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지으면 10년 늙는다는 말이 사실인가요?"

건축주 바람개비의 마음

by 빵굽는 건축가

제가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오랜 지인도 있고 매년 새롭게 만나는 각별한 인연들도 있습니다. 각별하다는 글자를 강조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지만 집을 짓기 위해 인연의 고리를 연결하는 일만큼 우리들 삶에서 중요한 일도 흔하지 않으니 '각별한 인연'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소장님 늦은 시간인데 전화 괜찮으세요?”

저녁을 먹고 8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성사동 건축주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전화기에 뜨는 발신자 이름을 보는 순간 제 얼굴은 열 가지도 넘는 반응을 보입니다. 부담스러운 경우도 있고 반갑기도 하고, 무엇인가를 풀어야 하고 그 중심에 저의 역할이 있다면 단순하지 않기도 합니다. 해결의 과제 중에는 관계, 돈, 일정, 오해, 변경, 다툼까지 다양한 성격의 일들이 섞여 있으니 과제만큼 표정의 수도 다양해집니다. 제 얼굴이 얇은 냄비처럼 뜨겁고 차가움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해도 가슴에서 울리는 미묘한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몇 해 전입니다. 강원도 원주 산골에서 출판사를 운영하는 선배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짙고 동그란 안경을 쓴 선배는 물끄러미 제 얼굴을 보며

“요즘은 어떤 일을 하고 있어요?”

선배의 물음에 안경속 넘어 장난기 어린 눈짓에 화답하듯이 “여전히 건축일을 하고 있어요. 토지 준비하고 계획을 세우고 디자이너들과 상의하고 건축주와 현장 식구들과 만나면서 지내고 있어요.”

선배는 무슨 할 말을 다 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아침기운에 맞는 잔잔한 음성으로 “음~ ‘욕심을 조율’하는 일을 여전히 하고 있군?”


‘욕심을 조율’한다는 선배의 한마디에 탁하니 뭐가 잡히는 듯했습니다. 저는 그 때까지 건축가의 역할을 두고 사람들간의 '욕심'을 조율한다고 생각지 않았는데,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이해관계를 풀어가는 과정이 선배의 동그란 눈에는 ‘욕심’으로 비추인 것입니다. 그 이후로 제가 하는 일은 건축업 중에 '욕심'을 조율하는 일에 특화된 분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성사동 바람개비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집 짓는 일이 이렇게 마음을 졸이며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오랜동안 인연을 맺어온 시공 소장이 집을 지어주는 일이라 돈만 준비하면 되고, 쉬울 줄 알았는데 양파껍질 같은 오해만 켜켜이 늘어가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서 전화했어요. 집짓는 일은 생각할 것도 많고 이해할 것도 많네요. 감당할 수 있는 공사비 수준을 넘어가면 안 되는데 돈 때문에 겁도 나요. 땅을 사는데 3억을 대출받고, 집을 짓는데 마련한 3억까지 6억이에요. 여기서 더 대출을 받아야 한다면 생각하기도 싫어요. 그리고 현장소장은 왜 그렇게 심술을 부리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현장에 오라고 해서 퇴근 하자마자 피곤한 몸으로 갔더니 심술을 내는 거예요. 왜 자주 안 오냐고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죠?”


전화기로 들려오는 바람개비의 목소리에 한숨이 열번은 더 묻어나고, 돈을 마련하고 시공 소장과 의견을 맞추는 과정, 집주인의 물리적, 심정적 어려움이 한꺼번에 느껴지더군요. 이쯤 되면 성사동 현장의 분위기에서 무언가를 읽어 내야만하는 역할이 필요해집니다. 집 짓는 과정은 지나치게 직접적인 일이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뭐라고 한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다양한 감정이 섞여 있습니다. 아무튼 제 역할은 답답한 건축주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단순함부터 , 상대에게 생길 수 있는 오해의 여지를 풀어주는 역할까지 부여받은 셈입니다.


“자금 부담이 크지요? 5개월 후, 입주할 때까지 몇 번 정도 어려움이 있을 거예요. 먼저 현장 분위기를 전하자면 겨울 공사라 공사의 속도를 낼 수 있을 때 밀고 가야 해요. 앞으로 2주간의 일정이 몇 달을 좌우할 거예요. 늦은 계절에 공사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날씨가 포근해서 계획보다 순조롭게 공사가 진행되었어요. 이대로 다음 공사를 부지런히 끌어내면, 봄 공사에 여유가 생길 가능성이 있어요. 현장소장이 일정을 점검하고 애를 쓰다 보니 신경이 곤두서서 그런 면도 있어요. 좁은 토지에 세 채의 집이 올리느라 자재 정리도 만만치 않고, 비 온 뒤 영하로 내려간 날씨에 공사관리도 신경쓸일이 많아요. 심술부리는 현장 소장 마음을 이해해 주세요. 이 일정대로 가면 현장 소장도 예전처럼 평온한 마음으로 돌아올 겁니다.

더구나 공동육아부터 시작해서 10년 넘게 인연들이잖아요. 소장이나 건축주분들 모두가 의심할 것 없이 서로를 신뢰하고 지원하는 위치에서 집이 지어지고 있어요. 자잘한 소리로 불편하게 하더라도 추운데 수고한다고 하면서 맛있는 거 사주세요. 더 한 일은 없을 것이니 염려 마세요.

공사비 걱정도 많이 되시죠. 집이 작든 크든 모든 건축주가 경험하는 과정이니 한쪽으로 치우치는 결정만 하지 않으면 비용이 상승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다만 큰 돈을 쓰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씀씀이가 헤퍼지면서 몇 백만 원 정도는 가볍게 보이는데, 몇 번만 유혹을 뿌리치면 됩니다. 도면대로 해도 부족하지 않아요. 현장 소장도 ‘바람개비(건축주의 별칭)네와 스머프네, 베짱이 세 가족의 생활에 맞는 자재를 준비하고 있어요. 세 집의 층별 구성도 좋고 가족 구성원에 어울리는 설계가 되었으니 재료는 평범하게 사용해도 자기들 집만의 장소가 만들어질 겁니다.”


집을 짓는 중에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많은 훈수가 들어옵니다. 그럴 때는 듣는 연습만 하고, 실행에 옮기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설계가 꼼꼼하고, 현장 식구들이 성실하다면 탈 날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 뒷집 할머니, 앞집 아저씨, 동네 선무당같은 조언은 듣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집좀 지어본 분들이 많습니다. 대부분은 집지어 살아보니 이런게 문제다라고 하는 분들일 수도 있고요. 잘 된 사례보다 실패담이 많습니다. 실패담도 많이 들어야 성공하지 않냐고 하는데 맞아요. 그 말도 맞는 말입니다. 그속에서 성공한 분들의 살림이야기도 들어보세요. 그분들은 아마도 자기 욕구대로 따라가지 않고, 작은집이라고 해도 야무지게 짓고 거기에 만족할 줄 아는 선배들일 것입니다.




pimg_7184471112414226.jpg 사진은 성사동 3 가족이 빠른 여름에 입주할 집의 모형입니다.


도시근교에서 함께 집을 짓는 일은 이웃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고 이웃으로 살아보기 전에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집 짓는 일을 멈추지 않고, 오랜 기간 어려움을 같이 해결해 온 것처럼 몇개월 더 가면 집은 지어집니다. 그 과정을 어떤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 즐거움이 오기도 하고 불편함으로 남기도 합니다. 남들이 그 좁고 못생긴 땅에 어떻게 세 집이 들어가냐고 했어도 성사동 가족들의 집은 다 짓고 나면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집이 될 것입니다. 이웃이 있고, 옹기종기 모여 정원을 가꾸고 아이들이 뛰어놀 장소이기 때문이겠지요. 세 집이 함께 집을 짓는 성사동 가족은 오랫동안 건축가들과 인연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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