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따라 변해온 공공의 개념
공공의 개념은 끊임없이 변해왔습니다.
시대에 따라 변해왔고 주변 상황에 따라 변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시간, 그리고 시대의 흐름과 함께 공공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공공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궁금한건 바로 그겁니다. 공공이라는 개념을 누가 제일 먼저 사용했을까 하는 것이죠.
공공성의 어원은 라틴어에서 왔습니다.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
‘공적인 것 또는 공적인 일’ 그리고 ‘인민의 것’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로마에서 공공성은 인민이 모여 공적인 일, 공동체의 일을 함께 결정해나가는 과정을 뜻했는데요. 이런 모습을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상징이 있습니다. 바로 원로원이죠. 원로원은 공공의 결정에 자문을 하는 정치기구 중 하나 였습니다. 로마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영상들을 보면 아래 사진처럼 어두운 원형 건물 안에 많은 원로들이 둘러앉아 토론을 하는 모습을 자주 발견할 수 있죠.
로마시대에는 공공의 일을 결정하는 일을 정치기구에만 맡기지는 않았습니다. 로마의 시민들은 외부 압력에 굴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중시했으며, 귀족들이 독단을 행사하면 단체로 로마를 떠나는 시위를 벌이는 등의 행동을 통해 법률 제정을 비롯한 공적 의사 결정에 참여함으로써 공공성을 실현했습니다.
공공이 시작되던 시기 시민들은 매우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자유도 영원하진 못합니다.
중세에는 농사를 지을 땅의 주인인 영주나 귀족이 공공의 권한을 독차지하고 시민은 공공과 관련한 부분에 참여 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귀족과 영주들은 축제를 열어 가난한 농민들을 달랬습니다. 자유를 빼앗긴 농민들이 너무 화가나서 귀족과 영주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죠. 하버마스라는 유명한 철학자는 이런 중세의 행사를 ‘공적인 과시’ 또는 ‘과시적 공공성’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지금시대로 따져보면 악독한 사장님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악독한 사장님이 직원들에게 죽어라 일을 시킵니다. 그리고 한 달 에 한 번 회식을 시켜주는거죠. 그런데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장님이 회식중인 직원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겁니다. #놀땐확실하게 #직원이편해야회사가편하다 #직원사랑 #이런회사또없음 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요.
과시적 공공성은 공론장 즉, 모두가 함께 공공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런 공간이 생긴다는 것은 대중의 불만이 모여서 폭발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영주나 귀족은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나눌 시간이나 공간을 만들어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근대 부르주아 사회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공공성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르주아라고 함은 돈은 많지만 정치적 권력은 없는 쉽게 말해 성 안에 살 능력이 있는 계층 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중산층 정도가 되겠네요. 17세기 중반부터 ‘공중(public)'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여론이 공공성을 실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근대 부르주아 공론장은 공권력에 맞서 부르주아의 이해관계를 공적인 이해관계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을 통해 발전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시민은 다시 스스로를 공공성의 주체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 부르주아 공론장은 독특한 특성이 있었는데요. 이성과 법에 의한 지배를 내세운 부르주아들은 공공성에 참여하면서도 사적인 영역을 존중받길 원했습니다. 이 때 지금 흔히 말하는 공과 사의 경계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공론장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구분하면서도 사익과 공익을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이상하죠? 또 이때 정치적 결정뿐만 아니라 경제와 문화 같은 영역에도 공공성이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근대 국가의 토대가 된 홉스, 로크, J. S. 밀의 자유주의 사상은 공보다 사가 더 중요하다고 보았으며, 정치적 인간을 경제적 인간으로 전환시켰어요. 자유주의는 시민들에게 공과 사의 분명한 구분을 요구했지만, 자유주의 국가가 상정하는 공사의 구분은 사적인 것이 공적인 것에 미치는 영향력을 은폐하기도 합니다.
반면 19세기에 출현한 사회주의는 개인의 몫으로 떠넘겨진 현실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사회주의는 당시 시민들이 겪고있었던 어려움들을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한다는 점, 그리고 토지개혁과 같은 강력한 개혁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만큼 민중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겠죠? 그렇게 사회주의는 빠르게 그 세력을 확대해 갔습니다.
사회주의가 확산되자 자본주의 국가도 자본주의가 불러온 심각한 사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시민의 삶과 연관된 공공정책을 통해 사회 모순을 해결하기 시작했지요.
야경국가에서 복지 국가로 이행하면서 공공사업은 크게 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공성 자체가 강화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공공성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또 복지 국가는 다양한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며 사회 모순을 해결했지만, 재정 위기와 시민 사회의 쇠퇴라는 문제를 초래하기도 했지요.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복지 국가의 위기와 1990년대 이후의 정보화ㆍ세계화ㆍ지방화의 흐름 속에서 등장한 개념이 거버넌스(governance)입니다. 정부와 시민 사회가 함께 의논하고 약속을 정하고 정책을 만들면서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거버넌스입니다. 궁극적으로 거버넌스는 시민 사회의 자치와 정부/시민 사회의 협치를 지향하고 공공성을 실현하는 국가 구조의 커다란 변화를 의미하는 것 입니다.
결과적으로 이제 공공은 국가만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 사회도 함께 고민하고 참여하는 영역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공의 문제들에 대해서 더욱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이야기하고 또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공공은 이렇게 시간,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습니다. 공공은 이렇게 시간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 개념의 범위가 달라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물과 같아요. 주변환경이 변하면 그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그 모습이 변합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는 계기가 있다면, 공공은 또 한 번 그 모습을 바꿉니다. 우리는 지난 세월 공공이 어떤 변화를 겪어왔는지를 통해서 지금의 공공의 모습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공공이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알아야 앞으로의 공공의 변화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여러분들이 살아오는 세월 동안 여러분이 느꼈던 공공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습니다.
* 참고도서 : 하승우(2014). 공공성. 책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