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사람들은 보통 생일에는 축하 파티를 하거나 즐겁게 보내는 일이 많다. 특히 나와 같은 20대라면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거나 친구들과 오랜만에 술을 마시면서 보내는 일이 평범한 생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나는 지금껏 그런 이벤트는 거의 없었다.
나는 생일이 되면 항상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나?’는 질문을 해본다. 매해 생일 때마다 적는 일기는 지금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뒤묻는 시간이다. 지난 2014년 생일에 나는 이런 글로 돌아보기를 시작했다.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니, 소년이 가지고 있는 것이 있기는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어둠. 소년은 커다란 어둠을 등에 짊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어디를 가더라도 매몰차게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냥 죽어버려!” “그렇게 살아서 뭐하게?”
소년의 일상에는 혐오와 거부가 빠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소년은 꾸역꾸역 하루하루 살아갔습니다. 한때는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고, 잠들 때마다 ‘내일은 해가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란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소년은 절망 속에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비록 응원을 받지 못하더라도, 비록 이해를 받지 못하더라도, 비록 살아갈 것을 허락받지 못하더라도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내일은 좀 더 웃을 수 있기를 간절히 마음속으로 바라면서….
이 글은 당시 어지러웠던 마음을 정리한 글이었다. 위 이야기의 소년은 다름 아닌 ‘나’다. 어릴 때 겪은 학교 폭력과 가정 폭력은 여전히 강한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 트라우마를 이기게 해준 것은 내 삶을 바꿔준 것은 책과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는 ‘나는 지금 이대로 살아가도 괜찮은 걸까?’는 질문을 접어둘 수가 없다. 도대체 잘 한다고 칭찬 받는 일에서도 열등감을 쉽게 느끼고, 살아가는 일이 즐겁다는 생각은 잘 할 수가 없다. 그저 웃는 게 좋으니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고 있을 뿐이다.
생일이 되면 이런 고민은 한층 더 심해진다. 다른 사람들은 생일을 맞아 주변 사람에게 축하를 받기도 하고, 평범한 하루와 달리 조금 더 특별한 추억을 만들기도 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도 생일을 그렇게 보내지 않았을까?
분명히 그러한 모습이 생일을 보내는 가장 평범한 모습일 것이다. ‘특별한 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생일에 크고 작은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은 분명히 즐거운 시간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너무나 낯선 나는 혼자 산책을 하거나 불이 꺼진 방에 앉아 나에게 질문을 했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고, 나는 무엇을 하고 싶고, 나는 정말 이 삶을 유지하고 싶은 걸까?
내가 살아온 인생에는 색채가 없었다. 우리 세상은 화려한 색채로 물들어 있지만, 나는 그 화려한 색채를 느낄 수가 없었다. 내 인생에 색채가 들어오기 시작한 때는 책을 읽고,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눈에 빛이 돌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때 비로소 나는 세상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는 일은 단순히 1차적 받아들임에 그치지 않고, 블로그를 운영하는 계기가 되었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무채색이었던 내 인생은 다양한 색으로 칠해졌고, 블로그를 통해 손을 뻗게 되는 모든 활동이 즐거웠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바로 이때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블로그를 통해서 인생을 화려하게 칠하며 꿈을 향해 가는 길은 편하지만 않았다. 블로그를 통해서 한때 많은 수익을 올린 적도 있었지만, 아직 블로그로 먹고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지 못했다. 블로그를 통해 내가 사는 세계를 더 넓힐 필요가 있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사람들 앞에서 무엇을 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거나 함께 밥을 먹는 일은 무척 어렵다. 블로그를 통해 만난 좋은 사람들 덕분에 살마 자체에 대한 공포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떤 테두리 안에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일은 무척 힘이 부친다. 몇 번이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려고 해도 종종 생기는 사소한 충돌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갈등을 빚은 대상에게 “호로 새끼, 염병할 자식, 미친 새끼” 등의 말을 평범하게 들었다.
큰 욕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나는 그저 ‘나’로 지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침해받기 싫었을 뿐이고, 최선의 절충안을 통해 좀 더 원만하게 살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욕심이 이기심으로 이어지면서 나는 종종 이성의 브레이크가 끊어져 큰 갈등으로 번지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삶에 대한 회의를 느낀 적이 많았다. 햇볕이 좋은 날에는 공원 벤치에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 다니다가 하늘을 바라보며 ‘도대체 나는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는 질문을 던졌다.
따뜻한 햇살이 비추고 있다
앞에서는 새소리가 들리고
뒤에서는 차소리가 들린다
이 따뜻한 세상은 마치 내게 묻고 있는 듯하다
지금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왜 너는 그 좁은 공간에서 모니터만 보고 있느냐고
나는 그 따뜻한 세상에게 답을 들려주었다
이 세상에 내가 있을 곳은 없다고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부정하는 일밖에 없다고
그러나 세상은 다시 내게 묻는다
지금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왜 너는 그 좁은 공간에서 너만 보고 있느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도 알 수 없었다
내가 왜 이 좁은 공간에서 나만 보고 있는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깊은 생각에 잠기다 보면 이런 글을 자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적고 있다. 유명한 작가처럼 멋진 글은 아니지만,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은 언제나 짧은 한 편의 글이 되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코웃음이 나올지도 모르지만, 이런 시간이 지금의 나를 형성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블로그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모든 생각을 어디에 정리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글로 남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블로그를 하게 된 것은 아주 사소한 계기이지만, 블로그를 통해 글을 쓰면서 나는 조금 더 나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블로그와 함께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블로그로 먹고살겠다고 말하면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나 또한 그 이유를 체감하고 있다. 블로그로 먹고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고, 최근 인터넷 생태계는 블로그의 자립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나는 이 길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색이 없던 내 인생에 색을 칠해주고. 부정당한 나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해주고,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게 해주고,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 바로 블로그였기 때문이다.
아직 20대인만큼, 내 앞에는 수많은 선택지가 놓여있다. 차후 다른 선택지를 찾게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내가 가진 특이점은 블로그 이상의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선택하고자 하는 길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내가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게 옳다고 믿는다.
과연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될까?
아직 가지 않은 길은 내가 어떻게 가는 지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비록 다른 사람처럼 장밋빛 생일을 보내는 시간을 보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잿빛 생일 속에서 나를 돌아보며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까. 나를 곱씹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을 쓰는 일 뿐이다. 내 안의 욕심 덩어리는 매주 사는 복권에 실낱 같은 희망을 품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 길 자체가 잘못된 길일지도 모르지만, 이 일은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길은 생각할 수도 없다.
이 일을 하면서 살아가다 보면 지름길도 있을 것이고, 진흙탕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도 있지 않을까? 타인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조롱을 받을지도 모르고, 뺨을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디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바로 그렇게 다사다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생일을 맞아 다시 한 번 나를 생각해보며 나는 오늘 하루를 웃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싶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20대로 살아가는, 이제 곧 30대로 접어들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최선이 아닐까 싶다. 오늘 당신은 어떻게 생일을 보내고 있는가?