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오전 10시 교회'

내가 사는 동네를 걸으며

by 빵굽는 건축가

(2019년 12월 5일에)


“새벽에 눈이 온다고 하니 눈치우러 나오세요”라고 마을 톡에 글이 올라왔습니다. 시내 온도가 영하 3도, 우리 동네는 영하 5도, 온도 차이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름날에도 시내와 3도 정도 차이가 있으니, 일교차가 심한 동네라고 할 수도 있고 공기가 좋아서 그렇다고 말하기도 하고 근처에 호수가 있어서 그럴 거라는 해석도 있어요.


시내에서 동네로 들어오는 길엔, 눈이 오면 긴장을 하고 넘어야 하는 고개가 있고 고개를 넘어서면 색다른 풍경을 보게 됩니다. 오른편으로는 반짝이는 물빛의 윤슬이 가득한 호수가 이어지고 남향의 경사지에는 몇 채의 집과 음식점, 카페가 두어 곳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 표고버섯 종균을 심어주는 이 지역 출신 강선생님 이야기로는 “예전만 해도 흙길에 차도 안 다니는 곳이라 5일장에 가려면 아침 일찍 출발해서 밤이 되어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동네”였다고 하니 말만 변두리는 아닌 곳입니다.

눈이 올 때 제설작업이 제때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미끄러지기 쉬운 곳입니다. 한겨울 온도 차이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매일 운전을 하는 처지에서는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겨울이면 코너길에서 미끄러진 차를 가끔 볼 수 있는데, 호수의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아래 논에 물을 대기 위해 1960년대에 만들었을 거라는 호수 주변에는 몇 해전부터 카페들이 하나씩 문을 열고 있습니다. 2년 사이에 3곳이 새로 생겨났고, 앞으로도 카페와 음식점들이 더 생겨나겠지요.

청록파로 알려진 박두진 시인의 집필실이 있던 곳 가까이에는 ‘사랑방’이라는 청국장 집이 있고, 주변으로는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풍수를 보는 허선생님 해석으로는 "명당에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랍니다. 그 이후로는 손님들을 모시고 자주 가는 식당 되었습니다. 햇살이 잘 들고, 중정이 있는 옛날 집으로, 건넌방에 해당하던 곳을 음식점으로 하고, 예전 안채는 주인 내외분이 살림집으로 사용하는 곳입니다. 우리 부부는 시내에 있는 ‘성신 청국장’을 즐겨가는데, 딸아이는 이 집 청국장을 첫째로 꼽습니다.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더 들어가면 전쟁 시절에도 피해를 입지 않았을 정도로 깊은 골짜기라는 동막골이 있고, 진천으로 넘어 다니는 ‘조령’ 고개가 있습니다. 조령에서 발원한 냇가와 동막골에서 내려오는 작은 천이 합쳐져 큰 냇가를 이루고 호수까지 이어집니다. 우리 동네 앞까지 조령천이 흐르고, 여기서 동막골로 건너가는 15미터 길이의 오래된 콘크리트 다리가 있습니다.

다리 너머에 삼거리가 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건소가 있던 자리로 더 오래전에는 그곳이 주막 자리라고 합니다. 지금은 주막 대신 ‘순돌 상회’라고 이 동네에 유일하게 있는 옛날 말로 하면 점방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호수 입구에 편의점이 생기면서 순돌 상회는 문을 닫고 살림집만 남아 있습니다. 삼거리에서 간목마을 방향으로는 주춧돌과 기와 조각이 나오는 절터가 있고, 제주도에서도 물을 뜨러 왔다는 옻샘이 있습니다. 이야기로만 전해 지지만 산과 우물, 나무에도 제사를 지내고, 산신제와 용왕제도 있었다고 하네요. 조령 쪽으로 더 올라가면 석암 마을회관 옆에 수백 년 되었다는 박달나무가 서있고, 일제 때 총의 개머리판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느티나무를 베어 갔다는 이야기도 어른들에게 전해 들을 수 있는 동네입니다. 1895년 을미년 단발령이 내려졌을 때는 의병운동이 일어났을 정도록 규모가 있던 동네라는 구체적인 증거들이겠지요.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주막 삼거리를 지나서 동막골 방향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 가는 길에 논이 있고, 중간에 지붕이 초록이고 빨간 벽돌로 지어진 조금 큰 시골교회가 있습니다. 처음 이사 와서 떡을 들고 인사를 나눈 후로는 늘 지나가기만 하는 곳이 되었지만 그 자리에 교회가 있어서 시골 풍경이 심심하지 않은 길입니다. 매주 일요일 아침 10시면 교회 종소리가 울려서 ‘일요일 아침의 오전 10시 교회’라고 제가 이름을 붙인 벽돌집 교회입니다.


동막골에서 내려오는 시냇물을 기준으로 기찻길 옆 집들처럼 남쪽 볕을 향해 집들이 길게 한 줄로 이어져 있습니다. 우리 동네 10호 이웃은 집을 짓는 동안 학교 옆 마을회관 2층에서, 보증금 없는 월세살이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집들이 때 찾아간 기억이 있습니다.

길가에 까지 시골 살림이 나온 집들은 문간채를 지나 마당에 들어서면 사랑채, 본채가 보이고 소가 밭을 갈던 시절까지는 외양간이었을 곳이 나무 창고, 농기구가 놓인 창고로 쓰이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산 안쪽으로 도예, 천연염색, 화가, 작가, 조각하는 예술인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어린이가 다니는 시골의 작은 분교가 폐교가 되지 않고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다고 하니 고마운 이웃들입니다.


모산 버스표.jpeg 우리동네 버스표 하루에 11번 오는 버스. 모른척 하고 살래야 살 수 없는 묘미가 버스표에 있습니다. 시간표 맞추어 타면 동네에 누가 사는지 다 알게 되는 동네 시간표입니다.


모두가 도시로 올라가던 시절에 도시의 삶을 의도적으로 멀리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한 사람들이 인근에 많습니다. 저만해도 서울에서 건축일을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지명도에 있어서 도움이 되기는 해도, 조금 느린 삶을 위해, 지역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은 없지만 이런 저를 두고 주변에서는 호흡이 느리다고 눈총을 주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365일 두발로 원 없이 논길과 호수 주변을 걷는 자유가 있고, 두 바퀴 자전거로 중심을 잡고 갈 수 있는 곳까지 돌아볼 수 있는 시골살이는 건축가에게도 명분 있는 생활이라고 하고 싶네요. 이유가 있을 만해서 변하고 사라지기는 하지만 오래된 집들과 나무, 이곳의 기억들은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을 풍성하게 합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듣고 싶어 지네요. 눈길 조심들 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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