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 나무를 도끼로 자르다 힘들어서 톱으로 잘랐어요, 남편한테 앞이 시원스레 보이게 해달라고 했는데 안 해주잖아요. 그래서 내가 했지” 마당에 나무가 있는 집들은 한 해를 마무리하기 전에 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웃자라거나, 길 쪽으로 뻣어 나오는 가지를 다듬는 일인데요. ‘그냥 놓아둘 수도 있지’라고 하지만 그건 저처럼 방치하듯 정원일을 하는 사람을 위한 위로의 소리인 것쯤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지난봄, 괴산 심선생님 부부의 소개로 시작된 주원이네 집은 설계를 마치고 겨울에 들어오기 전에 공사를 열었습니다. 선생님 댁 맞은편에 지어지는 주원이네 집을 둘러보고, 따뜻한 차를 마시자며 단골 찻집 같은 선생님 댁 식탁에 둘러앉았습니다. 분위기는 금세 수다 스러지고, 안주인은 직접 자른 나무 이야기부터 전해 줍니다. 잘린 나무를 바라보니 남일 같지 않더군요. 힘든 일은 남편들이 할 것 같은데, 마당이 있는 집에 살면 실내와는 다르게 집 밖의 일들은 가족 모두의 일이 되는 것 같아 보입니다. 텃밭에서 벌레 잡는 일도 그렇고, 비 오는 날 수로를 내어주는 일, 겨울눈이 오기 전에 부지런히 주변을 정리하는 일들처럼요.
“저도 집에 가면 하기 싫어요, 이리저리 널려있어요. 아내에게 매번 잔소리인지, 쉬라는 소리인지 애매한 핀잔을 듣죠” 의뢰받은 분들의 집은 잘 지어주고, 고쳐주면서 정작 자기 집 관리는 시원치 않다는 현장소장의 맞장구가 이어집니다. 옆자리에 앉은 선생님도 마음의 위안을 얻었는지 “나는 보기 좋은데 아내는 굳이 전지를 해야 한다고 해서 때를 놓쳤다”며 너스레를 떱니다. 하긴 저도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정원일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4월부터 시작해서 11월 말까지 꽃이 피는 스무 그루가 더 되는 장미들을 겨울이 오기 전에 다듬어 주어야 하는데, 늘 다른 일들에 밀리고 있습니다. 게으른 것이 분명하지요. 이번 주 일요일에는 시간을 내어 장미 전정을 해주어야겠습니다.
마당과 나무이야기가 나온 김에 “주원이네 집에 줄 선물을 가지고 왔어요” 키가 큰 주원이 어머니는 선물을 가져왔다는 소리에 “무슨 선물이에요. 집도 잘 지어주고 계신데, 다른 선물이 있어요?” 라며 이 소장과 저를 번갈아 살펴봅니다.
며칠 전에 이정원사님이 작업실에 왔다가 테이블 위에 놓인 주원이네 집모형을 요리조리 살펴보고, 집 배치 설명도 듣고는 정원 설계를 선물로 해주고 싶은데, 실례가 안되는지, 괴산에 같이 가고 싶어 했다는 자초지종을 들려주었습니다. 옆에서 설명을 듣던 선생님은 “우리 집 지을 때는 그런 소리 안 했잖아요.”라며 기쁜 웃음을 보여 주십니다.
마당 한가운데 집을 둔 ‘중당(中堂)’ 배치의 주원이네 집은 유행과는 거리가 먼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심 선생님 댁도 마당 가운데 집을 지었을 때 이웃들이 궁금하게 여겼다고 하니 흔하지 않은 방식입니다. 선생님은 “집이 마당 가운데 있어서 어떨까 궁금했는데 동서남북과 그 사이 마당까지 쓰임이 좋아요. 앞마당만 넓은 집들에 비해 여름에 뜨겁지 않고, 사계절 해가 들고, 바람 드는 장소가 모두 다르고, 집 둘레를 천천히 걸을 수도 있고, 버려지는 곳 없이 관리를 할 수 있어요. 이 동네에서 우리 집이 유일하게 마당 가운데 집이 있죠. 덕분에 도로와 집 사이에 낮은 담도 운치 있게 생기고요”라며 중당식 배치에서 살아본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심선생님네와 주원이네처럼 늘 마당 가운데 집을 배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변 환경과 살림살이들을 살펴보고 나서야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죠. 땅 모양도 집의 형태와 규모도 다르지만 마당 가운데 집을 둔 배치는 한쪽으로 치우친 방식보다는 활용도가 높은 이점이 있습니다. 정원사가 주원이네 정원을 디자인해준다고 하니 어떤 모양이 나올지 궁금해집니다. 선물 받은 정원에 살면서 몇 년 동안 형편 닿는 대로 심고 가꾸면, 심선생님 부부도 야무진 손을 거드실 거고, 정원사와 건축가도 가끔 찾아와 손을 보태겠지요.
선생님도 자기 집을 지어준 건축가들에게 선물을 주신다고 하네요. 나무 시계를 몇 개 만들려고 하는데 어떤 디자인을 받고 싶냐고 하십니다. 선물은 주는 사람의 눈높이보다 받을 사람의 취향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다는 선생님의 센스에 한 표를 던지게 됩니다. 정원 디자인 선물이 파동을 이루어 우리들에게까지 연결되는 것이겠지요?. “심선생님 식탁 벽에 걸린 저 동그란 나무 시계면 좋겠어요. 열두 개의 서로 다른 나무심이 박힌 저 형태가 딱 좋아요”
눈에 보이는 돈과 모양이 우선일 수도 있지만 집을 짓는 동안 마음이 이어지면 해주고 싶은 것이 많아집니다. 그래서일까요? 현장 식구들이 즐겨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독한 집주인한테 번 돈으로, 마음 씀씀이가 이쁜 건축주를 만나서 속옷까지 벗어주고 나올 때가 많아요” 보이지 않지만 살펴주는 마음이 오가면 그만큼 손끝 정성도 더해진다는 소리이겠지요. 괴산 단골 찻집에서 나눈 이야기를 기억에 안고 올라오는 차 안에서 건축가라는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지 한 번 더 돌아보게 됩니다. 다음번 모임 때는 정원사와 가구를 만드는 수작사계 목수도 동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더 시끌시끌한 단골 찻집이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