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마을이 참 좋다"

검은 고양이 '깜선생'의 마을살이

by 빵굽는 건축가

(2020년 2월 9일에)


설 연휴를 맞았던 우리 동네 식구들의 발걸음은 말 그대로 제각각이었습니다. 커다란 아파트에 살고 있다면 누구네가 어떻게 명절을 보낼지, 어디에 가는지 관심을 가질 만한 인연들도 얼마 없었습니다

반면에 동네는 좀 더 들여다보면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셀 만한 가구수라서 그런지 누구네가 요즘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무슨 근심 걱정이 있는 것은 아닌지, 아이들은 뭘 먹고 사는지까지 알 수 있는 작은 울타리 안에 들어옵니다. 제가 가끔 쓰는 표현으로 ‘한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만큼의 수’라고 할까요?


안경을 치켜올리고 허리를 숙여 미소 띤 눈매로 딸아이를 보며

“부탁 좀 할게, 닭들이랑 대발(강아지)이에게 아침저녁으로 따뜻한 물 좀 줄래? 서울 가서 3일 후에 올 거야”

건너집에 살고 있는 3호 형님네 가족은 4인 가족입니다. 안성에서 의료생활협동조합을 시작한 의사 부부 이기도 하고, 우리 동네 주치의, 저에게는 동네 형님과 누님네 집입니다. 그런 형님 댁이 설 명절 때 서울 여행을 떠나면서 딸아이에게 마당에 있는 닭들과 개에게 아침저녁으로 따뜻한 물을 부탁하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왜 그리도 뭉클한 행복이 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선물을 받은 것도 아닌데 말이죠.


“이모 닭 하고 개한테 주는 물 있잖아요. 물을 어디다 주면 돼요?”

어스름한 저녁시간이 되자 딸아이는 서울 간 이모에게 전화를 걸어 물을 주러 가려는데 어디다 주면 되는지 의견을 나눕니다. 어렸을 때 대발이(큰 강아지)에게 물린 경험이 있어서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딸아이가 물을 주겠다고 약속한 것을 보니 씩씩한 친구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모가 아침에 서울 올라가면서 물 주고 왔으니까 내일하고 모레 아침, 저녁에만 주라고 하네”

3호 집 누님과 대학생 언니하고 수다를 떨러 자주 놀러 가는 딸아이는 다양한 어른들 속에서 자기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어가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엄마 아빠가 알려줄 수 없는 세상의 이야기들을 이웃집과 나누어 가고 있으니 염려할 일도 없이 보이는군요.

옆집 교장선생님 댁은 보름간의 일정으로 스페인으로 향했고, 시내에서 가구 공방을 운영하는 8호 집은 가족 모두 베트남으로 긴 여행을 떠났습니다.


설 명절을 지내고 우리 집 반려묘 깜선생은 귀에 염증이 생겨서 동물병원에 다녀왔습니다. 귀 수술을 해서 그런지 고양이집에서 나오는 모습이 영 신통치 않습니다. 마취가 풀리지 않았는지 갈지자로 걸으면서 계속 ‘야옹’ 거리기만 하더군요. 아마도 깜선생의 야옹 소리는 이런 표현이 아닐까요? “난 정말 동물병원에 가고 싶지 않아요. 거기 가면 낯설고, 병원 냄새도 나고 개들은 왜 그렇게 저를 보고 짖어대는 거죠. 전 아파도 우리 동네에서 사는 게 좋아요. 야옹”


딸아이가 “아빠 마을이 참 좋다.”

깜선생을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담아야 할 고양이 가방이 필요했는데

고양를 두 마리 기르는 앞집 숙이 이모네 집에서 딸아이가 케리어를 빌려오면서 했던 말입니다.

몸무게가 8kg 가까이 되는 깜선생을 쓰다듬으며 딸아이는 다정하게 다독입니다.


“깜선생 귀 치료하러 병원에 갈 거야 그러니까 여기(고양이 케리어)에 들어가” 별다른 저항 없이 케리어에 들어가는 고양이와 대화가 되는 딸아이는 다른 세상을 이해하고 있겠다 싶더군요.

입춘을 전후로 한적한 우리 동네는 책 읽기 좋은 시절이 돌아왔습니다. 요즘 마을 톡에는 여행지 사진, 동네 풍경 중에서도 고양이들의 일상이 자주 올라오고 있습니다.

어디 가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서로서로 안부를 전하고, 여행지 추억이 담긴 사진들도 올리고 있습니다.

고양이 가방을 빌려준 숙이 누나네를 위해 빵을 구웠습니다. 요즘 인기 있는 단팥빵입니다.

추운 아침에 빵을 가져다주고 돌아온 아이가 한마디 덧붙입니다.


“아빠 마을이 참 좋다.”

딸아이의 표현대로 마을살이가 참 고맙고 감사하고 좋습니다.


pimg_7184471112440653.jpg 주말을 맞은 동네 아침 수다모임에 등장한 '알라딘 보틀' 누구네 집 커피일까요? 이번 수다모임에서는 역시 여행 다녀온 분들의 이야기가 꽃을 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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