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마스크

빈집과 생활하는 집

by 빵굽는 건축가

“요새 ‘코로나 19’도 그렇고 해서 일회용을 줄이자는 마음으로 면 마스크 만들었어요. ^^;

내놓긴 부끄러운 솜씨지만 안성으로 보내드릴게요.^^


따님 것도 만들었는데 맞을지 모르겠어요.~

어른용 마스크 안감이 광목이라서 처음 세탁 시 물이 빠질 수 있어요.

참고하셔서 손세탁 후 사용하세요.^^♡”


반가운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몇 해 전 건축 안내를 드리면서 인연을 맺은 비구니 스님께서 손수 만드신 마스크를 보내주셨습니다. 지난해 계신 곳으로 발효빵을 보내드리고, 올해는 제가 좋아하는 커피 원두를 보내드렸는데, 그 마음이 끈으로 이어졌는지 스님께서 손수 광목천을 준비하고 마스크를 만들어 보내주셨네요. 제가 빵을 배우고 있는 모습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난 후 “그 빵 참 맛있겠어요, 기회가 되면 빵맛을 보여주시겠어요?’라며 댓글을 남기셨지만, 초보의 향이 심한 발효가 덜된 신맛과 모양만 있는 빵을 보내드릴 수는 없어서 빵을 전수해주신 선생님께 부탁드려, 여러 종류의 천연발효빵을 선원에서 함께 공부하시는 분들과 맛있게 드시라고 보내드렸었습니다. 인연의 고마움을 빵으로 표현한 셈이죠.


몇 해 전 처음 뵈었을 때 스님께서 직접 만드신 정갈한 음식을 받아 들고, 마음 한편에 감사한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음식을 정성으로 대접받는 기분을 오랜만에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음 뭐랄까요?, 색으로 치자면 연녹색의 밝고 푸른 기운이 감도는 음식이라고 할까요?

바쁘게 한 끼를 해치우듯 먹던 저에게 잠시 쉬어가도 좋다는 메시지 같다고 할까요? 음식에서 ‘마음’을 느낄 수 있음을 경험하도록 이끌어 주신 분이십니다.


스님께서 음식으로 마음을 전하는 것처럼 제가 건축을 통해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곰곰이 살피던 몇 해 전 기억들이 있습니다. 건축가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배움을 얻을 수 있어 좋습니다.


보내주신 마스크를 챙겨 성사동 세 가족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이제 지붕까지 마무리가 다 된 성사동 가족의 집들은 처음 구성한 방향보다도 더 깊고 든든한 장소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현장에서 일하는 건축가들의 두 손을 잡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뭔가가 있기에 그렇겠지요?


현장에서 점심을 먹고 디자이너, 현장소장, 목수님들과 함께 지붕 형태와 공사 중 예상되는 어려움들, 각 집의 특징을 살펴봅니다. 고백하자면 설계에서 찾아내지 못한 곳까지 살피는 현장의 이야기들은 그림이 아니라 1:1 현실입니다. 손맛이 좋고 느낌 있는 집을 만들기로 소문난 정 목수님이 안경 너머로 웃음을 보이며 응원의 이야기를 전해주십니다. “집마다 개성이 있고, 가족들의 생활을 담아내고 있어서 작업이 재미납니다. 즐겁고 유쾌한 집과 작은 동네가 만들어질 것 같아요.”

건축을 통해 ‘마을과 이웃’이라는 플랫폼을 만드는 저로서는 이런 표현들이 좋습니다. 집과 이웃이라는 그릇에 색다른 음식 같은 맛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해가 갈수록 생활하는 장소로서의 색을 더할 수 있음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911 테러로 무너진 뉴욕 WTC(쌍둥이 빌딩)를 재설계한 미국의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건물은 콘크리트와 철, 유리로 지어지나 실제로는 사람들의 가슴과 영혼으로 지어진다.”는 표현처럼 재료를 만지고 다듬는 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마음으로 건물이 지어지는 것임에 동의하게 됩니다.


마음으로 집을 짓는 일은 건축가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통을 이어받을 집주인에게도 역할이 있습니다. 예로 들자면 장소와 공간에 대한 나의 바람은 무엇인지, 새로운 집에서 가족들은 3년, 5년, 10년 후 어떻게 지낼지 생활의 그림을 그려보는 일입니다. 일종의 예습과도 같은 시간입니다.


흔한 표현처럼 “난 전문가가 아니라서 모르겠고 건축가들이 다 알아서 다 해줄 거야”라는 표현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그런 건축가를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럴 확률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정도라면 과한 표현일까요? ‘살집’에 대해서 만큼은 참여형 건축을 추구하는 저로서는 집주인도 건축가의 한 명이니 자신과 가족의 의견을 충분히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집을 향해 가슴을 열고 영혼으로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어떤 곳인가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세상 같아도 실은 그렇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을 믿으면 그 방향으로 향해가는 원리가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만족스럽습니다.


요즘 성사동 식구들은 건축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로도 전화를 합니다. 아마도 건축가들이 좋은가 봅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그냥요 집이 너무 좋아지고 있어서요, 그런데 우리 집 벽색으로 올리브 그린이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이미 마무리된 이야기를 다시 꺼내어 놓는 것을 보니 정말, 그냥 안부 전화를 한 것 같습니다. 제가 현장에 가는 시간은 주로 점심시간이고, 건축주들이 현장에 오는 시간은 퇴근 후이니 현장이라는 오작교를 두고 서로 그리워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코로나 19로 인해 반갑게 인사를 한다고 해도 눈인사가 전부지만 마스크 넘어 함지박만 한 입가의 미소를 볼 수 있습니다.

스님께서 보내주신 마스크는 두고두고 사용하게 될 것 같습니다. 성사동 세 가족의 집도 오랜 세월 살 집이니 ‘마음’이 빠지면 우리들의 가슴과 영혼도 빈 집이 되겠지요. 생활을 가득 담을 집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가는 길에 서로 의견이 다르고 표현이 다를 지라도 우린 모두 한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으니, 의견이 다르다고 힘들어 하기보다는, 곁에 있어 힘이 된다고 전해주고 싶습니다. 성사동 세가족도 오랜 인연이 될 분들이니 두고두고 생활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보너스 같은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2020년 5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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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만들어진 마스크와 마음으로 만들어지는 성사동 세 가족의 집입니다. 닮아 보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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