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개비의 하소연
(2020년 1월 13일)
집을 짓기 시작하면 10년은 늙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10년을 늙는다는 표현을 돌려서 제 나름대로 해보자면 “늘어나는 욕심과 늙는 세월은 비례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미리 겁을 먹는 분들도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제가 추측하자면 성사동 세 가족은 3개월 정도는 확실히 늙고, 살면서 3년은 더 젊어질 것이니 남는 장사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 칸짜리 작은 집을 지으며 건축의 세계를 탐구하듯이 글을 써 내려간 ‘마이클 폴란’의 『주말 집짓기』에 나오는 대목을 나누면 집 짓는 걱정이 웃음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일이 잘 풀릴 때면 아내와 나는 찰리(시공 소장)에게 연신 감사를 표하고 심지어 존경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다 쓰러져 가던 작은 오두막이 번듯한 집으로 탈바꿈했고, 크기며 구조도 딱 우리가 원하던 대로였다. 하지만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나는 혹시 이놈이 마냥 자기만의 이상에 빠져서 다른 사람들은 죄다 파멸로 몰아넣는 ‘건축가의 탈을 쓴 아합(Ahab. 성경에 등장하는 부패한 폭군 왕)’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지난 목요일 아침에 현장에 도착한 저에게 시공 소장도 심정을 이야기해주더군요.
“소장님 저 정말 책 한 권 쓰고 싶습니다. 절친한 지인의 집을 짓는 일이 이렇게 마음을 졸이는 일인지 몰랐습니다. 저를 믿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공사비 요청을 할 때는 눈치가 보일 때가 있다니까요. 정말이지 망설여질 때가 많아요. 돈도 절약해야 하고 살면서 잔소리도 듣지 않으려고 해서 그런지 갈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입이 타네요.”
잘 못하는 술이지만 편안하게 한 잔 따라주며 속이야기를 나누며 지내온 세월이 있어서 그럴까요? 현장소장의 몇 마디 말속에서 들려오는 그 사람만의 진솔함이 따뜻하게 묻어나옵니다. 이럴 때는 잘 들어주고 처지와 놓인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공사도 공사지만 돈은 아끼면서 공사의 품질은 높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쉬지 않고 잘 해왔잖아요. 그 많던 주변 민원도 다독이면서 오느라 정말 수고 많았어요. 천천히 갑시다. 날씨가 추워지니 현장 관리 조금 더 하고, 안전모 쓰는 것 잊지 말고요. 다치는 작업자 없도록 합시다.”라는 말로 건축주이자 지인들의 공사까지 하느라 마음고생하는 허소장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돌아왔습니다.
늦은 시간 통화를 마칠 때가 되니 바람개비의 마음이 풀린, 웃음 진 목소리로
“참! 소장님 우리 아이들이 협동조합 소장님들은 이제 안 오시냐고 하네요. 정이 들었는지 보고 싶다고 언제 오냐고 해요. 조만간에 맛있는 저녁 모임 같이 하도록 해요.”
지금 바람개비와 스머프에게는 현장소장이 ‘Ahab’ 같은 폭군처럼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실은 허소장도 바람개비와 스머프가 최선을 다하는 자기 마음도 몰라주는 ‘건축주의 탈을 쓴 Ahab’이라고 느낄 것이고요. 그렇지만 조금 더 지나면 모두가 온화한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볼 것이니 걱정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런 묘미가 있는 것이 건축이기도 합니다.
소한(小寒)을 맞이하고도 비를 뿌리던 겨울이 드디어 쌀쌀한 추위를 데려왔습니다. 추위가 반갑기도 하지만 속도를 더 내고 싶은 현장 식구들을 생각할 때면 염려되는 마음이 반은 됩니다. 딸아이는 “아빠 이번 겨울에 눈은 안 오려나 봐” 크리스마스 선물로 딸아이가 갖고 싶어 하던 겨울 털부츠를 선물했는데 언제 신을지 모르겠다며 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잿빛 하늘에서는 살짝살짝 비가 내리기도 하고 눈발이 날리기도 하네요. 두꺼운 외투를 입었다가 벗어도, 오래 사용해서 실올이 많이 풀린 스카프 덕분에 몸은 따뜻합니다. 집 지으면 10년 늙는다는 속담은 사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욕심을 내는 만큼 늙는 이치가 있으니 저도 제 역할에 욕심을 내지 말아야겠습니다.
제가 욕심을 내는 만큼 건축주와 디자이너, 시공 소장도 자기 욕심에 제 욕심까지 더해서 더 늙을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딸아이가 부츠를 신고 눈길을 다닐 수 있도록 눈발 날리고, 엄청 추운 날도 찾아오면 좋겠습니다. 겨울이니 이것은 욕심이 아니겠지요?
작은 땅에 세 가족의 집을 짓는 일은 고단한 일입니다. 주변에 민원도 작지 않고, 대지의 경계를 나누는 땅의 경계선도 일제시대 때 만들어진 지적도입니다. 이웃집의 벽이 내 집 땅에 들어와 있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공사차량이 들어오고, 공사현장의 망치질 소리가 들리면 민원도 작지 않습니다. '건축가의 탈을 쓴 허소장'은 주변 이웃들에게 매일 "깨끗하고 조용하게 하겠습니다. 불편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라며 허리를 90도 가까이 숙이며 인사를 드리고도 부족한지 한숨과 주름이 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