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우렁각시
(2020년 2월 5일)
“내일 아침 눈 청소 울력은 6시 30분에 시작합니다.”
마을 톡에 공지가 떴습니다. 지난주 일요일만 해도 “눈이 오지 않은 채로 이번 겨울은 끝인가 봐?”라고 이야기하던 신임 회장님의 웃음기 어린 눈매가 밤늦은 시간에 마을 톡으로 왔습니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인 신임 회장님은 목소리도, 발걸음도 씩씩합니다. 예전에 한 번 걸어가는 발걸음을 흉내 내어 보기도 했습니다. 평소에 ‘상자 누나’라고 부르는 신임 회장님의 발걸음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승무원의 발걸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반듯한 분이세요.
지난밤에는 눈이 제법 올 것 같았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2센티 정도의 눈이 왔습니다. 요 정도면 딱 생색을 낼 만큼만 온 것 같아 반가운 눈입니다.
동네 아이들은 눈이 온다고 하면 눈썰매, 눈사람을 생각하지만. 동네 어른들은 눈 청소하는 일과 동일한 단어로 연상을 합니다. 눈이 얼마나 좋은데 청소로 생각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산골동네에서 시내로 출근하는 어른들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합니다. 이른 아침에 눈을 치우지 않으면 오늘처럼 추운 영하의 날씨에는 살얼음이 얼기 때문에 부지런함을 떨어야 두통거리가 사라진 것처럼 몸도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요즘 세상에 집 앞 눈을 치우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들 하겠지만 우리 동네는 집 앞의 눈도 치워야 하고 마을 길과 주차장의 눈도 치워야 합니다.
마을살이를 하다 보면, 함께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겨울 눈 치우기입니다. 눈이 온다고 하면 아이들도 어른들도, 동네 개들도 신이 나지만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눈이 올 때는 어른들의 한숨은 눈 쌓인 소나무의 휘어진 가지 무게만큼이나 큽니다. “휴 눈이 많이도 왔다.”
눈 쌓인 소나무 이야기가 나와서 말 입니다만 몇 해 전에 제가 타던 차가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진 소나무 가지가 차를 덮쳤습니다. 다행히 차에 아무도 타고 있지는 않아 놀라거나 다치지는 않았지만 제차의 뒷유리가 커다란 거미줄이 그어진 것처럼 금이 가고 유리가루가 차 안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때 생각을 하면 하늘이 돕기도 했고, 다행히 차에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아 다치는 일은 없었지만 그 일 이후로는 겨울에 나무 아래 주차하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차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스웨덴에서 20년 전에 생산한 ‘사브’라는 오픈카를 타고 다니던 저는 그해 겨울 내내 뒷유리가 더 깨지지 않도록 테이프로 붙이고 운전을 해야만 했습니다. 단종된 차량이고, 외국에서 뒷유리를 주문한 상태라 한 달 가까이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건축과 노교수님이 타시던 오픈카를 제가 물려받아 타고 다니던 때라 매번 수리를 해가며 타고 다녔는데, 건축분야의 스승이자, 선배님에게 물려받은 차라 제가 꽤나 아끼던 기억이 있습니다.
뒷유리를 수리하고 나서도 두 번의 겨울을 더 지내고, 오픈카는 현장소장에게 보냈습니다. “군대에서 장갑차 부대에 있었기 때문에 손수 차를 수리하고 다닐 수 있다”라고 자기가 꼭 차를 타야겠다며 눈치를 주던 시공 소장입니다. 저에게 잘 어울리는 차라고 아내가 이야기해주던 '사브'였는데 눈이 오니 더 생각나는 아침입니다.
오늘 아침 눈은 얼마 오지 않아 부담은 없고, 제가 생색을 톡톡히 낼 수 있는 아침이 되었습니다. 6시 30분에 정확히 집 앞에 나와 마을을 바라보니 옆 집 형님댁만 불이 켜있고 아무도 일어난 흔적이 보이 지를 않았습니다. 이럴 때는 두 가지 생각이 같이 일어납니다.
“아싸, 생색 좀 내야지, 제일 먼저 일어났으니 들어오는 입구를 먼저 청소하고 있으면 동네 사람들이 날 보며, 역시 부지런해라며 엄지 척을 할 거야 ^^”
또 한 가지 생각은 “사람들이 나오기 전에 내가 일을 조금 더 하겠네” 라며, 연이어 일어나는 생각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납니다.
마을회관 창고에 가서 눈삽을 몇 개 꺼내 뒤에 올 동네 형님들이 들고 올 수 있도록 가지런히 놓아두고 저도 눈삽 하나를 들고 주차장 입구로 향합니다.
눈 덮인 길을 뽀드득 소리를 내며 걷고 있으면 첫길에 찍히는 발자국 소리가 참 좋습니다. 슥슥슥슥 거리면 눈을 치우고 있자니 옆집 형수가 뒤이어 따라왔습니다. “일찍 얼어났구나, 눈이 얼마 오지 않아 다행이다.”, “그러게요, 아이들이 조금 실망할 것 같기는 해요. 다 치웠으니 들어가도 되겠어요, 따뜻한 커피 한잔하려고요”
제가 집에 들어오고 난 후 동네 식구들 소리가 들립니다. “뭐야 눈이 얼마 없네, 입구는 벌써 다 치웠네”라며 기분 좋은 이야기들을 할 것 같습니다. 영하 8도의 새벽 아침이라고 하네요.
마을에서 살아가는 일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감각과 쓰지 않았던 단어들과 하지 않았던 소소한 삶의 이야기들을 하게 됩니다. 그 소리와 감각들은 나의 쓰임과 연결되어 있으니 동네살이는 참 감사한 생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