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트라 Mar 19. 2024

이혼 후 첫 결혼기념일, 홀로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다

Viva la Vida 지나고나면 아름다워져


2023년 5월 29일 월요일

파리 할머니의 응원을 받으며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의 시작인

생장 피에드포흐 (이하 생장)으로 향한다.


우리나라 KTX와 같은 TGV를 타고

약 800km가량의 거리를 약 4시간 동안 이동한다.



5월의 프랑스 날씨는 가히 환상적이었고,

나는 긴 이동 시간을 대비하여 맥모닝 세트와

초콜릿, 그리고 모닝 맥주까지 준비했다.

완벽 그 잡채인 것이다.


스스로의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드는 순간이었다.



 


생장 피에 드 뽀흐 (Saint Jean Pied de Port)



생장은 산티아고 순례길 중

(Camino De Santiago, 이하 까미노)

가장 많이 알려진 프랑스길 (French Route)의

시작점으로,

프랑스와 스페인을 가로지르는 피레네 산맥

아래에 위치한 프랑스 남부 작은 마을이다.





생장에 도착하자마자

미리 예약해 둔 알베르게(Alberge)로 향한다.

알베르게는 순례자 숙소로

대부분 도미토리 형식으로 운영된다.

 

보통은 55번 공립 알베르게에 많이 머물지만,

나는 아고다에서 가장 평점이 좋고 깨끗하며

가격대가 높은 알베르게를 예약했다.


한국에서 미리

4일 동안의 알베르게를 예약하고 왔는데,

이미 마음이 많이 지쳐있던 상태라

선택지가 없으면 모를까,

잠만큼은 두 다리 뻗고 푹 잘 자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일찍 도착한 탓인지,

알베르게엔 아직 순례자가 많이 없었다.

오스삐딸레로(봉사자)는

나를 창가에 있는 2층침대로 안내해 주었다.


그동안 혼자 여행하며 호스텔에서 많이 묵어본 결과,

2층 침대는 여러모로 불편하다는 입장이다.


물론 1층보다 사생활 보호 측면에선 낫긴 하나

매번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일은

여간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그에게 요청을 했다.

"나 2층은 싫은데, 1층 침대를 배정해 줄 수 있어?"


그러자 그는 단호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안돼. 1층 침대는 나이가 많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곳이야. 넌 젊고 건강하잖아."


나는 바로 수긍했다. 그리고 부끄러워졌다.


까미노는 이미 시작이 되었구나.

이 길에서의 시간들이

단순 경험과 휴양을 위한 여행이 아닌

나를 고스란히 마주하는 여정임을 기억해보려고 한다.


 


짐을 풀고 마을로 나와서

마트에 들러 음식을 사고 크레덴셜을 등록한 후,

마을을 한 바퀴 산책했다.

저녁 9시가 넘어도 밝고 날씨도 쾌청한 여름날씨.

아깝지만 일찍이 잘 준비를 한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테니까.

그 어느 날보다도 특별한 해가 뜰 테니까.


 


종교는 없는 야매 순례자이지만,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기도라는 것을 해본다.


이 길 위에서 만큼은
무언가 기대하거나 실망하지 않게 해주세요

이 길의 끝에서 얻는 것이 없어도 좋으니
그저 조금 더 홀가분해질 수 있게 해주세요



5월 30일, 대망의 그날이 왔다.



해가 뜨기도 전, 새벽 일찍 일어나서

노트북을 켜고 한국의 업무를 마무리했다.


후에는 짐정리를 했다.

까미노 일정 후에도 여행이 한참 더 지속될 예정이라

챙겨 온 물건들이 좀 있었다.

까미노에서 필요 없는 짐들을 모두 캐리어에 담았다.


파리에서 주구장창 입었던 원피스와 플랫슈즈, 그리고 요가복 몇 벌.

마지막으론 조금 전까지 쓰던 맥북의 전원까지 끈 뒤

박스에 담아 캐리어를 마저 꼭 닫았다.



그리하여 까미노에 메고 갈 가방의 무게는 4kg,

어제 준비한 오늘의 간식까지 더하니 4.5kg 정도.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카메라는 포기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가뿐했다.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기 위해

가장 먼저 자리를 잡는다.

내 자리는 출입구가 보이는 자리였는데,

뒤늦게 명랑한 목소리의 한 아시안 여성이

"굿모닝!" 하면서 들어와 내 맞은편에 자리를 잡는다.



체구는 작았지만, 당당함과 정중함이 느껴진다.

연배는 우리 부모님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놀랍게도 외국인 사이에서 유창하지 않지만,

거리낌 없는 대화를 이어나간다.


나는 가장 먼저 아침식사를 시작한 만큼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나자 모두가 나에게 이야기해 준다.

“부엔까미노!!!”




부엔 까미노 (Buen Camino!)

Buen = 좋은, Camino = 길

이라는 뜻으로,

까미노에서 순례자에게 하는 인사말이다.


서로의 안녕과 평안을 바라며,

당신의 길에 행운이 깃들길 바라는 마음의 인사.


나도 진심을 담아 웃으며 인사한다.

"부엔까미노"



순례자 사무실에 들렀다가 캐리어를 맡겼다.

이 캐리어는 까미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안내자는 이 짐은 10일 동안 이곳, 생장에 보관되어졌다가 이후 콤포스텔라로 보내진다고 했다.


그러니 만약 10일 전에

중도 포기를 하게 된다면 꼭 알려달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럴 일이 절대 없을 것이니 걱정 말라며,

멀어지는 캐리어에게

“안녕! 콤포스텔라에서 만나!”라고 너스레를 떨며 인사한다.





가방을 메고, 어색하게 스틱을 들고, 걷기 시작한다.


4년 전 이날엔, 청계산을 배경으로

웨딩드레스를 입고 버진로드를 걸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큰 배낭을 메고

등산스틱을 휘저으며 힘차게 피레네 산맥을 넘는다니!



내가 한 짓이지만,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니,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멋있는 거야?



전 남편은 이혼하는 힘든 상황에서도

내가 할 일들을 꾸역꾸역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그 모습에 질려버렸다는 듯이

내게 독하다는 말을 남겼다.


엄마는 내게 종종

남편에게 힘든 내색도 하고 빈틈을 보여야

살뜰히 챙김 받고 사랑받는다고 했었다.


그런 엄마의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최악의 상황이 눈앞에 여러차례 오던 경험들로 하여금

나는 독해질 수밖에 없었다.


불이 붙은 집을 멀리서 지켜볼 수만은 없었으니까

모두가 저 멀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떡해 어떡해‘ 울고 있을 때,

 물을 퍼서 쉴 새없이 퍼다 나른건 나였다.

그것이 최소한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뭐가 됐든

지금 나는 그가 말했던 나의 지독함이

그저 고맙고 기특할 따름이다.



BGM은
Cold Play의 Viva la Vida



스페인어로 Viva la Vida 는

한국어로 의역하자면 인생만세! 정도로 되려나.


이 음악은 내가 워낙 오래 좋아했던 음악이어서

결혼식 신랑신부 행진 음악으로도 선택했던 곡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피할 필요가 없었다.

이 순간 이보다 더 찰떡같은 BGM은 없으니까!



One minute I held the key
Next the walls were closed on me
And I discovered that my castles stand
Upon pillars of salt and pillars of sand

한순간 난 열쇠를 쥐고 있었는데 곧이어 벽들이 나를 막았어.
그리곤 난 발견했지, 내 성이 소금기둥과 모래기둥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힘찬 음악에 맞춰 힘차게 걸었다.

지나가는 순례자들과도

가장 밝은 미소로 인사를 나눴다!

Buen Camino!




물론 ‘얼마나 힘든 일이 기다리고 있으려나'

하는 걱정도 있지만

다행인 건 그보다는 설레고 기대되는 마음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이었다.

 

건강한 몸으로 이곳에 와있을 수 있어서

무엇보다 내게 이런 삶에 대한 의지가 있어서

나 자신에게 정말 고맙다.



첫날은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피레네 산맥, 그중에서도 악명 높은 나폴레옹 코스를 걷는다.


까미노 여정 중 가장 힘든 코스라고 익히 들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길이었다.




많은 짐을 포기했지만

카메라만큼은 포기할 수가 없다.

 

멋진 풍경을 담고 싶기도 했고

카메라는 사치인 순례자들의 모습을 담아

그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나름의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들고 느릿느릿 걷다 보니

많은 순례자들이 내 앞을 지나갔다.

그러던 중,

아침에 알베르게에서 만난 아시안 여성과 마주쳤다.



Buen Camino!

서로 한국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어쩌다 보니 나는 그녀와 동행을 하게 되었다.


넘치는 의욕에 나는 그녀의 사진을 많이 찍어 주었고,

그녀 또한 내 사진을 무척 좋아해주고 고마워했다.


땀을 흠뻑 흘리며 걷다가 만난 카페 오리손.


그녀는 내게

"내가 이 길에서 지혜 씨를 만난 건 행운인 것 같네."

라고 말하며 엄청난 용량의 생맥주를 사주었다.


맥주를 마시고 땀을 식히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녀는 놀랍게도 70대 중반이라고 한다.


트레킹과 여행을 좋아해서 전 세계 곳곳을

이렇게 홀로 여행을 다닌다고 하셨다.

나는 덤덤하게 이혼을 하고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필요없다는 듯, 무엇도 묻지않고

 서로의 눈을 응시하며 다정하게 웃었다.


그녀는 나이가 무색하게 매우 건강하고 씩씩했다.

덕분에 나는 그 뒤를 따라 부지런히 걸어갈 수 있었다.

걸으면서 걷는 그녀의 무용담은 정말 재밌었다.


그녀는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안다는 듯,

함께 걷다가도 멀찍이 떨어져 걷기도 하고,

그렇게 적당한 간격을 유지해주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오르막,

숨 막히게 뜨거운 태양에

내가 찡그린 얼굴로 앞만 보고 걸어가자

앞장서 걷던 그녀는 뒤돌아 나를 보곤

손가락으로 저 멀리 가리키며 말한다.


“지혜 씨, 뒤를 한번 돌아봐요.

우리가 이만큼이나 걸어왔어.”



뒤를 돌아보자 어마어마한 풍경이 펼쳐졌다.


앞만 보고 걸을 때는 몰랐던,

마냥 힘들게만 느껴지던 그 길이

뒤돌아보니 이렇게나 멋진 길이었다니

새삼스럽겠지만 몹시 충격적이었다.




아마 그녀가 아니면

나는 뒤돌아 볼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 후로도 까미노에서

몸과 마음의 한계가 느껴질 때마다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많이도 올라왔네.. 고생했다! 조금만 더 힘내!

지나고나서 뒤돌아보면 아름다워져‘



그러자 걸어온 길을 뒤따라오는 순례자들이 보인다.

각자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하며 걸어오는 그들을

마음 깊이 응원하며,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녀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쉬이 말을 건넨다.

저 먼 풍경을 가리키며 아주 정직한 발음으로 말한다.

"더 씨너리 이즈 리얼리 뷰티푸울~"

여유 있는 미소는 덤이다.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다.

그리곤 우리에게 모녀지간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그녀는 대답한다.

“위 아 프렌즈~”


그렇게 나는 까미노에서 첫 친구를 만났다.

명랑하고 다정한 70대 친구!




오늘 걸어야 하는 거리의 반정도 걸었으려나,

그녀와 나는 나란히 앉아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멀리서 어떤 한 젊고 하얀 남자가

보폭이 넓고 빠른 걸음으로 급히 걸어온다.


그는 어제 생장까지 들어오는 기차가 없어서

파리와 생장, 그 중간 지점에서 묵었고,

오늘 아침 일찍 생장으로 들어와

뒤쳐질까 봐 급히 올라오는 길이라고 했다.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있는 듯했다.



나와 친구는 그를 안심시켰고,

셋의 짧은 동행이 시작되었다.

잠깐 걷다가 그는 우리를 보고 안도했는지

다리에 힘이 풀린다며,

우리에게 먼저 가고 있으라고 했다.


우리는 그에게 조심히 오라며 앞장서서 나아간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우리 곁을 스쳐가며 말한다.

"부엔 까미노 (Buen Camino!)"

회복력도 놀랍도록 빠르다.


나의 70대의 명랑한 친구는 말한다.


“저것 봐요. 사람의 걸음이 저렇게나 무서워.

앞만 보고 걸어갈 땐 끝이 안 날 거 같더니

뒤돌아보면 이렇게 한참 따라와있지.”



그의 모습은 아주 작게 보이다가 이내 사라졌다.


피레네 산맥을 넘는 70대의 그녀와 20대의 그



그녀는 어느 것 하나 심심하게 흘려보내는 법이 없다.


부지런히 걸으면서도

지천에 피어있는 꽃들에게 시선을 주며

“참 예쁘다.  너희 각자의 몫을 열심히 하고 있구나”

말하는가 하면


내가 더위에 지친 듯 보일 때엔

나를 나무 아래로 밀어 넣으며

"가만히 서서 바람을 느껴봐요,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지지~" 하며 생긋 웃는다.




내 눈앞에 있는 작고 당찬 70대의 친구와

어제 헤어진 파리지앵 할머니를 떠올리며 생각한다.


세상은 넓고, 멋진 이들은 이렇게 많구나.

인생을 보다 순수한 마음으로, 즐기며 살아도 되겠다.

저들이 지나온 세월을 믿으면서





험난한 피레네 산맥의 피크를 찍고,

이제는 다음 목적지인

론세스바예스를 향해 내려가는 길만이 남았다.

꽤나 위험한 가파른 숲길,

설상가상 엄청난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다.



급히 판초를 입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모든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무척이나 분주해졌다.

저 멀리 마을이 보이자 마음은 더 조급해진다.




아까 전에 만난 순례자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무거운 배낭을 내팽개치고 낙심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남자

왜인지 모르지만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던 여자

무릎통증으로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너무나 고통스럽다던, 그렇지만 꼭 해낼 거라고 말하던 여자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짐이 무척 많았다는 것.


그들은 어디쯤에 있을까?

잘 오고 있을까?




그러던 중, 발걸음이 분주한 순례자들 사이에서

아주 느리게 그리고 힘겹게

한 걸음씩 걸어 내려가는 한 여자를 보았다.


앳되보이는 한국여자였다.

나는 그녀 옆을 지나가며 걱정스럽게 묻는다.

"괜찮으세요?"


그녀는 내 예상과 다르게 활짝 웃으며 대답한다.

"네, 천천히 걸으면 괜찮아요."


"무리하지 마시고, 조심히 그리고 천천히 내려오세요."

라고 말하곤 재빨리 알베르게로 향했다.


배도 무척 고팠고, 무엇보다 따뜻한 샤워가 간절했다.



70대 친구는 근처 호텔을 예약해서 헤어졌다.

나는 론세스바예스 공립알베르게에 도착해

베드를 지정받자마자 젖은 신발과 옷을 손빨래하고,

샤워를 한 뒤 저녁을 먹었다.



식당에서는 아까 지나친 하얀 남자를 만났고,

밥을 먹은 후, 엘리베이터에서는

힘겹게 한걸음씩 내려오던 한국 여자도 만났다.


모두가 무사히 이 험난한 첫 번째 관문을 해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낯설고 불편한 침대에 몸을 뉘인다.

오늘의 긴 하루를 떠올리며 잠에 든다.


내 인생의 2막은 이미 시작되었다.

매년 마주할 5월 30일은
더 이상 슬프고 우울한 전 결혼기념일이 아닌
용감하고 씩씩하게 까미노를 걸었던
‘내 인생 가장 멋진 어느 날'로 기억될 거야!

이 길에서 부디
오랜 시간 두려움에 들춰보지 못했던
마음속 실타래들을 용기 있게 풀어낼 수 있기를
부정하고 회피하고 싶었던 내 모습을
명징하게 마주할 수 있기를

모든 순간과 인연들을
너른 마음으로 끌어안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나 자신을 잘 부탁해.
이전 04화 70대 파리지앵 할머니의 인생조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