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털 공기층과 유리솜 단열재
횡단보도의 정지선 같은 규칙
추운 겨울이 되면 보온성 있는 내의를 입고, 목을 감싸는 민트색 목티에, 기모가 있는 청바지, 오리털과 공기층으로 따뜻한 청색의 점퍼를 즐겨 입습니다. 겨울이 되면 집도 공기층으로 이루어진 몇 겹의 단열층 덕분에 추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벽돌벽 마감 전에 두 개의 단열층 공사가 진행됩니다. 외벽은 흑연이 들어간 검은 스티로폼 단열재를 빈틈없이 붙이고, 내부 마감공사 전에 유리솜(그라스울)을 투 바이 식스 나무틀 사이에 채워 넣습니다. 그라스울은 솜먼지가 일어나서 작업자들에겐 이때가 제일 힘들어 보입니다. 마스크를 쓰고, 고개를 쳐들고 천정면과 벽의 구석진 곳까지 손을 뻗어 솜을 밀어 넣어야 여름과 겨울에 집다운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단열재 작업은 손가락과 손바닥 주먹 쥔 손에 의존하게 됩니다. 콘크리트 건물에 비해 서양식 목조주택은 기밀성이 취약해서 누가 뭐라 해도 단열재 공사는 꼼꼼히 챙겨야 마음도 편하고 추운겨울 외출복을 챙겨 입은 듯 든든합니다.
현장에 쌓인 단열재를 보던 김 소장은 “마스크에 보안경 쓰고, 먼지 날리지 않게 부지런히 작업하고 오늘 저녁엔 삼겹살이나 먹으러 가야죠. 단열재 넣고 나면 힘들잖아요” 흰 수염이 듬성듬성 나기 시작한 김 소장의 푸념도 늘 듣는 소리지만 마음 한편에서 미안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유리솜을 내벽에 설치하기 위해 자르고 고정하고 구석진 곳에 넣을 때 꼼꼼한 만큼 떠다니는 솜먼지를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산업용 마스크를 쓰고 단열재를 넣는 현장 식구들이 여느 때와는 달리 지쳐 보입니다.
건축현장에는 먼지가 많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햇볕이 들면 분명한 색이 드러나듯이 공기 중에 부유하는 작은 입자들이 떠다닙니다. 맨흙이 날리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죠. 시멘트 가루를 시작으로, 석고보드를 자르고 붙일 때, 본드가 함유된 합판의 톱밥, 주방가구를 현장에서 제작할 때 나오는 인조대리석 가루, 욕실 타일을 자르면서 나오는 돌가루, 화장실의 방수공사까지 먼지와 휘발성 냄새가 있는 작업들입니다. 마스크를 쓰고 작업을 하지만 목이 칼칼하고 눈이 따가운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현장에 들어오는 재료들이 친환경 등급이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친환경이지 천연제품은 아닙니다. 공장에서 제작되고 가성비와 경제성, 현장 시공의 효율까지 고려한 제품이라 해도 현장에서 자르고 붙이는 과정에서 먼지와 냄새는 늘 따라다닙니다.
“건축주뿐만 아니라 일하는 식구들을 위해서라도 등급이 높은 재료를 쓰고, 시간을 가져야 해요. 재료에서 나오는 냄새도 빠지고, 콘크리트에 들어있는 습도 날아가야 구조도 단단해지고, 바빠도 멈추어야 하는 횡단보도의 정지선 같은 규칙이 필요하잖아요” 급하다고 과속을 해서도 안되고 건강한 집이 되려면 현장 작업자들에게도 편안한 재료가 좋은 집의 기본이 된다는 이 팀장의 목소리에 힘이 있습니다.
좋은 등급의 친환경 제품을 사용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점은 냄새와 눈의 따가움, 입속의 텁텁함으로 알 수 있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은 같아 보일 수 있지만 공사하는 사람이 불편한 냄새라면 입주해서 살 사람들에게도 좋지 않다는 뜻일 것입니다. 건물이 지어지고 난 후에 디자인과 가성비로만 따질 수 없는 원리라고 할까요?
이 팀장은 “합판 가격만 배 차이가 날 때도 있어요. 그래도 이걸 써야지요. 건축주들 눈에 안 보이는 곳이니까 잘 모르지만 우리는 알잖아요” 모르고 선택할 수는 있어도 알고 선택하는 일은 없습니다. 이렇다 보니 자재를 공급하는 회사들도 정해져 있습니다. 믿을 수 있는 품질의 원자재를 제공하는 업체하고 오랜 기간 인연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낮은 등급의 페인트나, 비닐 제품 대신에 원목을 사용하고, 본드 냄새가 심한 저가의 집성 합판이 아닌 마감재로도 사용이 가능한 등급의 원목 집성판을 쓰고, 비닐코팅이 된 벽지 대신 한지를 바르고, PVC필름으로 된 바닥재보다는 원목으로 짠 마룻재를 직접 가공하여 공사를 하면 건축주와의 인연도 길게 이어질 수 있습니다.
가격 대비 모양과 기능이 좋다는 제품들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수많은 제품들이 일회용처럼 사용되며 길거리를 장식하고 있지만 집은 아주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서 있으면서 비바람을 맞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따뜻하고 건강하게 지켜줄 수 있어야겠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꼼꼼히 채워진 단열재를 보니 승현이네와 황선생 집도 오래도록 제자리에서 자기의 역할을 충실하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