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비네 주방에서

밥 국 김치에 담아주는 마음

by 빵굽는 건축가

어제(2019년 11월 13일)는 경기도 김포와 고양을 다녀왔습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가로로 긴 한 채의 집과 옹기종기 모인 세 채의 집이 드디어 설계를 마치고 공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가로로 긴 집은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누구나 한 번은 살아보고 싶은 장소의 집‘이라고 하면 정확할 것 같습니다. 반면에 작은 대지에 옹기종기 모인 세 채는 10년 가까이 공동육아를 통해 이웃이 된 세 가족이 땅을 구입하고, 6개월간의 설계를 마치고 이제 공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건축가들에게는 ‘또 하나의 집‘이라는 담담함도 있고, 이번에는 어떤 공간이 만들어질지, 설계 당시부터 중요하게 여기던 장소들이 1:1로 눈앞에 보일 때까지, 건축주 못지않게 설레고 궁금해집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요. 건축일을 하다 보면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첫 삽을 뜨기까지의 시간이 전체 일정 중에 반이상을 차지하는 이유는, 행정관청으로부터 승인을 얻고, 설계, 시공, 각 부분이 서로 조율하며 ‘OK‘ 사인을 보내기 까지도 만만한 과정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집을 위한 디자인 과정 중에 건축가들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건축주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방문하는 일인데요. 힌트를 얻기 위한 시간이라고 할까요?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비슷한 아파트라고 하더라도 그 집만의 고유한 채취 같은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음식을 많이 하는 집의 정취, 명상이나 책을 많이 보는 차분한 분위기, 아이들의 놀이터 같은 곳들입니다.

성사동 세 가족 중에 스머프와 포비(건축주의 별칭)네 집은 아이들의 놀이터와 엄마 아빠의 작업실이 뒤섞인 그런 집입니다. 새로 짓는 집에서는 조금 더 정돈된 살림살이를 하고 싶다고 하는 곳이죠. 저녁시간에 만나다 보니 종종 건축주들이 해주는 밥을 먹을 때가 있어요

어제가 그런 날입니다.
˝건축가님 고기 안 드신다고 해서 야채만 넣고 볶음밥을 준비했어요˝
˝정말요, 번거롭게 따로 밥을 다 준비하셨어요? 같은 것으로 먹어도 되는데요. 햄 정도는 가끔 먹을 수 있어요. 김밥을 사 와도 될 것을요˝
˝늦은 시간에 집까지 오셔서 이야기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밥은 같이 먹어야죠. 야채 볶음밥 괜찮으시죠?˝

이쯤 되면 퇴근시간 막히는 길을 찾아온 저와 건축가 식구들의 마음은 노곤 하게 열립니다.
밥이 금방 식으면 안 된다고, 나무 찬합에 밥을 담아 주는 건축주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제 직업에 애정이 생깁니다.

˝시금치에 바지락을 넣었어요. 채식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바지락은 괜찮지요?˝
맛있는 야채 볶음과 시금치 바지락 된장국을 먹으면서 앞으로 지어질 스머프와 포비네 집의 주방을 상상하게 됩니다.
제 마음속에서는 벌써 새로 지어진 주방에서 밥 먹는 욕심을 냅니다. ˝음 언제 오더라도 따뜻한 밥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집이야˝
곧 지을 집을 위한 이야기들 덕분에 늦은 시간까지 한참을 웃었습니다.

설탕을 넣지 않은 ‘오미자 차‘를 빼먹을 뻔했군요. 살짝 물든 빨간 오미자차는 아예 1리터 보온 통에 넣어서 주시더군요.

˝왠지 건축가는 이런 방식을 좋아할 것 같아서요. 보온 통에 오미자차를 따뜻하게 담았어요. 편히 드세요.˝
함께 일하는 이 소장과 최 소장도 보온 통에 담긴 차를 마시며 느꼈을 것 같습니다. 이 집의 주방, 식당, 거실은 어떠해야 하고 어찌할 것인지를요

꼼꼼하게 마련된 수납장이 아무리 많아도 이 집은 분명히, 지금처럼 아이들과 엄마 아빠의 물건이 마구 섞인 활기찬 집으로 쭈욱 살아갈 것이라는 예감이 듭니다. 그곳에 저와 우리 건축가들이 가끔 찾아와서 볶음밥을 해달라고 할 것 같고요.

스머프와 포비네 집은 일본 오부세 정원 답사 중에 묵은 민박집 주인장의 주방같이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오부세 민박집 분위기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시죠.
음 뭐랄까요? 여행자의 손과 입, 눈가의 움직임, 식탁의 표정까지 놓치지 않는 두툼하고 섬세한 손길 같은 곳이라면 정확할까요?

<냄비와 솥을 비롯한 많은 종류의 조리 도구가 밖으로 노출되어 있는 주방은 어수선하고 복잡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방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요리를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보는 시각을 약간만 바꾸면 활기 넘치는 주방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요시후미 선생의 집을 생각한다 중에서 >

비빔밥과 시금치국에 담긴 마음을 잊을 수가 없어요. 모양과 음식의 향에 스민 밥차려주는 이들의 씀씀이가 들어있기 때문일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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