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로 만든 공방 손잡이

건축가와 목수

by 빵굽는 건축가

“기계가 할 수 없는 가구를 만드는 일이 제 일이죠, 기계가 할 수 있는 가구는 언젠가 제가 필요 없을 수도 있어요. 기계톱으로 자르거나, 기계 샌딩으로 표면을 마무리하면 힘이 들고, 어깨가 아프죠. 기계 대신 끌로 파고, 손으로 사포질을 하면 그렇지 않아요. 내가 기계를 따라가지 않고, 나무와 내 힘에 맞게 일을 하게 되거든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되죠.

기계가 할 수 없는,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수작업을 하고 있어요”

미루네는 태안 바닷가에서 10분 거리에 살고 있습니다. 아침 산책을 위해 뜰을 나가면 동네 길과 연결이 됩니다. 목수의 고향은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몇 분 거리에 있고, 외지에 살다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길을 따라 걸으면 앞에 보이는 길이 구불구불 언덕을 따라 올라가고 내려갑니다. 내년에 수확할 마늘은 파릇하게 동산처럼 이곳저곳에 펼쳐집니다. 이 길에서 만난 마늘 덕분에 내년 봄 마늘 수확도 상상하게 됩니다. 어쩌면 마늘을 이곳에서 주문할지도 모르겠네요.

동네에 새로 지은 집들도 보이고, 예전에 살던 집들은 바닷가 특유의 정취가 남아 있습니다. 바닷가 주택의 특징은 바람을 막기 위한 담장입니다. 노란 열매에 솜털이 보슬하게 달린 탁구공만 하게 열린 탱자를 달고 있는 탱자나무 울타리도 볼 수 입습니다. 탱자나무는 가시가 크고 길어서 이곳에서는 길과 집을 구분하는 경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지붕도 낮습니다. 스쳐가듯 보면 답답해 보일 수도 있지만, 자연환경에 맞도록 지어진 집입니다. 새로 지은 집들은 어디를 가도 그렇듯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원주민들이 살던 집 주변에는 정갈한 마당이 있고, 문전옥답(門前沃畓)이라고 하지요. 집 앞에는 밭이 있고, 단감이 달린 감나무들도 있습니다. 눈여겨 볼일은 나무와 대나무 숲에 푹 둘러 쌓인 집들입니다. 이 집들은 다른 집에 비해 지붕이 높습니다. 비와 바람을 막아주는 숲이 있는 덕분이겠지요.

미루네 집에는 목수가 일을 하는 공방과, 생활하는 집, 농기구와 농사일에 필요한 창고, 미루 엄마가 가꾸는 허브 밭, 모닥불을 피우는 느릅나무 마당이 있습니다. 거기에 작은 백구 한 마리와 흰발을 가진 검은 고양이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쥐가 많아서 나무와 유리로 짠 미닫이 현관문은 잊지 말고 닫아야 쥐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저도 들어오고 나갈 때 스르륵 밀어서 문을 닫는데 익숙해졌습니다. 저 때문에 쥐가 집안으로 들어온다면 제 이후로 오시는 손님들에게까지 민폐를 기치는 일이 될 것 같아 정말 집중해서 현관문을 닫았습니다.

이 집에는 건축가인 제가 지루하지 않을 만큼 많은 생활 디자인이 있습니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기계에 의존하지 않으려 하는 목수의 작업 기준을 집구석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손수 지은 집에 걸린 대들보도 그렇고, 직접 용접을 해서 만든 효율이 좋은 3개의 벽난로, 따뜻한 구들방, 안방에서 복도로 이어지는 문과 창이 많은 순환하는 화장실, 곳곳에 걸린 나무 액세서리들, 바닥에 깔린 짙은 라왕 마루, 피아노가 놓인 복도 겸 거실의 벽 한편에 그려진 딸아이의 얼굴 그림, 주방 벽 위에 놓인 탐낼 만한 손때 묻은 책들도 이 집의 풍경을 담아냅니다. 그래서일까요? 미루네 집에 오면 편안하고 볼거리가 많아 지루하지 않습니다. 물론 목수와 목수의 아내가 들려주는 동네 사람들, 지인들의 소식, 사계절 생활하는 살림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기는 합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목수의 공방에는 보기만 해도 든든한 손때 묻은 연장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해가 갈수록 공방의 크기도 늘어가고 있다고 하네요. 펄펄 끓는 방에서 뒤척이다 아침 기도를 마쳤습니다. 가벼운 샤워를 하고 산보 겸 해서 공방을 찾았습니다. 지난밤에 모닥불의 뜨거운 기운 때문인지 15년을 신은 가죽신발 밑창이 떨어졌을 때, 목수가 본드로 붙여준다고 해서 공방에 잠시 들어갔었습니다. 밤에는 전등불이 환한 곳에서 잠시 머물렀는데 아침 풍경은 조명 불빛 아래 모습과는 달랐습니다.

동쪽 창에서 아침 빛이 들어오고, 검은 배경에 빛으로 다듬은 실루엣처럼 대패며, 끌, 만들고 있는 이 층 침대, 다양한 종류의 모양이 다른 톱, 곳곳에 세워진 수많은 나무들, 바닥에 쌓인 대패밥이 빛을 받아 밝은 음영으로 드러납니다. 목수는 질감이 있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패밥에서 나는 나무향도 그렇고, 고요한 공방에 놓인 손 장비들도 특유의 향을 내는 듯합니다. 오랜동안 쓰였을 갈색 결의 두툼한 두께의 나무 작업대는 끌로 패인 홈이 작업의 수만큼이나 많아 보입니다. 허락도 없이 들어온 공방이라 사진 몇 장을 더 담고는 돌아 나왔습니다.

공방의 문 손잡이는 바다에서 주워온 검은 자갈돌입니다. 둥글하게 만들 필요도 없이 손안에 쏙 들어오는 돌 손잡이는 계절의 기운을 손안에 전달할 것 같습니다. 여름 한낮에는 뜨거움을, 겨울에는 차가움을 전달하겠지요. 바다에서 목수의 손에 들어온 돌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더군요. 나무문에 금속 촉으로 연결된 자갈 손잡이가 언젠가는 떨어져 나가겠지요. 그때 목수는 어떤 손잡이를 설치할지 살짝 궁금해집니다.

이전 18화모양 없는 집을 그리는 막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