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하루를 발효시킨 통밀 반죽을 아침 일찍 오븐에 굽고, 집 근처 금광호수를 자전거로 한 바퀴 돌아옵니다. 오늘 아침은 하늘색처럼 상쾌합니다.
오랜만에 구운 빵은 장미마을에서 통신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준서 엄마에게 보낼 생각입니다. 어제저녁에 싸준 곤드레나물 도시락에 대한 보답으로 구웠습니다. 나물밥이 있는 도시락통에 통밀빵을 넣었습니다.
건축가의 일 중에 건축물을 설계하고 짓는 일에만 머무른다면 글쎄요?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설계를 하고 건물을 짓기 위해 알아가고, 경험하는 과정 덕분에 자연스레 ‘생활’이라는 글자에 어울리는 문화와 그것에 걸맞은 공간과 장소에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
집에서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음식을 만들면서 다용도실과 주방이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지, 살림을 위한 몸의 움직임과 이동하는 방향을 연구하게 됩니다.
아침에 구운 발효 빵에도 집을 짓는 과정과 비슷한 맥락들이 있습니다. 먼저 어떤 빵을 어떻게 구울지 구상을 하고 그에 맞는 재료를 준비해서 믹스를 하고, 무엇보다도 ‘발효’라는 과정을 거쳐 먹기 좋고, 소화도 잘 되는 빵을 준비하는 시간은 생활의 리듬을 타는 공간을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발효가 된 빵에 모양을 내고 오븐에 넣어 막 구워낸 슴벙슴벙한 빵을 보고 있으면 맛을 떠나 무엇인가를 만들어 냈다는 뿌듯함에 웃음이 납니다.
생활하기 좋은 집의 조건을 위해서는 건축주도 건축가도 빵처럼 발효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상업용 이스트를 넣자 마다 두세 시간 후에 빵을 만들어 내는 것도 속도면에서는 매력이 있지만 저는 그보다는 천천히 만들어 내는 발효빵에 애정을 느끼는 그런 종류의 건축가다 보니 새로 집을 지으려는 분들에게 항상 충분한 준비와 시간을 제안하게 됩니다. 빵을 두고 제 느긋함을 변명하는 것 같기는 하네요
지금 공사를 시작한 승현이네 집도 설계 기간만 3개월이 넘고, 공사 준비까지 더하면 4개월에 걸친 숙성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기초 공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승현이네 옆에 짓고 있는 황 선생님 댁은 설계 기간이 조금 길었습니다. 설계를 시작해서 햇수로 3년간의 조정기간을 거쳤으니 조금 긴 여정이라고 할만합니다. 빵을 3년간 발효했다면 썩어버렸을 테지만 집은 사람의 마음도 함께 살피는 일이니 3년 정도는 기다릴 수 있더군요. 덕분에 건축주인 황선생 님의 집은 숙성이 잘 되고, 풍미가 느껴지는 집이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생각의 발효가 잘 된 집은 시공을 담당하는 현장 식구들이 먼저 알아차립니다. 마치 반죽을 마치고 저온 숙성 후에 빵을 성형하기 위해 꺼내보면 특유의 풍미가 느껴지는 반죽 덩어리를 손위에 올려놓고 코안 가득히 냄새를 빨아올리는 것 같다고 할까요? 현장 식구들이 먼저 여러 가지 제안을 합니다. 마감재와 지붕의 각도, 현관 앞에 놓일 댓돌의 종류, 창의 역할과 위치까지 시공의 눈으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풍미 있는 빵을 완성해가는 것처럼 말이죠
숙성의 시간을 거쳐 공사가 시작된 두 집의 기초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철근 매기를 마무리하고 거푸집 공사까지 진행이 됩니다. 현장이 잘 돌아가는지는 현장 정리가 된 모습만 보아도 한눈에 알게 됩니다.
철근 매기도 깔끔하고 거푸집 설치도 야무지게 된 것을 보니 몇 개월 후에 이사 올 건축주들의 미소도 보이는 듯하네요.
기초공사를 하면서 빼먹지 말아야 할 것을 살펴보자면 전기, 통신, 상하수 관로가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부분들을 미리 준비하는 일입니다. 자칫 소홀하게 할 일을 해놓지 않으면 콘크리트를 치고 나서 구멍을 내고 땅을 파야 할 번거로움이 일어납니다. 괜한 고생을 할 필요 없이 들뜨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미리 준비할 일들을 꼼꼼히 챙겨야 합니다.
전기 사장님과 설비 사장님이 주말 동안에 먼저 구멍을 내고, 관을 연결해 놓고 나면 월요일에는 콘크리트를 타설 할 준비를 마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