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남해 '동경작업실'

건축주의 집에서 1박

by 빵굽는 건축가

(2020년 1월 1일에)


즐겨보는 잡지나 인터넷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날 때면 한동안 골똘히 살펴보게 되는 색깔, 가구 배치, 주방창 밖에 보이는 풍경들이 있습니다. 같은 장소에 같은 모양의 건물이 만들어지더라도 누가 그곳에 사는지에 따라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는데, 장소와 모양과 시대적 배경이 다른 건물은 제 눈을 고정시키는 그런 질감 같은 것이 있습니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장소에는 건축가의 의도대로 된 것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그들만의 독특한 생활방식이라던가 취미, 경향 같은 것이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건축주와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속 의도가 있습니다. 될 수 있다면 인연을 조금 더 길게 이어가고 싶은 것일까요? 아니면 인연이 끝나는 것이 겁이 나는 것일까요? 집이 지어지고, 입주를 한 이후에도 건축주와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라는 것이 제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기도 하고 가끔은 스스로 괜찮은 건축가라는 생각도 들게 하는 일종의 장치 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집이 지어지고 난 후 몇 개월 안에 한 번 정도는 건축주의 집에서 1박을 하는 기회를 만듭니다. 종종 있는 일이라서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종이 위에 펼치며 처음 의도한 장소가 생활에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집주인이 우선해서 꿈꾸던 장소들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 때문에도 입주하고 몇 달이 가기 전에 하루는 신세를 지는 편입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불편해하거나 멀리하는 집주인을 만나지는 못했는데, 그래도 불편할 수는 있겠다 싶습니다.


몇 해 전에 모 일간지에 소개되었던 전남 광주의 코하우징은 광주에 내려갈 일이 있어 안부 연락을 하면, 자고 가라는 권유에 못 이기는 척 하루를 묵고 오게 됩니다. 어찌 보면 뻔뻔할 수도 있고, 건축주 입장에서 보면 번거롭고 불편할 만도 한데 흔쾌히 ‘당연히 자고 가야죠’라며 반겨주니 제가 눈치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쓸만한 집을 만들어 준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는 모습을 모니터링하고, 그간 지낸 이야기도 나누면 다른 곳에서 자는 것보다는 도움도 되고 친구 같은 사이가 되어가는 것도 좋습니다.


남해에서 출판 편집일을 하고 있는 ‘동경작업실’도 여러 해에 걸쳐 한 번씩은 찾아가는 민박집 같은 곳입니다. 강진만으로 둘러 쌓여 갯가 냄새와 바람의 감각이 살아나는 특별한 장소라서 그런지 여름에는 가족 휴가를 핑계로 다녀오고, 겨울에는 따뜻한 남쪽에서 자라는 싱싱한 시금치를 먹으러 가자며, 다녀오는 곳이 되었습니다. 최근에 다녀왔을 때는 고양이 여러 마리가 집안에서 동거를 하고 있고, 견공(유기견)들을 위한 집을 손수 짓는 것을 보고 왔습니다. 고양이와 강아지가 몇 마리로 늘어났는지 궁금하네요. 책을 편집하는 일을 하는 건축주는 글을 다듬는 솜씨도 좋지만, 공간의 비례에 대한 감도 꽤 좋은 편이라 집을 짓는 동안에는 누가 건축가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일과 생활을 병행하기에 알맞은 집이 만들어졌습니다.


남해 편집장 부부에게 며칠 전에 연락이 왔습니다. “지붕 위에 참새들이 자유자재로 드나들고 있는데 그 안에서 집 지어도 문제없는 건가요? ㅠㅠ 궁금해서”라는 질문과 동영상으로 안부 인사도 함께 보내주었습니다. 조만간에 내려오라는 신호 같이도 하고 개인적으로 상의할 일도 있어 다녀오기는 해야겠습니다. 남해 편집장 네 집 가까운 곳에는 면사무소에서 운영하는 저렴한 목욕탕이 있습니다. 하루는 여자, 하루는 남자 이렇게 번갈아 가며 사용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목욕탕이죠. 날짜를 잘 맞추어 가면 목욕도 하고 올 수 있겠네요. 내려가면 시금치 좀 사 와야겠습니다. 지금 남해 들판에는 파란 시금치가 지천일 겁니다.


pimg_7184471112403670.jpg 건축주가 보내준 고양이 그림자네요 몇 마리의 고양이중에 누구일까? 골똘히 본 결과 밭에서 주워온 '바테'인것 같습니다.



pimg_7184471112403671.jpg 강진만 뜰을 풍경으로 흡입하는 편집실의 긴 창입니다. 창밖 먼 왼쪽에 교회 지붕이 보이는데 그 교회 지붕 십자가의 불빛이 하늘 별빛과 연결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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