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 소리와 마음의 소리를 위한 통역

건축가와 건축주의 거리

by 빵굽는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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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에 드러난 모양 이전에 바탕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건축가와 건축주들이 있어 더딜 때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


우리들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을 꼽으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

특별하고 소중한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집을 짓는 동안 우리들은 내 마음을 상대에게 보여준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나의 경험과 생각으로 오해를 만든 일은 없었을까?


성사동 세 가족 중에 한 집인 포비네는 제 딸아이와 동갑내기 초등생을 둔 가족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지향이 저와 비슷한 면도 많고, 포비네 집 책장을 보면 읽고 싶은 욕심이 나는 책이 많은 책부자입니다. 알고 보니 제 지인들과도 인연이 있어 멀지 않게 느껴지는 건축주입니다. ‘포비’님이 3일 전에 문자를 주었습니다.


“소장님 못 뵌 지가 꽤 되어서 메시지 남겨요 ~잘 지내시죠? 날씨가 어쩜 이래요. 거긴 더 좋겠지만 여기 좋은 공기 전해 드려요”


어제는 포비님의 남편 ‘스머프’가 전화를 주었습니다. 직접 만든 반찬을 봉투에 담아 몇 차례 나누어 준 자상한 건축주입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닌데 그 마음씀에 감사의 마음을 내어주는 건축주입니다.

“소장님 저녁 시간인데 전화 괜찮으세요? 못 본 지 오래되었어요. 집을 짓다 보니 현장 소장과 감정이 생기고 잘 풀리지 않고 힘이 좀 들어요. 수고가 많은 소장인데, 처음 짓다 보니 제가 다 이해하지 못하고 그러네요 ^^ 이번 주에 진입로 정리하는 것을 가지고 모이자고 하는데 혹시 저에게 도움이 될 의견이 있으신가요?”


조금 지나서는 현장 소장이 전화를 주었습니다. 현장 소장은 저와는 10년이 넘은 인연이고, 사람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가득한 건축가입니다. 지금은 성사동 세 가족 중에 가운데 집 ‘꽃잔디’의 남편이고 저에게는 건축주이자 세 가족의 건축소장이기도 합니다. 어쩌다 보니 인연이 이렇게 되어버려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살아야 할 허소장을 생각하면 재미나기도 하고 살면서 표정 관리가 쉽지 않을 것 같아 걱정도 앞서게 됩니다.


“소장님 퇴근하다가 목소리 들고 싶어서 그냥 전화드렸어요. 지지난 현장에서 쓰고 남은 나무 자재가 조금 있는데 용달 편으로 보내드릴게요. 필요한데 있으면 쓰세요. 인연이 있는 분들 집을 짓다 보니,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제 욕심을 내려놓기는 정말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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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땅에서 어깨를 맞대고 살아가겠지만 그래도 간격이 존재하기에 우리들은 각자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일을 하는 수많은 손맛 있는 장인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어 집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저녁 9시 30분이 넘어

성사동 세 가족 ‘바람개비’님이 연락을 주었습니다. 바람개비는 들어가는 입구에서 바라보는 방향으로 오른쪽 제가 정말 좋아하는 색인 Olivegreen 집입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인데 무엇이든 문제가 생기면 풀기 위해 애쓰고 주변을 살피면서 의견을 나누는 사이가 된 건축주입니다.


“소장님 늦은 시간인데 통화 괜찮을까요? 우리 집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가운데에 자리한 계단도 보면 볼수록 쓰임이 좋고요. 일하시는 분들도 좋은 분들이 오셔서 잘 지어 주시고요. 주변 지인들 중에 건축하시는 분들도 와서 구경하고는 시샘하면서도 부러워하네요. 외벽 색깔도 정말 좋고요. 친정어머니도 좋아하세요. 그런데 소장님 이번 주에 ‘베짱이’(현장 소장)가 동네 입구 계단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함께 고민을 해야 하는데 소장에게 부담만 주는 것 같고, 잘 모르겠어서 의견 듣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집을 짓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네요”


건축가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라고 지난해 이맘때 성사동 현장소장 ‘베짱이’가 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 역시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말 한마디에 풀리기도 하고 쌓이기도 하고, 고마운 마음도 드니,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모여 관계가 만들어지는 일이 집 짓는 일일 것입니다. 지어진 집에 이사해서 몇 달 살아보면 집 짓는 중에 그렇게 고집하던 일들도 “피식”하고 웃을 때가 옵니다.


지금 저의 역할도 그때를 바라보며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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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자리를 잡을 때 먹통에서 빼낸 먹줄을 팽팽하게 '땡'하고 당겨야 먹선이 살아 끝까지 마감선이 이어집니다. 우리들 집 짓는 일들도 먹줄을 긋는 것과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건축주인 성사동 식구들과 건축가인 저의 관계를 위치로 풀어보자면, 제가 원의 중앙에 있고 원둘레에 자리한 현장소장과 건축주들이 가운데 있는 저에게 각자의 마음 이야기를 전하는 듯합니다. 원의 지름은 느낌상 2미터가 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처럼 느껴집니다.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한쪽에 치우치지 않을 수 있어 어느새 저도 내공이 생긴 것인가 싶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소리가 들려올 때 가장 중심에 두어야 할 것은 우선해서 사람의 마음을 챙기는 일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겉 소리 대신 마음자리에 있는 울림을 상대에게 잘 전하는 일이 저의 일이니 건축가는 일종의 통역관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성사동 식구들은 가족이 되어 가고 있어 따뜻한 봄날입니다. <2020년 5월 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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