이라 그 자체가 내 선택이 된 적이 종종 있다. 








우리는 스코틀랜드 스카이 섬 어떤 협곡을 계속 달리다가 풀밭에 한참을 누워 있었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작디작은 인간의 존재를 되새김질했다.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은, 동시에 무엇도 되고 싶지 않은 압도감에 우리를 그대로 두었다.



김주희의 뒷모습엔 어떤 선율이 있다. 

무엇에 신난 듯 폴짝이다 멈춰 관찰하고, 누워 버리고, 느껴버리는. 자신만의 선율이 있는 사람은 늘 기대가 된다. 그리고 오래 지켜보고 싶다. 우리의 다음 여행이 벌써 기대된다.



김주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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