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모자와 지붕

남해 영지리 녹색지붕

by 빵굽는 건축가

높이의 기준이 되는 땅을 고른 후 손으로 철근을 구부리고, 자르고, 가로와 세로 이중 격자로 철근을 놓아 기초와 바닥의 뼈대를 만들면, 15톤 트럭에 장착된 레미콘 배합기가 도착합니다. 레미콘차는 원형으로 비스듬하게 통을 돌려 콘크리트를 부으면 높이, 넓이, 위치를 알 수 있는 바닥이 완성됩니다. 그때부터 칸을 나누는 벽을 세울 수 있습니다.

벽은 세운다는 표현이 어울립니다. 건축을 한다는 의미는 세우고, 위로 올라간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지하를 향해 내려가기도 하지만 생명에 필요한 에너지를 해에게서 얻는 푸른 식물들처럼 위를 보며 올라가게 됩니다.

함께 짓는 이곳 현장에 지붕 자재가 들어오고 마감재 설치가 시작되는군요. 건축주들과 지붕, 창과 문틀의 색을 샘플에서 선택하고, 공장에 발주를 넣은 지 이주일만에 현장에 자재가 들어옵니다. 제가 좋아하는 지붕 색은 녹색입니다. 좀 더 정확히는 올리브 그린 계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축을 시작한 초년생 시절에 처음 접한 건축물이 성당의 신축과 오래된 성당의 리모델링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때 푸르게 녹이 슨 청록색을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세월의 흔적, 동판을 하나씩 접고, 망치질하고, 이은 성당의 지붕을 보면서, 지붕 쟁이들의 손을 떠올렸습니다. 구리는 붉은 광택을 갖고 있지만 산화되면서 청록색을 향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봄날 새싹이 돋고 여름에 가까워질수록 짙은 푸름으로 변하는 나무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구리는 일반 금속 지붕의 3배 가까운 비용이 듭니다. 지붕재로 구리판을 쓸 때는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때문에 대안으로 아연도금을 하고 도료를 입힌 칼라강판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색도 다양하고 공사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지붕 색을 선택하라면 종종 녹색지붕을 고릅니다. 지금까지 녹색 지붕을 선택한 건축주들은 없습니다. 언젠가는 저와 합이 맞는 건축주가 녹색지붕을 선택하겠지요?

지붕공사는 심사장님 팀이 들어오십니다. 어떤 형태의 지붕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생각지 못한 부분의 디테일까지 야무지게 해결하시니 우리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 없습니다. 지난여름 괴산에서 숲 카페의 경사각이 큰 두동의 지붕을 동판으로 마감하고, 이번 가을 다시 만나니 반갑습니다. 높은 지붕에 올라 지붕면을 마감하는 작업자들의 사진을 많이 찍는 편입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나란히 서서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아래로 향한 채 하루 종일 같은 자세로 일하는 지붕팀의 모습에서 지붕공사는 이래야 한다는 교본을 읽는 듯합니다.

지붕의 형태는 머리 모양처럼 유행을 따라가기도 합니다. 그래도 집만큼은 형태보다는 기능에 충실하도록 비와 바람, 햇볕의 노출에 안전한 모양과 재료를 고집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택의 경우는 경사진 박공의 A자 형태를 기준으로 모임지붕, 우진각, 편지붕을 주로 사용합니다. 주택은 생활하는 장소이고, 여러 세대가 살아야 할 곳이니 비와 바람, 눈에도 안전한 경사지붕을 선호합니다. 이런 우리들을 보수적이라고 해도 입장을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돌출 이음(비가 들어가지 않도록 이음매를 겹치고 접어 만든 형태)으로 길게 접어 공사하는 지붕을 보면서 색에 대한 미련이 남았는지 현장소장에게 “녹색 지붕은 언제 해보려나?” 소장은 저의 이런 모습이 재미난지 웃기만 합니다.

뚜렷한 계절의 변화와 장마, 한파가 있는 우리나라에서 지붕은 손이 많이 가는 작업입니다. 여름날과 한겨울에 더위와 추위를 피하기 위해 용도에 맞는 모자를 쓰는 것과 비슷한 이치가 지붕에도 있습니다. 집 전체에서 30% 이상의 열손실이 발생하는 부위가 지붕입니다. 언듯 보기엔 지붕틀을 세우고, 마감재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사를 시작하면 양파 껍질처럼 여러 겹을 구성하게 됩니다. 지붕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가며 살펴보면, 지붕마감재, 방수재, 지붕면(바탕), 단열재, 내부 바탕, 실내 마감(도배, 나무, 페인트)까지 여섯 개 이상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며칠 지내는 텐트와는 확실히 다른 구성입니다.

몇 해전 바닷가에 면해 지은 출판사 ‘동경작업실’ 지붕을 두고 저는 녹색이나 푸른색을 제안했고 함께 일하는 김 소장은 노란색이나 푸른색을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었습니다. 동그란 안경을 쓰고,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른 건축주인 편집장은 너무 튀는 색이라며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던 얼굴이 생각납니다. 우리들이 색에 집착하는 것으로도 보일 텐데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동경작업실의 디자인은 집이 지어진 남해 영지리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에서 영감을 얻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붕 색깔도 동네와 비슷하게 쓰고 싶었는데, 건축주는 평범하게 하고 싶다며 옅은 회색 지붕을 선택하더군요. 그 동네에서 회색 지붕은 모던해서 제일 튀는 색인데도 말입니다. 물론 지금 동경작업실의 모습은 저나 김 소장, 이 소장 모두가 만족하는 단정한 건물입니다. 지난 8월엔 여행 삼아 이틀을 동경작업실에서 지내며 그린 그린 한 허브 정원까지 즐기다 돌아왔습니다. 여전히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녹색, 푸른색, 빨강, 노란색이 어울리지 않았을까라는 미련은 남아있습니다.

검은색에 가까운 지붕과 댓구를 이루는 옅은 회색 지붕도 잘 어울립니다. 현장은 석양의 붉은빛을 받으며 지어지고 있습니다. 건축에 정답은 없지만 기본만 흔들리지 않는다면 계절과 그 시절의 분위기에 따라 선택의 즐거움도 누릴 수 있습니다. 건추주들도 집 짓는 과정을 즐기고 있어, 동행하는 저도 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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