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인사로 건축주 분들께 포도를 보내고 몇 개월 지나 답례인사를 받았습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잊지 않고, 잘 지내고 계신다고, 생각나서 연락을 주었다고 합니다. 서로가 마음을 표현하는 일도 집을 짓고 사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입니다. 잊힌 사이보다 말입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건축 협동조합은 인연의 끈이 이어진 건축주들이 많은 편입니다. 남쪽으로는 남해 동경작업실을 시작으로 북쪽으로는 고양시 성사동 세 가족까지, 지도 위에 점을 찍으면 별처럼 보일 수 있을 정도가 되어갑니다. 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과 계속 연결되어 있듯이 오늘 새벽 북두칠성도 북쪽에서 점점 가까이 다가와 우리 집 지붕 한가운데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겨울이 깊어지면서 북두칠성도 제 가까이 온 것이지요. 10년의 세월이 맺어준 집주인들도 우리들에게는 별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소장님 보내주신 포도 맛있게 먹었어요. 챙겨드리는 것도 없는데 매번 이렇게 받기만 하고 너무 감사해요. 인사가 좀 늦었죠?”
“저희들이 더 감사하죠. 입주하셔서 행복한 모습 보여주며 살고 있잖아요. 세 가족이 모여서 도란도란 드시라고 포도는 두상자만 보냈어요”
“실은 소장님! 저희들 세 가족이 모여서 먹지는 않았고, 삼등분으로 나누어서 각자 집에서 먹었어요”
“그렇군요! 그럼 세상자를 보낼 걸 그랬어요. 늘 모여서 밥 먹고 차 마시고 그래서 두상자를 쏟아 놓고 시끌시끌하게 모이라고 그렇게 보낸 건데요.”
“아직은 조금 서먹해요. 한두 달 더 지나면 괜찮아지겠지요? 집을 지으면서 서로의 마음에 방울만 한 것들이 조금씩 달린 것 같아요. 한자리에 모여 앉는 게 시간이 걸리네요”
함께 땅을 사고, 우리 건축가들과 열두 달 넘게 살아온 이야기, 사는 이야기, 살 이야기들을 나누고 이해하며 지낸 시간이 있는데, 집을 짓기 이전보다 서먹해졌다는 소식에, 그만 웃음이 ‘풋’하고 먼저 나옵니다. 다른 건축주들이라면 제 웃음을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세 가족은 오해가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10년 넘게 마을에 살고 있고, 이웃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는’ 건축가라는 믿음이 있을 것입니다.
집을 짓는 동안 불편한 모습들을 보았을까요? 아니면 잠깐만이라도 서로를 지켜보기만 하고 싶은 것일까요? 그것이 무엇이든 괜찮을 것입니다. 세 집 모두 언제든 마음을 터놓고 속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한자리에 모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마을에 살아본 선배의 눈으로 볼 때, 걱정되지는 않습니다. 지금 마음이 조금 불편하고, 혹시라도 뭔가 들킨 것 같아 서먹할 뿐이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일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웃사촌끼리는 흉마저도 흉이 되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
아이들은 서로 이해관계가 없고, 사이가 틀어지더라도 하루를 넘기지 않는데 아이들 눈높이에 비추인 어른들 모습은 어떨까요?
승현이네와 황선생 님 집을 짓고 있는 이곳도 이웃이 여럿 있습니다. 먼저 들어와 살고 있는 가족이 다섯 집이고 이제 두 집이 이사를 오면 일곱 집이 됩니다. 협동조합의 건축가들이 땅을 살펴 디자인을 하고 집을 짓고 새로운 이웃들을 잇고 있습니다. 건축가들이 할 일은 공간을 통해서 소통, 보호, 살핌의 가능성을 만들어 주는 일이라고 할까요? 집과 집 사이에 길을 내어주고, 길과 길 사이에 작은 마당이 생기도록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벌린 작은 틈들을 열어줍니다. 그러면 그곳에 고양이가 다니고, 뒤이어 아이들이 따라 가면, 덕분에 어른들도 할 이야깃거리들이 만들어집니다. 지붕을 얹은 집은 나와 가족을 위한 장소이고, 지붕 없는 방은 우리를 위한 장소일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사람들은 지붕 없는 장소에 나무를 심고 그늘을 만들고 그곳에 의자와 탁자를 놓습니다.
건축가는 ‘관계를 만드는 역할’이라고 성사동 건축주 ‘베짱이’가 이야기해 주었을 때 고개를 끄덕이고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올봄 입주한 성사동 세 가족은 우리 건축가들을 ‘백년손님’으로 부른다고 합니다. 포도를 보면 생각나는 건축가들이라고 하네요. 세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불편함도 충분히 즐기고 “그럴만하다고” 이해될 때 더 가까운 가족이 되어있겠지요.
저는 어제 옆집 누님이 들고 온 감자 그라탱을 저녁으로 먹었습니다. 삶고 으깬 감자에 야채를 볶아 넣고 그 위에 치즈를 얹혀 오븐에 구워낸 그라탱이 어쩌면 나와 이웃의 모습은 아닐까요? 감자만 있는 것보다, 야채도 있고, 치즈도 올리고, 으깨고 삶고, 구워야 제맛이 나는 레시피가 함께 사는 이치와 비슷해 보입니다. 그게 싫으면 감자만 먹어도 괜찮겠지만 말입니다. 여러분들의 주위에는 어떤 이웃들이 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