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 아빠는 참나무라는 애칭으로 불립니다. 저는 익숙하지 않은 호칭이라 미루 아빠라고 줄곧 부르는데 주변에서는 참나무라고 부릅니다. 별칭을 부르면 금세 수평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지더군요. 두 해 전에 충남 서천의 작은 학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작은 초등학교인데요, 학교 도서관을 새롭게 바꾸고 싶어요.”
충남 서천까지는 직접 운전을 해도 두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이런 일에는 효율, 실리, 비용 같은 단어들이 낄 자리가 없었나 봅니다. 망설임 없이 “네 선생님 다녀가도록 할게요” 라며 강의 날짜를 잡았습니다.
부내초 도서관을 어떻게 할지 아이들, 학부모, 선생님들과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고백하자면 보통의 건축주들과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결이 다른 세상의 언어와 눈높이를 경험하는 시간이 됩니다. 책이나 방송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죠. 그곳만의 분위기라는 것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세 시간 동안의 강의를 마치고 간단한 스케치를 그려보았습니다. 빠듯한 예산을 쪼개 쓰는 것보다 한 가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어 보여, 유선형의 아메바 같은 모양으로 세 개의 더듬이가 달린 테이블을 만들기로 하고 가구를 만들 목수를 선생님들과 수소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참나무를 만났습니다.
고향 태안에서 ‘수작 사계’라는 공방을 운영하는 ‘참나무’는 장소의 분위기를 아는 목수더군요. 더듬이 서가에 몇 가지 기준이 있었는데, 그 원칙에 자기만의 색깔을 더해 질감 있고, 모이고 흩어지는데 자유로운 구성의 아이들을 위한 서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설치된 더듬이 서가는 충남 일대에서 ‘대박’이 났고 그 이후에도 참나무는 아이들을 위해 비슷한 서가를 더 만들었습니다. 부내초에서의 즐거운 협업을 잊지 못해 ‘수작 사계’에 몇 개 작품을 더 의뢰했고, 이번에는 괴산 주원이네 주방을 포함한 가구공사를 요청하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핀란드의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 ‘에로 사리넨(Eero Saarinen)’이나 미국 출신의 부부 디자이너 ‘찰스 임스(Charles & Ray Eames)’ 는 건축과 가구의 세계를 오가는 제가 닮고 싶은 건축가들입니다. 제가 그들처럼 두 세계를 오갈 수 있는 경지까지 갈지는 모르겠습니다. 건축과 가구는 뗄 수 없는 일이니 참나무 같은 가구 장인을 만나는 일만으로도 든든한 후원군이 생긴 셈입니다.
느릅나무 옆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미루 엄마는 주방창을 통해 음식을 내보내고, 저와 아이들은 탁자에 그릇과 음식을 차렸습니다. 두 손에 쟁반을 들고, 현관을 돌아 나오거나, 커다란 창을 연채로 발로 문을 잡고, 팔꿈치로 문을 막는 번거로움이 없더군요. 특별한 장치 없이 기다랗게 작은 주방 창으로 주고받으면 됩니다. 창 높이는 아이들도 받아낼 수 있는 초등학교 4학년 정도의 키높이로 보입니다. 줄자를 들고 치수를 재는 일이 호들갑처럼 보일까 봐 모른척하고 아이들의 키를 어림잡아 보았습니다. 목수는 땅을 밟고 사는 생활의 특징을 고스란히 알고 있었겠지요. 참나무는 모닥불을 기세 좋고 올리고, 숯을 만들어 먹기 좋게 기름을 뺀 고기를 구웠습니다. 이곳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높이와 길이, 절묘한 위치가 미루네 집에 숨어있습니다. 제가 미루네 집을 주관했다면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장소였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제 경험했으니 다른 곳에 꼭 써보려고 합니다.
산보를 마치고 돌아와 아침 볕이 드는 곳에 놓인 목수의 흔들의자에 앉아 잠시 졸았습니다. 눈을 감자 마자 졸았는지 아침 먹자는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그런 저를 보는 부부는 씩 웃고 맙니다. “소장님 흔들의자가 마음에 드시죠, 저희도 그 자리가 좋아요, 거실 앞 온실은 다음번에 오시면 허브차 공방이 될 거예요. 허브 만드는 작업장이 필요하게 되었어요” 미루 엄마가 내려주는 허브차 맛은 이 계절 기침감기에 좋다고 합니다. 연거푸 다섯 잔을 마셔도 질리지 않으니, 괜찮은 차맛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아침을 준비하는 주방은 참나무가 만들고 미루 엄마가 가족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손님을 위해 차를 우리는 곳입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보이지 않던 수납공간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미루네 가구엔 손잡이가 달린 서랍들이 충분하다는 점, 큰 물건이 들어가는 긴 수납은 천(fabric)이 문을 대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하하 역시 생활의 지혜라고 할 수 있더군요. 남들 눈을 의식했다면 문을 달면 깔끔할 텐데 살림을 하는 입장에선 문을 열고 닫는 일보다 커튼을 쓰윽 걷고 닫는 일이 편리했던 것입니다. 참나무는 서랍 앞에서 “서서 내려다보며 수납하는 곳은 손잡이가 달린 서랍 형태가 편리해요, 문이 달리면 허리를 숙이고 뒤로 물러나면서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 안을 들여다보는 불편함이 생기거든요” 살림의 작은 움직임도 인지하고 있는 목수에게 한 수 배웠습니다. 괴산에 짓고 있는 주원이네 집도 서랍은 만들되 가구 문은 최소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더군요.
다음번에는 정원사와 동행을 하려고 합니다. 정원사의 눈으로 보는 목수의 공방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정원사도 저처럼 흔들의자에 앉아 낮잠을 잘 까요? 아마도 궁금한 게 너무 많아 하룻밤 묵기 전에는 의자에 앉아 있지 못할 것 같기는 합니다.
미루 엄마의 허브 밭, 생활에 필요한 가구와 소품 이야기도 나눌 수 있을 겁니다.
예정에 없었지만, 온 김에 두 개의 가구를 주문하고 돌아왔습니다. 하나는 미루네 집에 있는 라면상입니다. 가로 세로 세 뼘이 조금 안 되는 아담한 좌탁인데 라면상으로 쓰고 있답니다. 저도 왠지 욕심이 났습니다. “라면상이라 음” 혼자 독백처럼 되네이고는 “요 탁자를 주문해야겠네요” 참나무는 “그냥 드려도 되는데” 라며 어색해했지만 그런 일도 쌓이면 부담이 되는 것이라 비슷한 형태의 라면상을 요청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서너 명이 앉을 수 있는 원형 탁자를 스케치해서 보여 주었습니다. 지금 사무실에서 쓰고 있는 테이블은 손님맞이 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쓰는데 불편은 없지만 기성 제품과 손으로 만든 테이블을 비교할 수도 있고, 쇼룸처럼 참나무의 작품이 돋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동안은 원형 테이블에 어울릴만한 의자도 찾아보려고 합니다.
일요일까지 있어도 좋으련만 주문한 두 개의 가구를 만드는 과정을 보러 오겠다는 핑계로 아쉬움을 접고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딸아이는 미루와 미루네 학교 친구들과 태안읍내를 오전 내내 돌아다녔습니다. “아빠 이제 서쪽에는 미루네가 있고, 북쪽에는 소율이네, 동쪽엔 선우 선민, 남쪽엔 향기 언니네가 있네” 저도 “그러게, 그게 그렇게 된다. 하하하”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것 같았습니다.
안흥 신진도 섬이 보이는 안흥 카페 입구에 돌고래 나무 조각이 놓여있습니다. 참나무가 조각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이 비슷해서일까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깊이가 있어 편안하고 유익했던 가구 공방 여행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