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드는 차분한 책방

건축여행자를 위한 가이드

by 빵굽는 건축가

(2020년 2월에 세윤이네)


“옥상 테라스가 있는 집을 희망하는 이유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기능으로는 빨래를 말리고 싶은데, 실은 멀리 시야가 확보되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집을 짓는 대화를 나누다 보면 구체적인 장소에 대한 ‘상대의 본심’을 찾아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형태로 보자면 어떤 모양도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생김새가 핵심이 아닌 내용에 중심을 두고 장소를 찾아내는 과정이라고 할까요?. 저는 그런 과정이 집을 의뢰한 분들에게나 건축가들에게 모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믿고 있다는 표현이 어울리겠어요.


2층에서 나갈 수 있는 테라스가 있는 집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테라스의 실제 용도는 무엇인지 몇 번의 이야기를 나누며 찾아낸 ‘진짜 의도’는 멀리 볼 수 있는 트인 시야가 필요했다는 것을 서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럴 때는 저도 꼭 필요한 뭔가를 찾아낸 것 같이 좋습니다. 모양에 속지 않고 우리들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은 보물찾기 같은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묻습니다. “엄마에게 주고 싶은 장소를 선물한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대학생 큰딸은 “천창이 있는 기도실이요. 엄마가 기도드리는 곳이 빛이 환하게 드는 곳이면 좋겠어요. 지금 사는 아파트는 그렇지 못하거든요.” 고등학생 둘째 아들은 “마당에 정원용품을 둘 수 있는 창고를 선물하고 싶어요. 벽 한쪽에 붙은 나무 창고 있잖아요. 모양도 경사지고요. 거기에 엄마의 정원용품들을 가지런하게 둘 수 있으면 해요.”

이번에는 아빠 차례입니다. 20여 년간 함께 살아온 단짝 친구는 “아내에게 드레스룸을 선물하고 싶어요. 옷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방안에 있는 붙박이장은 왠지 어수선하기도 하고 방이 단정해지지 않아서요, 이번에 새집을 짓게 되면 아내의 옷방을 선물하고 싶군요.”


건축가인 저와 함께 ‘집 짓는 여정’을 떠날 준비가 되면 구체적으로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제가 즐겨하는 저만의 방식은 눈에 보이는 형태 이전에 그것을 생각하게 된 이유들을 살펴보고, 집을 짓는 마음을 가족들과 나눌 수 있도록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입니다. 만들어진 집을 살 때는 기성복처럼 내 몸을 맞추면 그만이겠지만 특별한 맞춤복을 지을 때는 가족과 개개인의 고유한 특징이 곳곳에 녹아들도록, 세월이 가면서 가족들만 의 냄새가 날 수 있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할까요?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집을 짓는 과정이 아내와 남편, 부모와 아이들이 집이라는 그릇을 만들어 가는 동안 서로의 마음도 바램도 내어놓고 담아낼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끌어가는 이과정이 잘되어지면 집 짓는 동안 가족들은 ‘행복한 여행’을 함께 할 것이라는 저만의 확신도 한몫을 하기는 합니다. 물론 집을 짓는 일은 저로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집을 안내하는 가이드 일뿐이고 여행지에서 느끼고 체험하고 행복을 찾는 일은 여행자의 몫임이 분명하기에 저는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할 뿐 참견하거나 가르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아들에게는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책 읽을 수 있는 장소를 선물하고 싶어요. 그렇다고 그곳이 방일 필요는 없어요. 2층 복도 끝에 책장을 놓고 편안하고 긴 의자가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거기에 햇볕이 따뜻하게 들어오는 조용 한 장소였으면 해요.”


엄마의 바램을 듣는 동안 아빠와 자녀들, 그리고 저까지도 엄마의 소리에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말은 하지 않았어도 엄마와 아빠는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성향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집을 짓는 과정에서 저는 서로에게 주고 싶은 장소를 선물한다면 어떤 곳을 주고 싶은지를 꼭 묻습니다. 물론 그 선물을 받을 것인지도 꼭 확인합니다. 왜냐고요? 선물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저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때로는 눈시울도 적셔지거든요. 이런 드라마틱한 이야기와 분위기를 디자인 식구들과 시공 식구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도 제 몫입니다. 이쯤 되면 저의 역할도 ‘건축여행 가이드’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여행자들을 안내하는 친절하고 재미난 가이드 아저씨 ^^


거칠어도 이야기를 그림으로 바로바로 옮겨놓은 일은 꼭 필요한 일 같아요.


설계와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세윤이네 집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만나온 아빠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있어서 아빠의 역할도 기대가 되는 집입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아빠는 기록을 하고, 미흡한 것이 있으면 보충 설명을 하고, 다시 기록하고 가족들의 이야기가 충분했는지 살피고, 아내와 아이들의 미소 속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자니 어쩌면 세윤이네 집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또 다른 색이 나오리라는 기대가 슬며시 일어나는군요.

그나저나 아빠는 집이 지어지는 중에 아픈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이번 건축여행 가이드는 세윤이네 아빠일 것 같습니다. 여느 때 보다 저의 역할이 옅어지는 오히려 지켜보는 것으로도 충분한 과정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어제 모임은 맛있게 우려낸 홍차처럼 따뜻해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입춘을 넘겼지만 꽤 추운 요즘 계절에는 홍차의 온기가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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