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모양의 지붕을 한 집에 살고 있나요?
건물을 짓는 일은 벽을 세우고 땅과 하늘을 배경 삼아 어떤 곳을 만드는 것이라 여기게 됩니다. 짧게 정의하자면 공간(space)과 장소(place) 정도로 풀어 볼 수 있겠지요.
고백하자면 건축가들도 ‘공간과 장소’의 의미를 두고 분명하게 ‘이것이다’라고 선을 그어 정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선 저부터 그렇습니다. 이곳은 공간이고 저곳은 장소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명쾌한 형태나 그림이 그려진다기보다, 경험적인 의미로 해석될 때가 많습니다.
승현이네와 황선생의 집을 지으면서 한쪽 켠에 쌓아둔 흙더미가 있습니다. 높이가 3미터 정도, 지름은 30미터 될까요? 흙을 쌓아둔 봉긋한 그 ‘장소’에서 동네 아이들이 하늘을 지붕 삼아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지붕 없는 놀이터 ‘인 셈이죠.
흙 동산에 모여든 아이들은 도구를 주워오기도 하고 집에서 들고 나온 작은 삽으로 다양한 모양의 계단과 길을 냅니다. 혼자서도 만들고, 같이 만들기도 하더군요. 금방 오르기 쉬운 흙 계단이 생기고, 흙에서 나온 작은 돌들은 장소를 나누는 경계가 되었습니다.
놀이를 지켜보면서 아이들은 장소와 공간을 만들어 내는 건축가의 기질을 타고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1층 바닥 콘크리트 공사를 앞두고 흰색 하수 배관과, 검정, 빨강, 파랑의 속이 빈 전기 배관들이 가지런하게 놓이고 있습니다. 짙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이 소장은 철근과 배관을 지켜보는 저에게 묻지도 않는 답을 들려줍니다.
“승현이네는 지붕모양 그대로 주방, 거실, 식당 천정이 경사지게 노출되면서 지붕 속에 전기배관을 설치할 수 없네요. 천정 속이 있으면 그 안에 들어갈 전기배선을 바닥에 설치하면서 미리 매립해야 할 배선량이 다른 집의 2배가 넘어요”
“그러게 천정을 노출시켜서 그렇군. 개방감 있는 실내 공간을 만들었더니 시작부터 고민할 일도 많아지네. 일반적인 형태라면 수월했을 것을 일이 많아지기는 했어”
기초공사를 마치고 1층 바닥 공사를 하고 있는데 우리들의 생각과 공사의 속도는 이미 지붕 끝까지 올라가 있습니다. 바닥에 집을 그려놓고 시작하는 의미와 비슷할 수도 있겠네요. 어린 시절 막대기를 들고 땅바닥에 그림을 그릴 때 기억이 납니다. 나뭇가지로 땅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동시에 머릿속에는 이미 상상의 장소가 완성된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흙 동산에 계단을 만들 때도 그 아이들만의 기둥, 벽, 지붕, 문, 창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제 눈에만 보이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한 채의 집이 제 기능을 다 하기 위해선 바닥과 벽, 지붕 속을 이용해 전기, 통신, 상하수를 위한 선을 꼼꼼히 설치하고 연결하게 됩니다. 우리 몸을 흐르는 혈관에 비유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집에도 많은 선들이 연결됩니다. 전기분전함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색깔 있는 배선들이 보입니다. 정갈하게 제 위치에 자리한 비어있는 배관들을 보니 월요일에 있을 콘크리트 타설 준비도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높은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이번 가을은 가을답다. 바람도 좋고, 볕도 가을볕이고”
“맞아요. 이번 가을은 제대로 빛이 나고 있어요. 아마도 겨울엔 엄청 춥겠죠. 가을이 가을 다울 때는 겨울도 겨울 답 더라고요. 작년 김포 현장은 겨울이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따뜻했잖아요” 겨울 초입에 시작된 지난해 김포 현장은 따뜻한 겨울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공사를 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건축가들은 늘 날씨 이야기, 계절이야기 속에서 우리들의 위치와 시간, 다음 역할도 함께 찾아내고는 합니다. 날씨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땅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열고, 삶의 의미를 표현하는 공간과 장소에 대한 이해도 늘어나게 되더군요.
추운 겨울이 예상되니, 겨울 공사를 위한 준비도 미리미리 해두라고 하늘과 바람이 우리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이번 겨울은 추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만든 흙 동산 위에 있는 집들은 어떤 지붕 모양을 하고 있는지 가을 하늘은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들 모두는 생각으로 지은 집에 살고 있겠지요? 누구는 흙집을 짓고, 누구는 나무집, 벽돌집, 돌집을 지어 살고, 아이들은 막대기로 그린 자기만의 집에 살고 있겠지요. 당신은 어떤 지붕 모양을 한 집에 살고 있나요? (2020년 9월 28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