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그린 스케치
“오는 주말에 괴산에 한 번 다녀올 수 있으세요?”
“그럼요 정원사님과 함께 다녀오는 길인데 어디인들 마다하겠어요”
곁에 온 봄을 느끼는 일요일 아침 7시
진하게 내린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아침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멀지 않은 곳이지만 이른 아침부터 출발하면 수다도 충분히 떨고 점심을 먹고 돌아와도
오후에는 봄맞이 집 정리를 할 수 있다는 나름의 계산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로 향하는 발걸음이면 봄의 향기와는 거리가 멀어지지만 오늘 길은 제가 살고 있는 집에서 우측 아래로 향하는 남쪽입니다. ‘숲의 정원’을 평생의 꿈으로 삼아 매년 새로운 정원을 만들고 있는 ‘Tree house garden’은 몇 해 동안 인사만 나누는 사이에 머물다 지난해에 건축 안내를 하고 난 후 가까운 인연이 되었습니다.
주업은 농사, 인생의 꿈은 ‘숲의 정원’을 만들어가고 있는 건축주 내외분을 보고 있자면 부러움 반, 기대 반이 전부입니다. 거의 모든 이들의 바램일 수도 있는 숲 정원을 매일 일구어가는 두 분은 제게도 본보기가 되는 분들이니 어찌 보면 인생의 선생님 같은 분들이기도 합니다. 다만 건축에 있어 전문가라는 세 글자와 경험을 갖고 있는 제가 작게나마 전체 중에 일부분을 거들고 있는 셈입니다.
지난해에는 18평 크기의 어린이 숲 교육관을 디자인해드리고 공사 중에 서로 의견을 나누며 호흡을 맞추었습니다. 오랜만에 스케치한 손도면을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이 하며, 전체 느낌과 어긋나지 않도록 애를 쓰시던 두 분이 이번에는 쉼터 역할의 카페와 농산물 매장을 만들고 싶어 하십니다.
“지난해처럼 손맛을 좀 내어주시겠어요?”
“손으로 도면을 그리면 일하는 분들이 어색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그래도 쓰임이 된다면 올해도 손 스케치로 작업을 도와드릴게요. 다시 불러 주셔서 감사해요”
함께 동행한 정원사는
“이번 작업은 숲의 정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건축물이고 저도 정원 디자인에 참여하게 되니 같이 배치 작업을 하시면 돼요”
오랜 지인이자 파트너인 정원사와 호흡을 맞출 생각에 지원군을 얻은 것처럼 든든해집니다. 자연과 정원 사이에 자리할 건축물이 정원사의 손길을 거치는 일은 크게 보면 자연에 자연을 더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까요? 건축주 내외분의 표정도 이제 걱정할 것은 없겠다는 표정을 읽을 수 있더군요.
숲에 정원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숲을 주제로 글을 쓰는 생물학자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은 숲을 ‘공동체’로 해석할 수 있는 ‘만다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가 이야기하는 ‘만다라’인 숲에 자주 올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감사한 시간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새로 지을 ‘TEA HOUSE’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고, 숲 길을 조용히 걸었습니다. 한 명의 건축가와 세 명의 정원사가 나란히 숲길을 걸은 셈이 되더군요. 지난해 가을에 심은 나무들, 동해를 입을 것 같아 이번 봄에 전지를 시작한 관목류, 보랏빛 꽃을 피운 알뿌리 화초, 자작과 단풍나무, 개암나무에 얽힌 기억들을 듣고, 전망이 보이는 높은 자리에 이르러 새로 지을 건물의 위치와 방향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고백하자면 이런 일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비록 제가 건축가라고는 해도 땅에 대해서 만큼은 이 숲을 가꾸고 있는 건축주 두 분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귀담아듣고, 꼼꼼히 땅을 밟아보고,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건축을 해석하기 전에 땅을 먼저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여기서는 제가 무엇을 안다는 생각 자체가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비워야 보인다는 말에 공감을 하게 됩니다. 저는 이 과정을 땅의 흐름을 이해하는 시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땅에 그려진 원을 오후 내내 들여다보며 숲의 공동체가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관찰할 것이다.”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의 글처럼 저 역시 관찰이 무엇보다 우선입니다.
건물이 지어질 자리에 서서 주변 나무들과 해가 드는 자리, 언덕이 시작되는 곳을 스케치하며 100여 미터 떨어진 오래된 마을의 교회당을 담아보았습니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교회의 첨탑은 인근에서 이정표인 듯합니다. 주변의 풍경을 담는 일은 카메라도 사용되지만 이럴 때는 손에 익은 만년필과 한 뼘 크기의 무지 노트가 저의 든든한 파트너가 됩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사진을 찍을 때는 전체를 보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그중에 무엇인가를 관찰하고 싶을 때는 스케치를 하게 됩니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묵직하게 들어오는 무명지 굵기의 검은색 철재 만년필로 무지 노트 위에 끄적거리면 저만의 암호 같은 선들이 자리를 잡습니다. 햇살 좋은 봄날 이런 작업은 봄이 주는 보약과 같은 충전의 시간이 됩니다. 그림을 잘 그릴 필요는 전혀 없이 오직 느낌을 관찰하는 시간입니다.
무지 노트에 올라온 그림에 몇 가지 색을 더하고 나니 숲의 정원 내외분이 한마디 보태어 주십니다. “카페 벽에 액자로 걸어 놓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군요, 그것 자체로 이곳의 기억들을 이야기해줄 수 있잖아요.”
부끄럽기는 하지만 두 분이 제안을 주시니 액자를 준비해야겠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나면 미련 없이 사라질 기억이기도 하지만 사람들과 나눌 이야기 ‘거리’로는 이만한 것이 또 어디에 있겠나 싶습니다.
“점심 준비가 되었으니 들어오세요”
직접 농사지은 인삼과 표고버섯에 전복을 담아 삼계탕을 한소뜸 끓여 저와 정원사에게 푸짐하게 담아주십니다. ‘밥해 주는 건축주들’은 그렇게 건축가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막 지은 밥 한 그릇과 민들레 무침, 알싸하게 매운 파김치까지 식탁에 차려지니 제 마음이 약해지는데 왜일까요?
가을이면 숲의 정원에 들어 올 새 건물에서 막 내린 커피를 늦은 계절에 마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웃동네에 살고 있는 정원사와 동행을 하겠지요? 그때도 오늘만큼이나 웃음이 많은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건축가라는 직업은 느끼고, 살피고, 알아차리고, 수다를 떠는 그런 직업인 것 같습니다. 밥해주는 건축주 형님과 형수님 두 분께 즐겁고 유익한 선물을 드려야겠습니다. <2020년 3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