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 최 소장, 이 소장과 함께 성사동 세 가족의 집들이에 초대받았습니다. 괴산 심선생님은 이사한 지 1년 만에 집들이를 했다면 성사동은 4개월 만에 초대를 한 셈입니다. 그동안 주말마다 손님들을 맞이 하느라 고생들 했을 텐데 건축가들까지 챙겨주는 마음 씀씀이가 고맙습니다.
딸아이는 세 집을 돌아다니며 같은 학년 정현, 윤아, 소율이와 수다를 떠느라 아빠 옆에는 올 생각도 없어 보입니다. 건축현장이나 집들이, 답사 여행을 갈 때 저의 짝꿍으로 함께 다니곤 하는데 역시 ‘백 점짜리 부모보다 빵점짜리 친구들이 더 좋다.’는 선배들의 이야기가 맞습니다.
아침에 포비네랑 산보를 마치고 오니 소율이와 딸아이도 깨어 있었습니다. 스머프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는 동안, 딸아이는 제 옆에 앉아 아빠의 커피를 한 모금 맛보고서는 하룻밤 지낸 소율이네 집의 느낌을 들려줍니다.
“아빠 마트 같은 집이야, 봐봐 저기서 내려다볼 수 있고 돌아 내려오고, 가운데 계단이 있잖아. 2층 천정까지도 크게 열려 있고 집이 넓어, 그동안 보아오던 집들과는 정말 다른데, 괜찮아” 아빠를 이어서 건축가를 하겠다는 딸아이의 풍성한 평가에 스머프네 가족 틈에 앉은 제 어깨도 으쓱해집니다. 어제저녁에 집으로 돌아간 최 소장과 이 소장도 같이 들었다면 기뻐했을 텐데요.
스머프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포비가 현관 앞에 있는 화장실 사용후기를 들려줍니다. 벽에 기대어, 한 발은 뒤로 빼고 여유로운 아침햇살 표정으로 모니터링을 해주었습니다.
“처음에 현관에다 화장실을 둔다고 해서 생소했었어요. 더구나 남향이잖아요. 그동안 사용하던 화장실은 북향이고요.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작을 것 같아 걱정도 했는데 작지도 않아요, 환하고 넉넉한 빛이 장소를 크게 만드는 것 같고, 정말 쓰임이 있어요. 손님들도 거실에서 떨어진 이곳 화장실을 편하게 사용해요. 소리와 위치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요. 저만해도 다른 집에 가면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참거든요. 사람들 반응도 무척 좋고, 무엇보다 마당에서 일하다가 바로 들어올 수 있는 곳에 있으니 사용률이 무척 높아요. 왜 여기에 화장실을 두고, 남향에 배치를 했는지 이해가 되었어요” 2층 화장실과는 달리 집에 온 누구든 편히 사용할 수 있도록 한 현관 앞 화장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칭찬을 한 몸에 받는 것 같아 혼자 듣기에는 너무 아까웠습니다. 최 소장과 이 소장에게도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 싶어서 한 마디도 놓치면 안 될 것처럼 꼼꼼히 기억을 해두었습니다.
강의 의뢰를 받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건축 이야기를 나눌 때 종종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가장 편안한 장소가 있다면 이야기해주세요” 이런 질문을 던지면 10명 중 2명 정도는 “저는 화장실이 제일 편해요”라고 답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왜 편하냐고 하면 대부분은 “혼자 있으니까요”라고 합니다. 건축가는 여기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을까요? 화장실을 남쪽에 두고, 빛이 충분히 들어오게 한다면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우리들이 작업하는 공간은 건축주가 압력을 행사해도 화장실을 북향에 놓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낮동안 환하고 따뜻한 남향에 두거나, 빛이 깊이 들어와 장소에 색감을 살리고 늘 뽀송하게 하는 서향 빛, 아침 기운이 밝은 동향에 화장실을 두게 됩니다. 많이 묻고, 들으면 알게 되는 생활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포비는 설거지하는 남편을 볼 수 있는 현관에서 이번에는 다용도실의 위치를 예찬하듯이 이어갑니다.
“현관에서 이어지는 다용도실도 편리해요. 전에 살던 곳은 현관에서 짐을 들고 뺑 돌아서 주방을 거쳐 다용도실까지 갔잖아요. 지금은 현관에서 다용도실로 직접 들어가잖아요. 창고 기능도 있어서 편리해요. 현관에서 다용도실, 주방까지 이어지는 구성은 쓰임이 좋아요. 보세요! 남편이 설거지하는 모습도 볼 수 있고, 생활하는 모습 그 자체예요” 현관에서 들어오면 왼편에 화장실이 있고, 오른쪽에는 다용도실로 이어지는 중간문을 열고 닫을 수 있어 편리하고 쓰임이 있다고 합니다. 주방 뒤편에 두는 다용도실은 맞벌이하는 부부에게는 불편할 수 있습니다. 물건을 들고 현관에서 반대편 주방까지 걸아가고, 저장할 물건을 주방 뒤에 두게 되면 우리 집에 무엇이 있는지 모를 때도 많고, 다용도실에 들어가는 일이 불편해서 주방에 쌓아 두고 사는 일도 흔합니다. 성사동 가족들의 생활 후기는 백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고, 힘이 나게 하더군요.
건축주는 새로운 공간을 통해 삶이 변화되도록 안내받을 ‘권리’가 있고, 건축가는 건축주가 그동안 경험했던 공간과는 다른 쓰임이 있는 생활의 장소를 안내할 ‘의무’가 있다는 표현을 종종 합니다. 포비, 바람개비, 베짱이 세 가족의 집에 만들어진 ‘생활의 길’은 조금 딱딱한 표현이지만 ‘권리와 의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역시 집은 생활을 담아내는 장소가 분명합니다.
“집을 짓는 동안 인연 있는 건축가나 먼저 집을 지어본 경험 있는 친구들이 왜 집을 이런 식으로 설계했냐, 효율성이 떨어진다. 살아봐라 고생이다. 라며 조언을 많이 해주었어요. 그런데 다 지어지고 살림을 시작하고 나서 알았어요. 집은 ‘효율’이 아니고 ‘생활’이라는 것을 말이죠. 이사 온 후로 많은 분들이 찾아와요. 차 마시고 수다 떨고 싶어서 오죠. 그동안 보아오던 집들과는 다르게 새롭고 막힘이 없다고 하네요. 전에 오셨던 건축가분은 그 뒤로 두 번을 더 오셨어요. 재미난 것은 이번에는 별말씀이 없었어요. 그냥 유심히 이 장소, 저 장소들을 살펴만 보셨어요. 제 생각에 아마도 이런 집을 처음 경험하는 일이셨던 것 같아요. 효율이 중요하다고 여긴 당신의 건축과 1:1로 끌어올린 생활하는 장소의 차이점을요. 여긴 우리 가족의 색이 그대로 묻어난 집이에요”
포비는 넉 달 동안 생활하면서 느꼈던 경험들을 정리해주었습니다. 집을 짓고 난 이후의 생활을 들을 수 있으니 득템을 한 것 같다고 할까요? 스머프와 포비네는 처음 만났을 때, 살던 예전 집에서 손수 밥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때 느낀 가족의 색깔을 제대로 풀어냈다는 생각에 제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여름이(반려견) 집은 뒷마당에 두었어요. 이사 오기 전 살던 집 아시잖아요. 여름이가 집 입구에 살아서 모두가 불편해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우리 집은 이사 오면서 두 집이 생긴 것이죠. 여름이네 집과 소 율이네 집! 여름이 집 마당에는 벽돌을 깔았어요. 몇 장 안 들어갈 것 같았는데 보세요. 많이 들어가더라고요.” 집을 구성하는 동안 건축가들이 반려견 여름이의 장소를 고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포비네 집 배치도엔 항상 여름이와 집이 함께 그려져 있었는데, 제 장소를 찾았다니 모두의 집이 된 것 같습니다.
“여기 앉아서 뒷집 할머니도 보고, 하늘에 걸린 구름,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들려주는 소리를 느껴요. 정 소장님이 왜 여기에 책상을 놓고, 책 보고, 차 마시고, 일을 하라고 했는지 알게 되었어요. 오후에 깊게 들어오는 빛도 좋고 나만의 작은 작업실이 만들어졌어요. 빨래대는 난간에 따로 설치해서 만들었어요. 덕분에 책상 옆에 놓은 작은 발코니이지만 차 마시기 좋은 공간이 되었죠”
집을 짓지 전보다 더 화목해진 스머프와 포비를 보고 가족의 화합까지 일구어낸 건축가들이라는 자부심도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생활하는 집은 어떤 곳일까요? 제가 살고 있는 집도 마당이 있고, 고양이 깜선 생과 민트, 가족, 그리고 이웃들이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온실에 커피 하우스를 차립니다.
“오후 4시 커피하우스 오픈합니다. 커피 하러 오세요, 오늘은 페루 커피로 모시겠습니다.” 마을 단톡 방에 올린 답글은 “예스, 씹을 거리는 내가 준비하겠음, 지금 갑니다. 조금 늦어요” 날도 다르고 사연과 장소, 생김새는 다르지만 수다거리가 있어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시간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비법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수다를 떨 이웃들이 있나요? 저는 경기도 고양에 가면 언제든 반갑게 맞이해줄 성사동 세 가 족도 있습니다. 수다거리를 모아 100일 지나가면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