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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트라 May 09. 2024

순례길에서 소울메이트를 찾을 수 있을까?

인도에서 김종욱을, 스페인에선 오렌지 반쪽을 찾으세요.

Ep.01 [의심] 소울메이트라는 게, 있긴 해?


까미노를 걸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머물게 된

작고 따뜻한 알베르게에서 프로스티와 버니를 만났다.

둘은 올해 10년 차 부부로,

서로를 매우 살뜰하게 여기는 잉꼬부부였다.


그들은 대학에서 처음 만났고, 졸업 후엔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 오랜 시간 장거리 연애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꽤 긴 시간 서로를 그리워하다가

결국 필리핀에 있던 프로스티가 버니가 있는 호주로 이동을 하며 둘은 자연스레 결혼을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렇게 함께 여행을 다니는 여유로운 결혼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했다.

버니를 보면 배려라는 단어가, 프로스티를 보면 사랑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나는 그들과 저녁 식사를 하며 늦은 밤까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는 내 이혼이야기를 기점으로

사랑과 결혼에 대한 각자의 생각으로 이어졌다.


다음날 아침도 역시 함께 식사를 했다.

가벼운 대화들이 오고 갔다.

호스트가 정성스레 준비해 준 breakfast basket 에는 빵과 커피, 요거트 그리고 오렌지가 있었다.


오렌지를 보며 버니와 프로스티는 둘이 속삭이더니

내게 중요한 무언가를 말해줄 듯한 표정으로 미소를 띠며 내게 말했다.


- 지혜, 스페인어로 '소울메이트'가 뭔지 알아?"


- 글쎄, 뭔데?


- 'media naranja' 오렌지 반쪽이라는 뜻이야.

오렌지를 반으로 자르면, 다 생김새가 다르잖아.

꼭 맞는 오렌지 반쪽이니 완전한 천생연분인거지!"


- 신기하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말 있어, 신발 한쌍!

(짚신도 제 짝이 있다는 말을 생각하며)


- 오, 그것도 좋은 표현이네.

프로스티의 말이 끝나자마자 버니가 말했다.

- 지혜! 우리는 네가 반드시 오렌지 반쪽을 찾을 거라 믿어!


- 갑자기??!! 내 오렌지 반쪽! 어딘가 있겠지? 있긴 한 거지? 하하! 고마워!

능청을 떨며 장난스레 대답했다.


그러자 프로스티는 특유의 나긋한 목소리와

다정한 표정으로 진지하고 약간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 실제로 이 까미노 위에서 자신의 소울메이트를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해.

생각해 봐, 이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영혼이 꽤 비슷하지 않아?

인생의 수많은 날들 중 어느 한 날, 함께 이 길을 걷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어? 심지어 그들 가운데 특정 한 사람과 사랑에 빠질 확률이라니, 얼마나 귀하고 낭만적이야. 완전 운명인거지!

그러니 너도 이 길 위에서도 유심히 찾아봐, 너의 오렌지 반쪽이 정말 이 길 위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오렌지 반쪽의 의미를 내게 알려주는 frozti & bernie



프로스티의 말은 정말로 고마웠지만, 사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혼하고 여기까지 와선 무슨 사랑이고, 소울메이트야..'


하지만 나의 행복과 사랑을 진심으로 바라는듯한

이 낯선 이방인들의 간절한 눈빛들을 보니

왠지 마음을 고쳐먹어야 아니 고쳐먹는 척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 그래요, 좋아! 그렇다면 내가 오늘부터 눈 크게 뜨고, 열린 마음으로 내 오렌지 반쪽을 찾아보겠어!

그리고 만약 정말로 내가 내 오렌지 반쪽을 찾는다면, 당신들에게 제일 먼저 말해줄게!


- 좋아! 우린 너의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게!

사랑이 찾아오면 그 사랑을 알아보고 두려움 없이 사랑을 받아들여!



오렌지반쪽! medis naranja


그렇게 우린 알베르게에서 헤어졌고,

이후 프로스티와 버니는 걸으며 무릎에 무리가 갔는지 뒤늦게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 후론 점차 간격이 점차 벌어지며, 안타깝게도 함께 걷거나 같은 알베르게에 머무는 일이 없었다.






Ep.02 [확신] 온 우주가 나를 품고 있어


까미노에 오른 지 10일 차.

날도 흐리고 풍경도 썩 별로고..

유난히 걷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지던 날이었다.


평소보다 느린 걸음으로 걷다가 Castildelgado라는 작은 마을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평점이 높아 예약이 힘들다던 알베르게의 마지막 베드를 운 좋게 예약했기 때문이다.


까미노를 걷다 보면 걷는 행위나 풍경 외에도

아기자기하고 특색 있는 마을과 알베르게에서 머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규모는 작지만 사랑으로 가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예쁘고 아기자기한 알베르게였다.

단,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서 영락없이 알베르게에서 제공되는 식사를 먹어야 한다는 것은 아쉬웠지만.


까미노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을 주지만,

때론 모국어로 말하지 못한다는 피로감과 부담 또한 존재한다.

특히 오늘처럼 유독 피곤하고 지치는 날엔 타인과의 보내는 시간 자체가 버겁고 힘들다.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그럼에도 알베르게는 예뻤다.



하지만 선택지가 없으니 순례자들이 한 데 모여 식사하는 커뮤니티 디너를 신청했다.


그리고 샤워를 한다.

샤워실 역시 그간 묵었던 알베르게 중에 가장 깨끗하고 쾌적했으며, 내 뒤에 기다리는 이 없이 여유로웠다.

오랜만에 실컷 따뜻한 물로 온 몸을 축이고, 여러번 비누칠을 하는 호사를 누려본다.


까미노에서 가장 기분이 좋은 순간 중 최고의 순간 하나를 꼽아보자면

바로 알베르게에 도착해 땀에 젖다 못해 소금이 서린 옷을 벗어던지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는 그 순간 아닐까? (아마 순례자들은 격하게 동의할 것이다.) 따뜻한 물과 함께 피로는 물론 근심과 걱정까지 눈 녹듯 사라지는 듯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누거품을 가득 내어 씻고, 거품을 헹구려고 다시 수도를 여는 순간 ‘또로로 똑똑 또-옥.’


어라...? 물이 몇 방울 떨어지더니...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는다.

수도를 잠그고 열어보길 수차례 반복해도 물은 나올 생각이 없다.

나는 수도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인정하고 수건으로 비눗물을 대충 닦아낸 후,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머리에 수건을 둘둘 말고 알베르게 주인을 찾아

샤워실에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는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현재 마을 수도에 문제가 생겨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언제 물이 다시 나오냐는 내 물음에 그는 알 수 없다고 답했다.


’ 오늘은 지지리 운도 없는 날인가 보다, 그냥 낮잠이나 잠깐 자야지 ‘ 하며 배정받은 2층 침대에 올라간 순간 내 눈앞에 통통한 벌레 한 마리가 뒤뚱뒤뚱 지나간다.


그것은 바로 까미노에서 절대로 만나선 안될 존재 1순위! 그 유명한 베드버그(빈대)였다.


‘도대체 누구 피를 빨아먹었길래 이렇게 통통한 거야’하며 필사적으로 그것을 잡았다.

그리고 팜플로냐에서 만난 한국인 여성이 건네준 벌레퇴치 스프레이를 침대와 이불에 왕창 뿌렸다.


보통 이런 경우는 베드를 바꾸거나

환불을 받은 후 다른 숙소를 찾아간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쉬운 건 나니까.

마지막 남은 베드 하나를 내가 예약했으니, 바꿔줄 자리도 없을 것이며,

아까 수도 사건으로 보아 이 알베르게의 주인은 내가 베드버그에 대한 이야기 한들 아마 어떠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가 이 알베르게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는 말인데, 지금 나에겐 짐을 꾸리고 다시 걸어야 하는 에너지가 전혀 없다.


일단 눈에 보이는 것은 잡았으니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었다.

뭐, 여기까지 왔는데 베드버그 따위에 물리는 것도 썩 나쁘지 않은 경험일 수도 있다며 합리화도 해본다.


다행히 물은 한 시간 뒤에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또 언제 물이 끊길지 모르니 조급한 마음으로 샤워를 하고, 빨래를 했다.


유난히 흐린 날이었다.


어느덧 저녁을 먹을 시간이다.

이탈리아, 핀란드, 호주, 캐나다, 미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모인 순례자들이 커다란 12인용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아시안은 나 하나였다.


그리고 그 저녁식사에서 나는 이유없이

오른쪽에 앉은 핀란드 아줌마로부터 일방적인 무시와 차별을 당했다.

호기심이 많은 이탈리아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걸면,

핀란드 아줌마는 옆에서 대놓고 비아냥 거리고,

내가 말을 할 수 없게 대화의 주제를 바꿔버렸다.

머지않아 내 왼쪽에 앉아있던 호주 여자도 합세해서 아줌마의 행위에 동조했다.


내가 더듬더듬 말을 하니, 아줌마는 마치 덜떨어진 인간을 보는 것 마냥 비웃었다.

불쾌함에 밥을 먹다 말고 표정 없는 얼굴로 그녀들을 번갈아가며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짧은 언어가 무척이나 원망스러운 순간이었다.

'내가 만약 영어만 조금 더 잘했더라면 저 휘바 아줌마 찍소리도 못하게 까버릴 수 있을 텐데!' 하는 허황되고 안쓰러운 속앓이를 했다.

결국 난 견딜수가 없어서 밥을 다 먹지도 못하고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아무도 내게 인사하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 작은 동네 골목을 몇 바퀴 돌고, 정원에 있는 작은 의자에 앉아 한참을 멍 때리면서 생각했다.


‘왜 나한테 그랬을까?’

‘나는 왜 이 고생을 사서 하고 있나?’

‘이 길이 언제 끝날까?‘

‘이 길의 끝에서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나?’


솔직히 까미노를 걸은지 십일쯤 지나니

이곳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새롭기보다는 지겨웠다.

매일 울면서 걷는 것도 신물이 나고,

생각의 끝에 만나는 감정이 결국 후련함이 아닌 자책과 우울이라는 것도 짜증났다.


지금껏 한 번도 이 길을 끝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힘든 건 아무렴 괜찮은데, 마음이 힘든 건 어찌할 수가 없으니까.


그러나 나는 이 길 끝까지 걸어야만 한다.

그러려면 이 불필요한 생각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지금 내가 몸이 피로하니 마음이 더욱 예민해진 것일 거야. 내일은 도미토리 알베르게 말고 반드시 싱글룸이 있는 숙소에 가서 혼자 조용히 쉬자. 편하게 푹 쉬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천정에서 베드버그가 뚝 떨어지거나 침대 프레임을 타고 올라올 것 같았다.

괜히 온몸이 근질거리는 기분이 들어 결국 밤을 지새우고 5시가 땡 되자마자

다른 순례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어젯밤 미리 챙겨둔 짐을 들고 밖으로 나가 옷을 갈아입었다.


이 알베르게는 너무 예쁘고 아름다운 공간이었지만,

내겐 악몽 같은 공간이었다. 1초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배낭을 메고 나가려는 순간, 어제 식사자리에서 만난 이탈리아 아저씨와 마주쳤다. 화장실을 가려고 나온 모양이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어젯밤 일 (무례한 핀란드 아줌마와 호주 여자)은 유감이라며, 기분은 좀 괜찮냐고 물었다. 그리고 덧붙이길 오늘은 네가 꼭 좋은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 말로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나는 밝은 미소로 그에게 "부엔까미노!" 말하고 잽싸게 알베르게를 나섰다.



밖으로 나오자 칠흑같이 어둠이 기다리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동물의 울음소리도 들려온다.

아무도 걷지 않는 이른 새벽, 외진 시골길은 정말로 음산하고 무서웠다.

휴대폰 라이트를 켜고, 달을 보며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레 걸었다.




이 낯선 땅에 나 혼자만 덩그러니 버려진 기분이었다.


나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두려움도 외로움도 이제 혼자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 사무치도록 슬프게 느껴졌다.


여기서 한번 눈물이 터지면 무너질 것 같아

울음을 꾹 참고 걷는데 얼마 지나지않아

서서히 동이 트며 하늘이 따뜻하게 밝아졌다.


내가 마주하는 하늘,

그 한 장면에 해와 달이 공존했고 온전히 나를 비추고 있었다.

살면서 내가 볼 수 있는 가장 환상적인 장면 중 하나일 수 있겠다라는 직감이 들만큼 아름다웠다.


어둠 속에 숨겨졌던 길이 멋지게 펼쳐지고 있었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은 진짜였다.


온 우주가 나를 품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모든 긴장이 툭 풀리며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두려움과 외로움이 아닌 환희와 안도의 눈물이었다.


길이 당장 보이지 않는다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때가 되면 해가 나를 비춰줄 것이고,

내 길은 안전하게 펼쳐져 있을 테니

나는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성실하게 걸어가면 된다.





혼자 걸은지 1시간가량 지나자 내 뒤로 순례자들이 하나 둘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여느 때보다 씩씩하게 앞장서서 걸었다.

내가 걷는 이 길이 안전한 이유는 누군가 먼저 걸어간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 뒤로 오는 이들도 앞서가는 나를 보며 안도하며 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그러자 이제는 웃음이 났다.


까미노에서 나는 수도 없이 이렇게 울다가 웃기를 븐복했다.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어 힘들었지만 응당 통과해야 하는 일들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냥 그 감정을 보기로 했다.


눈물이 나면 울고, 기분이 좋으면 웃고,

그냥 이렇게 걷기로 한다. 나는 안전하니까.






Ep.03 [수용] 사랑을 받아들일 준비


7km쯤 걸어간 카페테리아에서

어김없이 또르띠야에 카페콘레체를 마시며 다음 묵을 곳을 찾아보았다.


반드시 싱글룸이 있는 곳이어야 했다.

여기로부터 18km 정도 더 걸어가면

Villafranca Montes de Oca라는 마을이 나온다.

그리고 그 마을에 La Alpargateria라는 롯지에 적당한 싱글룸이 있었다.

방은 딱 1개만 남아있었고, 가격은 30유로로 저렴했다. 망설일 필요 없이 덜컥 예약했다.

난 오늘 철저히 혼자 휴식해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23km, 평소보다 적은 거리를 걸었다.

느리게 걸었던 지라 정오즈음 그곳에 도착했다.


롯지의 주인,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진 크리스티나가 나를 반겨주었다.

호탕하고 유쾌한 크리스티나의 환대를 받으니 나도 덩달아 기운이 다시 솟는 것 같다.

그녀는 친절히 나를 가장 꼭대기 층에 있는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천장에 창문이 있어 침대에 누우면 하늘이 보이는 아늑하고 멋진 방이었다.

나는 바로 짐을 풀고 샤워를 한 뒤, 빨래를 하고 그것들을 좁은 방에 옹기종기 널었다.


내가 묵었던 하늘이 보이는 싱글룸 그리고 단촐한 빨래.



마트가 빨리 문을 닫는다는 정보를 듣고 바로 마트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큰~ 맥주 한 병과 바나나를 사서 급히 주방으로 향했다.

내가 이렇게 분주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오늘! 그동안 아끼고 아껴온!

모든 피로와 스트레스를 날려줄 ‘신라면’을 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살린 신라면



주방엔 한 커플이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그들에게 밝게 인사를 하며 양해를 구했다.


"내가 지금 이 엄청난 코리안 누들을 끓일 건데, 아마 매운 냄새가 날 거야. 괜찮을까?“


그러자 그들은 “우리는 한국음식을 엄청 좋아하니 걱정하지 말고 즐겨” 라고 대답했다.

맛있게 끓인 신라면을 들고 자연스럽게 그들 옆에 앉아 식사를 했다.


미국에서 온 15년 차 부부, 브라이언과 메이였다.

브라이언은 내가 자리에 앉자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었다.


Beyonce의 Single lady.

음악에 맞춰 능숙하게 리듬을 타며 내게 물었다.

“너 이 노래 알아?”


나는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한다.

“당연하지!”


그러자 브라이언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비욘세처럼 춤을 추었다.

한국사람에게선 볼 수 없는 엄청난 텐션의 유쾌함이었다. 나와 메이는 그런 브라이언을 보고 사춘기 소녀처럼 깔깔 웃었다.

뒤이어 브라이언은 내게 괜찮다면 라면을 한 젓가락만 달라고 했다.


나는 내 라면 그릇을 브라이언에게 밀어주었고, 그는 라면을 파스타처럼 포크로 돌돌 말아먹었다.

라면이 조금 맵지만, 정말 맛있다며 자신들은 한국음식을 매우 좋아한다고 말했다.


한국 요리를 먹어본 적이 있냐는 나의 물음에

메이는 한국에 두 차례 방문한 적이 있고, 서울과 부산을 가보았다고 말했다.  덧붙여 자신이 비건요리사라고 했다. 평소 줌바와 하이킹 등 다양한 운동을 즐긴다며 자신이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운동을 하는 모습, 여행지에서의 기록, 그녀가 만든 음식들을 대부분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브라이언과 함께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브라이언 & 메이 부부는 굉장히 건강해보였고, 나이에 비해 젊게 느껴졌다.


내가 꿈꿔왔던 결혼생활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세상을 호기심 있게 여행할 수 있고,

기꺼이 모험과 도전을 함께할 수 있는 동반자.

훗날 그 추억들을 몇 번이고 떠올리며 서로의 존재에 감사할 수 있는 그런 부부.

내가 정말로 꿈꿨던 결혼생활, 단순히 남녀의 관계를 넘어서는 세상 단 하나뿐인 소울메이트와의 관계였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까미노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하루에 20킬로 이상은 걷지 않는다고 했다.

젊지 않기에 (50대) 관절을 보호해야 한다며, 미리 숙소를 정하고, 모든 짐을 동키(운송서비스)로 보낸 후, 자연을 충분히 느끼며 천천히 걷는다고 했다.

숙박 또한 도미토리 형식의 알베르게에서 자지 않고, 이곳처럼 주방이 구비된 독립된 숙소나 호텔에서 묵는다고 했다.

음식은 되도록이면 직접 해 먹고 있다고, 브라이언은 메이의 음식을 사랑한다고 했다.


메이의 첫 인상은 사실 꽤나 강렬했다.

구릿빛 피부에 갈매기 눈썹, 힘이 잔뜩 들어간 꼬불꼬불 컬리헤어의 아시안.

하지만 몇 마디를 나눠보자마자 나는 그녀가 얼마나 따뜻하고 온화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싱가포르에서 자랐다며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둘이 대화가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자, 브라이언은 먼저 쉬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물었다.


"지혜, 나 한국 드라마 좋아하는데, 혹시 추천해 줄 드라마 있어?"

나는 브라이언에게 손예진과 현빈이 출연하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추천해 주었고, 브라이언은 신이 나서 올라갔다. 마치 엄마가 집에 없어 마음껏 게임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은 천방지축 아들같았다. 메이는 그런 브라이언을 애틋하게 바라본다.


나와 메이는 이야기의 처음은 대부분 운동과 음식에 대한 이야기였다. 삶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꽤나 비슷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거웠다.


뒤이어 까미노에 오게 된 이유와

이곳에서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이혼을 하고 이곳에 왔으며,

삶에서 오는 다양한 고통들을 잊고자 걷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 또한 내게 전해주었다.

자신 또한 오래전에 첫 번째 남편과 이혼을 했다고.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친구로 잘 지내던 브라이언이 갑작스레 사랑 고백을 했지만 덜컥 시작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유는 소중한 친구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 두려웠고, 무엇보다 당시엔 자신이 너무 불행하고 불안한 상태였기에 그 에너지가 고스란히 브라이언에게 전가될 것이 분명해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은 완벽할 수 없고, 그런 불완전한 자신을 유쾌하고 다정한 브라이언이 안아줬으며

그와 함께 지내는 15년의 시간동안 많이 회복되고 좋아졌다고, 이제는 조금 행복이라는 것을 알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운동을 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 이유는, 무엇보다 자신이 먼저 행복하고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했다.

그래야 곁에 있는 남편에게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직도 종종 마음 안에 알 수 없는 슬픔들이 불쑥불쑥 올라온다고 했다.

심지어 오늘 새벽에도 그랬다며.

그래서 오늘 새벽엔 성당에 들러 한참을 기도하고 울었다고 했다.

그렇게 기도하고 울고 나면, 마음 안에 있는 무언가가 모두 쏟아져 나오는 것 같이 한결 후련해진다며.

부정적인 감정들은 묵히지 않고 잘 흘려보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이어서 메이는 내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내 눈을 응시하며 천천히 말했다.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중요한 교훈을 알려주듯이.


“지혜, 결혼은 참 어려운 일이야.

내 안에 좋은 것이 있어야 상대에게 좋은 것을 줄 수 있는데, 나는 브라이언을 만날 당시를 되돌아보면 내면이 너무 좋지 않았어.

그래서 지금도 그렇게 불안정한 날 기다려준 브라이언에게 늘 감사해. 그래서 난 나를 위해서 또 내가 사랑하는 브라이언을 위해서 내면의 건강과 평화를 위해 노력할거야.

지혜, 이 길에 정말 잘 왔어.

이 길을 걷다가 마음이 많이 힘들면, 간절하게 기도해 봐. 울고 싶으면 원껏 울어도 좋고.

너는 너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이 길에 오른 넌 분명 건강하고 멋진 사람이야. 당연히 힘든 이 시기를 잘 극복해 낼 수 있을 거고, 머지않아 분명 너의 좋은 짝도 나타날 거야. 너에게 편안함이 찾아오길 진심으로 바라. 내일은 성당에 가서 너를 위해 기도할게.“


나는 대답했다.

"메이, 정말 고마워. 사실 나도 까미노에 온 이후, 매일 아침마다 울어. 명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눈물부터 나. 너의 얘기를 들으니 나도 내일은 성당에 가야겠어.”


그날 다짐했다. 속도를 좀 천천히 늦춰봐도 되겠다고.

그리고 종교는 없지만 슬픔이 내 앞을 가로막을 땐 보이는 성당에 들러서 무엇이든 간절하게 기도를 해보자고.


La Alpargateria Lodge 방명록에 쓴 글  (2023/06/09, Villafranca Montes de Oca)



메이와 따뜻한 허그를 하고 인사를 했다.

따뜻한 허브티를 양손으로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일기를 쓰고, 어색하게 침대에 앉았다.

명상이 아닌 기도라는 것을 해보았다.


여름 스페인의 해는 무척이나 길다, 창 밖으로 보이는 날은 밝지만 일찍 잠을 청해 본다.

아주 오랜만에 매우 깊은 잠에 들 수 있었다.



나도 나의 행복과 안녕을,

그리고 진실된 사랑을 마음 깊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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