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house

당신의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요? 2019년 11월

by 빵굽는 건축가

새집이라도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면 흔적이 남기 시작합니다. 생활의 흔적이라고 할까요? 해를 더해가면서 집도, 사람도 장소에 자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익숙함이 찾아오면서 편안한 곳이 되고, 목재는 칠이 벗겨지고, 문 손잡이는 한 번 정도 새것으로 교체를 하게 됩니다. 몸을 푹 담고 앉아 있을 만한 1인용 소파도 들여놓고, 겨울을 즐길 온실도 새로 만들고, 비가 많이 오는 날 생긴 물 웅덩이 자리는 그대로 작은 연못이 되도록 놓아둡니다. 웅덩이 자리에는 빗물정원을 만들니다. 새들이 날아오고 동네 고양이들이 물을 먹으러 오는 곳이 됩니다. 물가 주변에 심긴 찔레와 장미는 더운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땅 덕분에 꽃을 많이 피웁니다. 장미와 찔레꽃이 버드나무나, 앵두나무처럼 물을 좋아하는 것을 세월이 알려줍니다. 집은 사람의 손을 탄 흔적이 그대로 남고, 그것은 집의 일부가 되고, 사는 사람의 습관을 그대로 드러내 줍니다.


건축을 의뢰받을 때는 ‘앞으로 살 집’을 의뢰받지만, 종종 라스트 하우스가 되는 분들도 여럿 계십니다.

“선생님 이 집이 마지막 집이 될 것 같은데요, 어떠세요? 다른 곳으로 이사 갈 계획이 없으시겠지요?” 이렇게 묻는 이유는 다른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이 집이 생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집이라는 것을, 가볍게 공유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방과 화장실이 몇 개 필요한 것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기억에 남는 건축주분의 바람을 옮겨보자면, “집 전체에 턱이 없어야 하고, 복도에는 휠체어가 들어갈 수도 있어요, 지팡이를 짚고 화장실에 들어가야 할 수도 있겠고요. 여름을 제외하고는 거실에 앉아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고 싶네요. 마당으로 나갈 때는 쉽게 나가면 좋겠어요. 마당은 앞마당만 있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뒷마당도 있어야겠어요. 어릴 적에도 후원이 있는 집에서 살았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여수 앞바다가 보이는 집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집이 지어지면 이곳에서 지내게 되네요. 어떤 집이 나올지 궁금합니다. 참 빨래는 볕이 잘 드는 마당에서 말리고 싶은데 빨랫줄을 걸 수 있도록 만들어 주세요.”


젊은 부부들이라면 나누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들입니다. 저도 라스트 하우스를 생각합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그럴지, 아니면 다른 곳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게 건축의 세계를 다르게 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일본인 노교수님이 계십니다. 칠순이 넘은 교수님은 자주 ‘라스트 하우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우린 늘 살집만 생각하잖습니까?, 건축가는 ‘마지막 집’에 대한 안내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건축가 자신이 마지막 집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잖아요? 제가 마지막 살집을 일본에 만들어 놓았습니다. 기회가 되면 같이 가보면 좋겠습니다.” 생의 마지막 집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저는 노교수님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서리가 짙게 내리고 기온은 영하로 내려가서, 텃밭에 자라는 보리싹이 하얗게 서리를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파란 싹이 추워 보이기보다는 그 자체로 밝게 느껴집니다.

알고 지내던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톡에서는 장례식에 언제 다녀올지 각 집에서 시간들을 알리고 있습니다. 저도 오늘 점심에 다녀오려고 합니다.

같은 동네에서 살았다고는 해도, 왕래가 많은 어르신은 아니셨습니다. 연세가 많으시긴 했지만 늘 운동을 다니시고, 할머니와 함께 밭을 일구던 어르신입니다. 1년 전에 몸이 안 좋으시다며, 시내로 집을 옮기셨습니다. 어르신이 남긴 흔적들은 고스란히 집에 남아있습니다. 디딤돌이 놓인 마당, 길 옆에 심어 놓은 꽃과 나무들입니다. 봄이면 연분홍 찔레꽃 향이 가득합니다. 제 계절이 오면, 다시 찔레 향이 오를 것입니다. 일 마치고 늦은 밤에 들어올 때 향이 짙게 퍼집니다. 어르신의 마지막 집이 누군가에게는 새집이 되겠지요


프랑스의 건축가 르 꼬르뷔제(Le Corbusier)는 1922년 그가 그린 주택 도면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고 합니다. 땅도 구하기 전에, 그에게는 집의 밑그림이 먼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집이 앉을 대지는 몇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태양이 남쪽에 있을 것, 남쪽에는 호수가 있을 것, 집은 폭 4미터, 길이 16미터의 긴 주택이기 때문에 기다란 대지여야 할 것, 1923년 주머니 속의 주택이 기다리던 땅을 찾아냈습니다. 그곳은 스위스 레만 호수에 면한 땅이었습니다.

이 집에서 그의 아버님이 1년을 사시다 돌아가시고, 어머님은 1960년 백세의 나이로 돌아가시기까지 36년간 이 집에 거주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집’으로 불리기도 하는 곳입니다. 전체 54m²의 작은집은 어머니의 ‘마지막 집’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작은집은 1973년까지 건축가의 형인 알베르 장느 레(Albert Jeanneret)가 생을 마감한 집이기도 합니다. 건축가 자신도 레만 호숫가에 통나무로 지은 작은 오두막에서 1965년 생을 마감했습니다.


우리들의 마지막 장소는 어디가 될지 서리가 내린 하얀 아침에 생각해봅니다.


<오래된 집은 일상의 드라마와 환희를 목격했고 변덕스러운 인테리어의 유행을 감내했으며,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지켜봤다.(아마 사람이 죽는 것도 지켜봤으리라), 이러한 집은 앞으로도 잊기 힘든 온갖 기억과 성장의 순간을 보존해주는 공간으로 존재할 것이다. 에드윈 헤스코트의 집을 철학하다 중에서 >


집을 의뢰받으면 어느 순간 모형을 만들게 됩니다. 벽을 세우고 창을 달고 나무를 심으면서 이 집에서의 생활을 그리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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