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마음의 집

시골집에서 살던 기억. 2020년 2월

by 빵굽는 건축가

어제는 건축 상담을 오신 선생님 한 분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말씀이 마음에 두고 느낄만하여 글을 남깁니다.


“아빠가 과수를 참 잘 가꾸셨어요, 집에 배나무 세 그루가 있었고, 꽃이 필 때 기억이 나요. 감나무도 있었지요. 저는 그때 기억이 참 좋습니다. 지금도 그 시절 냄새가 나는 것 같거든요. 오빠도 그때 이야기를 많이 하고요. 저도 일 할 수 있는 만큼 세상에 기여했다고 생각해요. 이제 저에게 시간을 주고 싶어요. 저만의 시간이라고 할까요?

조금 더 체력이 있을 때 건강할 때 나에게 시간을 주고 싶어요. 젊은 친구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가고 있어요. 이 과정에서 나의 몸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나의 생각과 마음이 어디로 흐르는지 알 수 있게 되더군요. 같은 일을 해도 저는 두 시간 걸리는 일을 젊은 교사들은 한 시간 안에 마치는 모습을 보게 돼요. 그래서 결심하게 되었지요. ‘나에게 시간을 주자. 나를 위한 시간을 주는 거야’

도시에서의 삶을 살 만큼 살아왔어요. 어린 시절 부모님이 가꾸어 주신 시골집에서 살던 기억을 다시 이어가고 싶어 지네요. 고령화라고 하잖아요. 앞으로 몇십 년을 더 살아야 하니 더 많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고 싶지 않아요. 그동안 적게 쓰고 작은 것에 만족하는 연습을 충분히 해왔고, 그렇게 살고 있어요. 소비를 줄이는 것은 저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에요. 저만의 장소, 저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산책도 하고 책도 읽고, 저를 위해 시간을 쓰는 것이죠. 그리고 작은 지역사회에서 돈과 상관없이 기여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을 거예요. 그런 일들을 하고 싶어요.”


보이차를 마시며, 차분하고 조용한 소리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지내야 할지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네, 네’라는 긍정의 표시와 고개를 끄덕거리고 눈을 맞추는 일은 저의 몫이 되었고요. 앞서 경험한 세상,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새로운 장소를 찾아 떠나는 발걸음의 의미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이 다른지를 살펴보는 시간이 되었다고 할까요?


오랜만에 제가 하는 일의 의미를 건축가로서 생활하는 장소로 안내해야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참구 하게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진지하고 심각한 분위기가 아닌 웃음 낀 입가와 눈매로 화답하는 그런 시간이 되었습니다.


“딸아이가 3살 때까지 경기도 광주의 흙집에서 살았어요. 남편이 먼저 떠난 후 친정으로 딸아이와 함께 들어갔어요. 어머니에게 딸아이의 육아를 부탁하고 직장생활을 해야 했거든요. 그때 아이가 흙집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매일 이야기했어요. 다시 돌아갈 수 없었는데 말이죠. 그때 기억들이 있어요. 흙집에 살 던 기억이 참 좋아요. 딸아이는 이제 성인이 되어 홀로 유학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이제 저에게 주어진 삶이 남아 있네요.


작은집을 짓고 싶어요. 마당에 20평 텃밭이 있으면 충분할 것 같아요. 전에도 그 정도 밭을 지었는데 남더라고요. 여기에 와서도 못 먹고 이웃집에 많이 가져다주겠지요. 그래도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전에 살던 곳에서 남는 채소를 이웃들과 나눌 때 땅에서 그냥 나오는 것이라고들 생각하더군요. 가져다 줄 때는 다듬고 먹을 만한 것을 가져다주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인데요. 이제 다시 손을 쓰고 싶어요. 나이가 더 들기 전에 흙을 만지고 내 시간을 만나고 싶네요.”


건축주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제 삶을 미리 연습하고 ‘생활의 시간’이라는 대본을 앞서 읽어보는 시간이 종종 있습니다. 어제 같은 경우가 그런 시간이었어요. 흔한 표현처럼 사람책이겠지요. 탁자를 사이에 두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듣는 고백 같은 지난 온 기억들과 앞으로 살게 될 삶을 듣는 일이 영화의 한 장면 같을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의 사연이 저에게 전해질 때 장면의 프레임들이 영사기처럼 돌아가는 것 같거든요. 어제도 마음이 사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무려 3시간이나 나눌 수 있었네요. 차 마시고, 산보하고, 따뜻한 순두부를 먹고, 마무리 인사를 하고 보니 반나절이 지나갔습니다.


우리들이 살고 싶은 마음이 사는 집은 어떤 곳일까요?


pimg_7184471112455475.jpg 살짝 온 눈길이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저도 세상에 편안한 존재가 되도록 걸어가야겠습니다. 사람들의 사연을 듣는 건축가라는 직업이 새롭게 다가오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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