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짓기와 여행의 같은 점 차이점
5,000년 세월이 증명한 클래식
“매주 수요일에 오시는 것 같아서요? 오늘 오시죠?” 다른 일정을 잡으려다 말고 일주일에 한 번은 현장에 방문하는 황선생 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네 지금 출발하려고 해요, 김 소장은 인천에 가신다고 하네요”
책장과 몇 가지 가구를 만들기 위한 원목을 준비하기 위해 인천에 있는 수입목 제재소로 출발하려던 김 소장은 “저는 황선생 님과는 통화했어요. 맛있게 점심 드세요”
창이 설치되고, 나무 창틀이 끼워지고, 바닥에 보일러 설치를 위한 단열재 마감까지, 더디지 않고 꾸준하게 현장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흰색 벽돌과 붉은 벽돌은 다음 주 초부터 한 장 한 장 조적공의 손에 의해 쌓일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감 공사를 위해 외벽 재료를 고르라고 하면 저는 망설임 없이 벽돌을 꺼내 듭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줄곧 사용된 재료일 뿐만 아니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가장 성실한 재료이면서, 흐름을 이어가되, 유행은 따르지 않는 마감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황 선생님 댁의 벽돌은 흰색입니다. 저로서는 흰색은 처음 써보는 것이라 기대가 됩니다. 벽돌과 벽돌을 이어주는 줄눈(시멘트) 색은 무엇으로 할지 현장 식구들과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디자인이 시작된 초기부터 흰색 벽돌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기는 해도 막상 흰 벽돌이 현장에 들어오니, 설렘과 기대, 선택에 대한 염려도 섞여있습니다.
승현이네는 벽돌은 원조이자 흙 색깔의 기준이 되는 붉은 벽돌을 선택했기 때문에 크게 염려할 것은 없습니다. 망치려야 망칠 수가 없는 선택이라고 해둘까요? 두 동이 보조를 맞추어가며 이제 단단하고 질감 있는 옷을 입을 시간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벽돌을 쌓는 분들과의 인연도 오래되었습니다. 키가 작고 다부진 최 사장님은 늘 스포츠머리를 하고 있습니다. 회색 작업복에 까맣게 탄 얼굴의 최 사장님을 지난해 김포에서 뵙고 8개월 만에 다시 뵙게 됩니다. 함께 일하는 협동조합 건축가들의 성격 탓인지, 고집인지 주택은 유지관리가 쉬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까다로운 벽돌 패턴을 쓰거나, 도전 정신을 발휘하는 디테일을 주택에서는 삼가고 있습니다. 다만 벽돌을 쌓을 때 줄눈의 두께를 10mm 미만으로 얇게 해서 단단한 집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는 기준만 있습니다.
짧은 머리에 짙은 사투리를 쓰는 최 사장님은 사진전에서 볼 수 있는 세월의 흔적 같은 얼굴입니다. 삼 년 전 추운 겨울, 문경 산속에서 4층 높이의 벽돌벽 공사를 할 때도 그랬고, 지난해 김포에서도 그랬고, 늘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최사장님 팀의 벽돌 쌓기는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벽돌 사장님에게 저와 우리 조합의 건축가들은 어떻게 그려질까요?
어제오늘 내리고 있는 비가 추위도 데려오겠지요. 다음 주부터는 쌀쌀해지겠지만 벽돌을 쌓는데 어려움은 없습니다. 공사를 시작한 이후로 석 달 동안 며칠 쉬지도 않고 부지런히 현장을 끌고 온 이유는 얼음이 얼고, 손가락이 얼기 전에 벽돌 공사를 마무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벽돌공사는 물을 사용하는 습식 공사라서 얼음이 어는 온도가 되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동절기에 벽돌 공사를 하게 되면 마치 침낭을 덮듯이 건물 전체를 비닐이나 보양재로 씌우고 건물 내부에는 24시간 열풍기를 돌리는 애를 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사를 뒤로 미루어야 하거나, 공사의 품질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장에 도착한 벽돌이 궁금했는지 점심시간이 지나 도착한 황선생 님은 벽돌이 놓인 곳부터 찾아갑니다. 표준 벽돌은 길이가 190mm, 높이가 57mm, 깊이가 90mm입니다. 25톤 화물차 1대에 14,000장을 실을 수 있고, 한 팔레트에 960장이 포장되어, 지게차를 이용해 현장에 내려놓습니다. 열 팔레트가 넘는 벽돌을 바라보며, 두 주 전에 벽돌 대리점에서 본 것과 같은 색인지, 크기는 맞는지 살펴보면서 “흰색 괜찮겠지요?” 앞뒤 없는 질문을 합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건축가로서 다른 말은 거두고 오직 한마디만 들려줍니다. “걱정 마세요, 벽돌은 5,000년 세월이 증명한 클래식입니다.”
걱정 말라는 이야기를 듣고 황선생 님도 “지붕 색도 괜찮고, 창틀 색도 마음에 드네요, 김 소장님이 줄눈은 지붕 색으로 한다고 하던데 어울리겠어요” 오고 가는 질문과 대답에 머리와 꼬리가 없지만 서로가 잘 알아듣습니다. 확신에 차있는 건축주를 보고 있으니 황선생 님도 건축가가 다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년 2월에 이사 올 준비를 하고 있는 황선생 님의 표정이 밝습니다.
“점심 식사하셔야죠?”
꼼꼼히 깔린 단열재와 믿음직하게 뻗은 봉당 천장의 소나무 장선, 2층 안방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만나는 높은 천장을 갖춘 작은 기도방, 세로로 길게 열린 동쪽 창, 남쪽으로 자리 잡은 화장실의 빛이 드는 큰 채광창까지 유심히 살펴보는 건축주의 모습을 저도 가만히 지켜봅니다. 마치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몸짓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잠시 멈추어 있습니다.
이럴 때는 제가 끼어들어 굳이 설명을 하거나 할 필요는 없습니다. 건축주의 머릿속에서는 벽에는 어떤 그림을 걸지, 침대가 놓일 곳,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낮고 작은 테이블과 등받이가 편안한 나무의자의 위치를 그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 소장님 여기 서쪽 창에서 발코니로 나가잖아요. 침대와 발코니 창 사이는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이미 답을 가지고 묻는 질문을 알면서도 이야기를 받아줍니다.
“황선생 님 좋아하는 책이 놓이는 책장을 여기 눈높이까지 만들고 작은 서재가 되도록 하면 좋겠는데요” 라며 오른손을 들어 저의 은색 안경까지의 높이를 보여주고, 책장의 두께는 왼손과 오른손을 펼쳐 두 뼘 정도의 깊은 책장이 되도록 하고, 책장의 길이는 걸어서 네 발걸음 반 정도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보여 줍니다.
건축가와 건축주는 수화에 가까운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손 스케일이라고 부르고 싶군요. 걸어서 15분 거리에, 팥 옹심이를 만드는 식당이 있습니다. 도로를 따라가도 되지만 오늘 같은 날은 언덕에 자리한 농장을 가로질러가면서 낙엽도 밟고, 바람도 맞을 수 있어 운치가 있습니다. 걸아가고 돌아오는 내내 황선생 님은 책장에 놓을 책들, 이사하면서 놓고 올 것과 가져올 것들을 들려줍니다. 이럴 때는 맞장구를 치며 들어주기만 해도 집주인의 머릿속은 정리가 됩니다.
집을 짓는 일은 우리들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일이 분명합니다. 집을 짓는 동안 설렘을 방해하는 과한 욕심이나 어처구니없는 도전만 하지 않는다면 집 짓는 일은 여행을 떠나는 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여행과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여행지에 아주 눌러앉아 살게 된다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